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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너무 맛있어서 잠 못드는 세계지리

단, 미국인에 한함.

*주: 지극히 개인적인 독서 기록문입니다. 중간에 뜬금없이 최애 이야기가 나오기도 합니다. 







총평: (좀 많이 생소한) 레시피와 퀴즈쇼를 적당히 섞어 끓인 지리 잡학서



* 책의 특징

1. 지리학 부분은 지리학자인 아버지 개리 풀러가, 레시피 부분은 하와이의 바닐라 농장 경영주이자 쉐프인 딸 T.M. 레데콥이 집필했다. 각 장에서 다루는 지역과 관련된 다양한 레시피를 소개하려는 노력 및 구성이 돋보이나, 요리서에 관심이 적은 나는 앞부분의 지리 파트만 읽고 넘겼다. 특별히 요리에 관심이 있는 사람-특히 하와이 요리-이라면 낯선 식재료의 이름들이 대거 등장하는 레시피 부분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듯 하다. 


2.  전반적으로 지리학 잡학 사전+관련 레시피+퀴즈쇼 예상문제를 섞어 끓인 느낌의 책이다. 매 장 서두에는 나중에 혼자 풀어볼 수 있는 퀴즈 코너가 마련돼 있는데, 이 퀴즈 질문들을 의식하고 읽다보면 의외로 중독성이 생긴다. 이른바 십자말 풀이의 하위 호환 버젼으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소독서로 활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단, 문제의 난이도가 쉽지만은 않다. 저자인 개리 풀러가 지리학 교수일 뿐만 아니라 다수의 퀴즈쇼 우승자인 만큼, 본문을 정독하기 전까지는 답을 짐작조차 하기 어렵고 아리까리한 질문들이 많다. 특히 후반 챕터로 넘어갈 수록 이런 경향이 심해지는데, 나 같은 경우에는 미리 질문들을 두어 번 읽어둔 다음 본문에서 관련 키워드가 나오면 그때 그때 답을 적는 방식으로 머리를 굴렸다. 의도치 않게 수험생 시절, 문제집의 해설서를 먼저 보고 답을 풀던 추억을 재현할 수 있었다. 


3. 세계지리 교양서를 표방하는 제목답게 최대한 다양한 지역을 다루려 노력했으나, 미국 출신의 저자가 미국 독자를 대상으로 집피한 교양서인 이상, 외국인 독자에게는 낯설거나 생소한 주제들이 많은 편이다. 가령, 이 책은 곳곳에서 미국 내 여러 이민자 집단들의 이주 역사 및 문화, 생활 방식, 미국의 초콜릿 회사, 북미와 남미의 낯선 지형과 지명들, 주 이름 등이 다수 등장하며 그외 미국인들에게나 친숙할 법한 대중 인사나 고유 명사가 퀴즈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다. 

그 결과, 오랜만에 가볍게 미국사/미국지리/미국문화와 관련된 상식을 복습하기에는 유용했으나, 읽는 내내 위 주제들에 관한 사전 지식이 적을 수밖에 없는 한국 독자들에게는 상당히 지루하고 생경하게 느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종종 들었다. 원제가 <Delicious Geography: From Place to Plate(맛있는 지리학)>이던데, 한국어판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너무 맛있어서 잠 못드는 세계지리"로 제목이 바뀌었다. 그런데 과연 한국 독자들에게도 잠 못들 정도로 재밌게 느껴질 지는 의문이다. 차라리 원제를 따라 <맛있는 지리학> 정도로 번역했다면 어땠을까 싶다. 일단 책 제목에 '너무', '잠 못들 정도로' 같은 거창한 수식어가 들어가면 아무래도 읽기 전에 미리 기대치가 높아지게 되는데, 실제로 나는 이 책을 읽다가 졸았던 순간이 한 번, 좀이 쑤신 적이 서너 번 있었기 때문이다. 

덧붙여서 책의 후반부(대략 18장)부터는 소주제와 다소 거리감 있는 이야기가 두서 없이 나열되거나, 글의 얼개가 허술해진다는 점도 아쉽다.  




* 흥미로운, 혹은 새로 알게 된 소소한 지식들


다행히 위에서 열거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서문과 책의 초반부에는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입장에서) 흥미롭거나 새로 알게 된 내용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덕분에 애매모호하던 기억을 다시 한 번 명료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그 부분들을 간략히 요약해 옮긴다. 


1) (pp.5~7. 서문 중에서) '지리학의 핵심 기준 = 언어와 종교?'

이 책에서 저자는 기존의 지리학 개론서들이 대부분 그 연구, 수업의 핵심 요소로 언어와 종교를 내세우는 현상에 의문을 제기한다. 가령, 그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로 시간축이 옮겨올 수록 종교 요소가 지리학에서 더 이상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지 않는다고 설명하며, 그 근거로 지난 세기 동안 그토록 종교에 미쳐 날뛰었던 미국인과 유럽인들조차 점차 종교활동에 무관심해졌으며 무슬림, 유대인, 힌두, 불교 문화권의 음식이 이른바 기독교 문화권에서 거리낌 없이 대중화됐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뉴욕의 할랄 가이즈, 베이글, 텍스-멕스, 치폴레, 타이 푸드, 후무스 열풍 등을 떠올려 보자.) 

특히 지리 문화 연구에서 종교가 고정 요소가 아니라는 점을 설명하기 위해, 루이 14세의 퐁텐블로 칙령으로 인한 개신교 탄압 이후에도 대부분의 위그노(프랑스 내 개신교 신자를 말한다)들이 고국에 잔류하는 쪽을 택했다는 사례를 든 것이 인상적이었다. 일반적으로 프랑스사 혹은 독일사 교과서에서 위그노의 이주를 설명할 때는 퐁텐블로 칙령의 결과, 신앙의 유지를 찾아 프랑스를 떠난 위그노들이 프로이센, 네덜란드 등 인근의 신교 국가로 유입되면서 비로소 중부 유럽 도시들의 상공업이 발달했다는 식으로 설명하기 때문이다. 하긴, 나라도 삼시 세 끼 풍부한 프랑스 요리에서 감자로 시작해서 감자로 끝나는 독일 요리로 식단을 바꾸는 감행을 하느니, 차라리 개종하고 고향에 남았을 것 같다. 




2) (p.64) Reese's 피넛버터컵의 유래! 


Reese's 피넛버터컵의 다양한 사이즈. 미니가 가장 맛있다.


n년 전 뉴욕 여행 중에 방문한 타임스퀘어의 허쉬 초콜렛 가게에서 친구 소개로 Reese's 피넛버터컵을 처음 맛보았다. 로이스 생초콜릿, 발로나 마카다미아 초콜릿 다음으로 살면서 먹어본 세 번째로 맛있는 초콜릿이었다. 특히 부드러운 초콜릿 컵 안에 피넛버터크림을 채운 점이 획기적이었는데, 어쩌다 맛없는 막대 초콜릿이나 생산하는 허쉬 사에서 이렇게 발상도 형태도 다른 제품이 나올 수 있는지 늘 궁금했었다. 그런데 바로 이 책에서 피넛버터컵의 유래 및 위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미국 최대 초콜릿 제조사인 허쉬 사가 한참 히트를 치던 시기, 마침 기업가 해리 리스(Harry Reese)가 동종 업계에 뛰어든다. 때는 1941년, 2차 대전 발발과 함께 초콜렛에 필수적인 설탕이 배급제 목록에 오르던 시기였다. 해리 리스는 이 점에 착안하여 허쉬 사의 초콜릿보다 설탕 함량을 줄이면서도 똑같이 단맛을 내는 대체제를 선보였으니, 바로 피넛버터컵이었다. 그리고 줄어든 설탕 대신 피넛버터를 넣음으로써 단맛을 보충한 리스의 이 컵 모양 초콜릿은 허쉬의 막대 초콜렛이나 키세스보다 더 맛있었다! (비록 훗날 허쉬가 Reese's 사를 인수하면서 피넛버터컵도 허쉬 브랜드 아래로 들어가기는 하지만.) 아마 모 장르의 로저스 씨와 반즈 씨도 입대하기 1~2년 전후로 해서 이 획기적인 신제품, 리스 피넛버터컵의 풍미를 맛볼 수 있지 않았을까? (피넛버터컵을 먹는 스팁버키가 보고 싶어졌다) 



3. (pp.110~114.) 미국의 독일계 이민자들: 루머와 진실들


- 미국의 독일계 이민자들 중 많은 수는 참 다행스럽게도 북미에 反이민정서가 불어닥치기 전인 19세기 중후반에 정착했고, 덕분에 남유럽계나 동유럽계 이민자들에 비해 수월하게 새 나라와 사회에 섞여들어간 편이다. (참고로 시카고를 방문하면 여전히 이들 독일계 이민자들이 남긴 스테인드 글라스 및 각종 공예 세공품, 의류 회사의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다. 지금은 다이아몬드로 더 유명해진 루이스 티파니도 본래 시카고를 근거지로 하여 스테인드 글라스 공예 및 유리 공예로 시작한 독일계 예술사업가였다. 또한 J.C. 레옌데커 역시 2세대 독일계 이민자로, 그의 아버지는 본래 19세기 후반까지 독일 지방에서 활동하던 스테인드 글라스 제작자였다.) 이처럼 초중기 미국 사회 내에서 독일계 이민자들이 차지한 비율 및 영향력이 상당하다보니, 종종 독일어가 미국의 공용어로 채택될 뻔했다는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 있다. 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저자인 개리 풀러의 주장에 따르면, 실제로 독일어가 제1 공용어가 될 뻔했다는 구체적인 증거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애초에 미국에는 따로 법으로 정한 공용어가 없다.) 

- 남북전쟁 시기, 정착 지원을 대가로 북군에 입대한 이민자들도 독일계가 가장 많았고, 아일랜드계가 그 뒤를 따랐다고 한다. 의외의 사실이었다. 

- 그러나 이렇게 수월히 정착한 독일계 이민자들도 1, 2차 대전기 동안에는 의혹과 기피를 피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동원해야 했다. 예를 들어, 1차 대전기 동안 독일계 이민자들은 그들의 대표 음식인 자우어크라우트를 미국 정서에 맞춰서 "자유 양배추(Liberty Cabbage)"라는 웃긴 이름으로 바꿔 불렀다. 



자우어크라우트. 듣기만 해도 독일 느낌이 난다.

 


그래서 이름을 바꿨다. 'Liberty Cabbage자유 양배추'로! 

1차 대전 당시의 신문기사. 자우어크라우트 유통업자들이 독일식 억양을 숨긴 '자유 양배추'라는 이름이 미국 소비자들의 정서에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자유 양배추'가 된 자우어크라우트.

동시기 기사 일부. '자우어크라우트'라는 이름에서 풍기는 친독일적인 낙인 탓에 이 요리의 주 재료인 양배추 판매량이 75% 떨어지자, 차라리 미국 정서를 가득 담은 '자유 양배추'로 이름을 바꿔 유통시키는 것이 낫다는 연방 식품 의원회의 결정을 전하고 있다. 


관련 자료를 뒤지다보니, 아니나 다를까 이 같은 '독일 냄새 풍기는' 이름을 영어식으로 바꾼 사례는 1차 대전기 뿐만 아니라 2차 대전기에도 빈번히 발생했다. 아래 대표적인 사례 및 관련 포스터, 엽서를 첨부한다. 재미있다. 






1, 2차 대전기 동안 영어식으로 개명된 독일식 지명과 음식명들. 햄버거는 자유 스테이크(자유 샌드위치)로, 저먼 셰퍼드는 알자시안 셰퍼드로 바뀌었다. 


- 저자 개리 풀러의 회상에 따르면, 본인이 자란 작은 고향 마을에서는 2차 대전이 발발하자 동네의 나이 지긋한 독일계 어르신들이 처음에는 자신이 오스트리아계라고 주장했다가, 뒤늦게 히틀러가 오스트리아 출신이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나중에는 네덜란드계라고 에두르는 일이 심심치 않았다고 한다. 물론 2~3세대 후손들의 경우, 자신의 출신 및 미국에 대한 충성심을 숨기지 않고 당당히 드러냈다고 한다. 아마 태평양 전쟁 기간 동안 서부의 일본계 2~3세대 이민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입증하기 위해, 그리고 소속 국가에 대한 충성을 입증하기 위해 높은 비율로 미군에 자원입대한 것과 비슷한 심리의 발로였을 것이다. 



 4. (pp.102~105.) 유대인의 두 분파: 셰파르디와 아쉬케나지


서양사에서 유대인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종종 듣던 용어가 '아쉬케나지'였다. 홀로코스트 수업을 들었을 때 귀로 스쳐 듣기만 했지, 정확히 그 의미를 모르고 있었는데 이 책 덕분에 디아스포라 이후 발생한 유럽 유대인의 두 분파에 대해 명확하게 정리할 수 있게 됐다. 

a. 세파르디계 유대인: 디아스포라 이후, 이베리아 반도에 정착하여 스페인에 기원을 둔 유대인들. 1492년에 이사벨 여왕과 페르디난도에 의한 레콩키스타가 일어나기 전까지, 이베리아 반도 내에서 다른 기독교인 및 무슬림과 섞여서 (비교적) 우호적인 종교 문화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다. 레콩키스타 이후에는 (개종하지 않은) 세파르디계 유대인들은 무슬림 치하에 있던 아랍 지역으로 이주했으며, 이때 이들이 사용하던 언어인 라디노어(중세스페인어에 히브리어가 섞여든 언어)도 함께 넘어가게 된다. 


b. 아쉬케나지계 유대인: 1000년 경부터 중부 유럽에 대규모로 모여 살기 시작한 유대인 집단. 각자 정착한 지역의 독일 방언+슬라브어+히브리어(아람어)가 혼용된 이디쉬어를 사용했다. 비교적 타 종교와의 공존이 가능했던 이베리아와 달리, 중동부 유럽에 정착한 이들 아쉬케나지 유대인은 직업 제한과 거주지 제한 등 중근세 유럽의 봉건 체제 하에서 배타적 취급을 받았다. 

19세기로 들어서면서 독일 각 지방을 비롯하여 중동부 유럽 국가들의 국민정체성이 확립됨에 따라, 이들 아쉬케나지 유대인도 서서히 새당 국가의 일반 시민과 동화되어 갔다. 히틀러가 집권하기 직전인 1차 대전기 및 20세기 초에는 이미 기독교로 개종한 아쉬케나지 유대인, 기독교인 배우자와 결혼한 아쉬케나지 유대인도 많았다. 그러나 20년대 중반부터 나치 정권이 유대인 탄압 정책에 시동을 걺에 따라, 이미 독일 사회에 동화돼 있던 이들 유대인들도 탄압의 대상에 포함되기 시작한다. 대표적인 예로, 1935년에 나치가 제정한 인종주의 법령인 뉘른베르크 법은 유대인의 구분 기준을 자의적으로 설정한 다음 이들에 대한 여러 시민적 권리를 박탈했는데, 이때 유대인인지 아닌지 가려내는 기준에는 '기독교로 개종을 했어도 조부모가 유대인이면 유대인', '기독교인 배우자와 결혼한 유대인도 유대인'(이 경우 강제로 가족들과 분리되어 게토로 들어가야 했다)으로 판정하는 매우 자의적이고 합리적이지 못한 잣대가 포함돼 있었다. 혈통적으로는 유대계 후손일지 모르나, 이미 서너 세대가 흐르는 동안 독일어를 사용하고 독일식 학교에 다니면서 독일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획득한 이들조차 뉘른베르크 법의 기준에 따라 하루 아침에 유대인으로 판별, 시민권을 박탈한 것이다. 

나치 정권의 유대인 탄압이 극심해짐에 따라, 지난 세기 동안 독일 및 유럽의 각국 사회에 잘 동화되었던 유대인들은 다시 분리, 차별의 대상이 되었으며, 그중에는 1차 대전 시기에 독일 국방군으로 참전한 군인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엑스맨 코믹스의 스핀오프인 <매그니토: 테스타먼트>에서 어린 에릭의 아버지가 이 사례에 해당한다.) 

홀로코스트의 피해자였던 유대인 중 다수가 바로 이들 서유럽~중동부 유럽 출신의 아쉬케나지계였기 때문에, 나치 정권이 몰락한 후 살아남은 유대인의 대부분은 세파르디계, 혹은 아메리카로의 이주에 성공한 소수 아쉬케나지계 유대인들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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