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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파리어콜린스] As You Are 1

종전 후 파리어는 옛 사랑 콜린스를 찾아 스코틀랜드로 떠난다.

작가: soniclipstick, MessKit

Paring: Farrier/Collins

원문: http://archiveofourown.org/works/13196148

키워드: 원작 이후(post-canon), 포근한 가정물(domestic fluff)


* Over the Hills and Far Away 연작 1

** Ao3에 올라온 파리어/콜린스 글 중에 개인적으로 가장 사랑하는 글입니다. 스코틀랜드 전원의 분위기, 파리어와 콜린스의 관계성, 귀여우 루시까지 어느 하나 버릴 요소가 없는 최애픽999 한 번쯤 꼭 우리말로 옮겨보고 싶었는데, 원작자 두 분께서 허락해주셔서 조금씩 번역해봅니다.  

*** 취미로 하는 번역이며 오역 및 윤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관련 문의는 댓글로 달아주세요. 

**** 원래 한 편인 글이지만, 시간 문제로 조금씩 나눠서 올립니다. 


번역 허락 ↓↓↓









As You Are 

너의 있는 그대로





1945년 12월 15일.


런던 발 글래스고 행 기차에 앉아서 창 너머로 눈 덮인 구릉이 하늘 아래로 점점이 펼쳐지는 것과 점점 털이 붉어지고 길어지는 하이랜드 소를 보기 전까지, 토마스 파리어는 대체 어떻게 언덕이 ‘구를’ 수 있다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었다. 푸르스름한 회색 하늘이 스산하게 깔리긴 했으나 이미 더한 광경도 본 터였다. 게다가 기차 안은 얼음 같은 진눈깨비에 대한 보상이라도 되듯이 안락하고 따뜻했다. 빈말로라도 좌석이 푹신하다고 할 수 없었지만, 수 년 동안이나 나무 침대 아니면 얼어붙은 땅바닥, 그나마 최근에는 야전병원의 캔버스 천으로 만든 군용 간이침대에서 잠을 청했던 파리어에게는 깃털만큼이나 부드러운 의자였다. 기차는 칼라일에서 정차했다. 창문 밖으로 남자들, 여자들, 어린 학생들이 출구를 향해 걸어 나갔다. 새로운 승객들이 객실로 들어오자 파리어는 눈을 감고서 자는 척 했다.

던커크 작전이 있기 전, 그러니까 그가 포로로 잡히기 전 아직 병영에 있었을 때, 가끔씩 콜린스는 그의 고향집에 관해 들려주곤 했다. (물론 절박하고 열정적인 정사 후에도 그럴 만한 체력이 남았을 때의 이야기다.) 그는 파리어의 가슴팍 위에 길게 기대 누워 창백하고 큰 손을 그 맨 살 위로 활짝 벌려보곤 했다. 그리고 파리어의 목에 고개를 묻은 채로 자신의 조상들이 처음 집을 지었던 계곡이며 콜린스 가의 사람들이 대를 이어 성장하고 가꿔온 농장과 방앗간을 들려주었다. 그중에는 버킹엄셔 북쪽의 작은 도시에서 무선 통신 교환원으로 일하고 있다는 누나 페기에 관한 얘기도 있었다(콜린스의 누나는 남동생을 몹시 자랑스러워한다고 했다). 어느 정도 술이 들어간 날이면 홀로 남아 편치 않은 몸으로 농장을 돌봐야 하는 어머니를 향한 걱정을 늘어놓기도 했었다.

열차 바깥에서는 오래된 증기 기관차가 달리면서 뿜어내는 쌕쌕거리는 소리와 세찬 바람 소리를 제외하면 아무것도 들려오지 않았다. 어느 새 파리어는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일평생 이스트엔드에서 태어나고 자라온 도시 쥐한테는 긴장될 법도 한 여행이었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진 리치몬드보다 더 남쪽으로 내려가 본 적도 없었건만, 지금은 무릎에 수트케이스 한 개와 주머니 속에 성경책 하나만 지니고서 나라의 반대쪽 끝으로 가는 열차 안에 앉아 있었다. 어릴 때부터 잠들지 않는 고도(古都)의 소음을 자장가 삼아 듣고 자란 파리어였다. 그런데 이제는 유년시절에 의탁했던 고아원의 어느 수녀보다도 덜컹거리는 기차 소리와 윙윙대는 바람 소리가 그를 달콤한 잠 속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에게는 수트케이스 외에는 별달리 소유한 물건이랄 것도 없었다. 만약 있었다 하더라도 전부 챙기진 않았을 것이다. 스코틀랜드 행 열차에 탄 목적은 오직 하나 뿐이었으며 볼 일을 마치고 나면 콜린스가 바라는 대로 곧바로 떠날 예정이었다. 슈탈라그 루프트Ⅲ(*Stalag Luft Ⅲ, 독일의 제 3 공군 포로수용소)에서 해방된 지 이제 한 달이 다 되어가고 있었으나, 콜린스의 생존을 확인하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 귀국 후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파리어는 매일 같이 소식을 물어보고 다녔다. 옛 공군 기지, 살아남은 조종사들 등 손에 넣을 수 있는 정보란 정보는 죄다 뒤지고 다녔다.

전역 허가가 떨어지자마자─심지어 전역 증명서에 찍힌 도장이 채 마르기도 전에, 그는 자갈길 위로 목발 부딪히는 소리를 내면서 가장 가까운 행정 사무소를 찾아갔다. 지역 도서관을 빌려서 되는 대로 서류철을 쌓아 올린 임시 행정 사무소는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데다 번잡한 일을 처리하기에는 너무 작은 규모였다. 파리어는 몇 주 동안이나 매일 같이 그 사무소로 출근하면서 전화나 전보로 생존자와 낙오자, 실종자에 관한 새로운 소식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패트리지 부인이 H. 콜린스라는 사람이 이탈리아에서 격추됐다는 소식을 전해줬을 때는 거의 심장마비가 올 뻔 했다. 나중에서야 다른 사람과 착각한 소식이었다는 얘길 들을 수 있었다.

“이름 제대로 불러준 게 맞아, 젊은이?”

패트리지 부인은 이미 두 번이나 샅샅이 뒤져본 서류철 두 개를 파리어가 다시 가져오자, 타자기를 치던 것을 멈추고 그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혹시 자네 친구 이름이 콜링스인 건 아니고? 아니면 콜링엄이라던가, 칼리스일 수도 있지 않아?”

“이 이름이 확실합니다. 오늘 들어온 명단 좀 찾아봐주시겠습니까? 콜린스, C-O-L-L-I-N-S가 맞아요.”

노부인은 한숨을 내쉬더니 아직 살펴보지 않은 새 명단을 확인해주기로 했다. 늘 앉던 자리로 다시 돌아가는 파리어를 지켜보면서, 부인은 참 이상한 남자라고 생각했다. 전쟁이 이어지는 동안 군인들은 매일 같이 전우를 잃었고 그렇게 잃어버린 전우에 관한 소식이 들어올 때마다 그녀가 군인들에게 전할 수 있는 말이란 ‘유감이에요’라는 말 밖에 없다는 사실을 파리어도 여러 번 지켜보아 알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파리어는 이 ‘콜린스라는 친구’의 행방이 그녀의 사무실을 배회하고 다니는 야위고 부스스한 남자한테 왜 그토록 중요한 일인지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적어도 부인이 그를 쫓아내지 않고서 함께 그의 얼굴 모를 조종사 친구의 무사귀환을 빌어주는 한은 그랬다.




1943년 12월.


슈탈라그 루프트 Ⅲ.

수감 동료인 트래버스에게는 신발 상자가 하나 있었다. 상자는 그의 사랑하는 애인 아드리아네가 보내준 편지들로 가득 차 있었다. 뇌물을 낼 여력만 된다면 간수를 통해 돈을 주고 편지를 부칠 수 있었다. 파리어는 자기만의 편지 상자는 물론이고 아직 그 상자에 보관해둘 답장조차 받아본 적 없었지만, 만약 자신에게도 위장상자가 있다면 지금까지 콜린스에게 보낸 편지만 쌓아 놓아도 저런 상자 한 개로는 부족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수용소 안에 있었다. 말인즉 바깥 세상에 있는 ‘날쟁이’들보단 안전하다는 뜻이었다. 적어도 트래버스는 그렇게 말했다. 파리어는 조종사를 “날쟁이”라고 부르는 트래버스에게 반쯤은 진심으로 주먹을 날렸지만, 그의 동료는 그저 쓴웃음만 지었다.

‘다른 사람한테 보낼 편지지도 남겨둬.’

하루는 보샹이 충고했다.

‘어차피 네 친구는 지금쯤 이미 죽었을 테니까.’

그렇지만 콜린스는 친구가 아니었고, 죽었을 리도 없었다. 파리어는 자리에 앉아 또 다른 편지를 쓰기 시작하면서 그렇게 홀로 되뇌었다.




1945년 12월 15일.


마침내 그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전달받은 날은 말로 할 수 없이 기뻤다. 이제 목발신세에서 벗어나게 된 파리어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놀란 표정의 패트리지 부인을 끌어안고서 뻣뻣한 다리로 춤까지 췄다. 그는 그녀의 볼에 짧게 입 맞춘 다음, 편지하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떠났다.

다시 기분이 나락으로 떨어진 것은 도서관을 나선지 한참이 지나서였다. 만약 콜린스가 살아있고 지금까지 무사하다면 왜 진작 답장을 보내지 않은 걸까? 왜 자신을 찾아보려고 하지 않았지? 새로운 정보가 서서히 머릿속에 입력되기 시작하면서 파리어는 마치 뱃속에 커다란 돌덩이를 삼킨 것처럼 마음이 무거워졌다. 가능한 설명은 하나뿐이었다. 콜린스는 이제 그를 잊은 것이다. 여태까지 그가 살아남을 수 있도록 지탱해줬던 약속은 허황되고 빈 약속이었으며, 더 이상 “우리”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돌아갈 장소 따위는 애초에 없었던 거다. 그 순간 파리어는 옆구리 사이에 끼고 있던 서류뭉치가 갑자기 무겁게 느껴졌고 더 이상 어떻게 해야 할지도 떠오르지 않았다. 다시 서류를 뒤지다가 현재 거주지 주소를 발견했을 때는 잠시 동안 이 책─콜린스가 그에게 맡겼던 성경책은 그냥 우체통에 넣어버리자고,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하는 편이 깔끔한 결말을 위해서라도 나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파리어는 살면서 한 번도 떠나보내는 일에 능숙한 사람인 적이 없었고, 잠시 후에는 결국 우체국이 아니라 빅토리아 역의 매표창구에 줄을 서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어쩌면 스스로 슬픔을 자초하는 일인지도 몰랐다. 어쩌면 콜린스한테는 이미 다른 여자가 있을 수도 있다.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자기만의 삶을 살고 있을 지도 모르고. 귀환한 군인들 중에 전쟁을 단지 길고 긴 악몽으로 치부하는 쪽을 택하는 이들이 많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파리어는 꼭 알아야 했다. 지난 오 년의 세월 동안 콜린스가 어떻게 변했고 어떤 남자가 되었는지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해야 했다. 여전히 담배를 피우는지, 긴장할 때 볼 안쪽을 잘근거리는 습관도 여전한지, 알아야만 했다. 만약 결혼했다면 그의 아내는 어떤 얼굴일지, 눈 색은 어떨지도 모두 알고 싶었다. 그에 대한 대답이 아마 포로 수용소에서의 경험보다도 더 아픈 상처를 줄지도 모르지만, 기실 토마스 파리어는 행동하기 전에 그렇게 깊게 생각하고 움직이는 유형은 아니었다.

그런 점 또한 콜린스와 그의 차이점이었다. 콜린스는 조심스러웠으며 언제 경계해야 하고 언제 대담해져야 할지를 긴밀하게 구분하는 사람이었다. 그에 반해 파리어는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는 편이다. 또 콜린스가 새하얀 피부와 밝은 눈 색, 가는 근육과 골격을 지닌 반면, 토마스는 검은 머리인데다 건장한 체구였다. 콜린스에게는 집이, 가족이, 속할 곳이 있었다. 토마스 파리어의 부모가 자식에게 남겨준 유산이라고는 파리어라는 성(姓)과, 이젠 기억나지도 않는 원스테드 고아원까지 가는 편도 열차표뿐이었다.




1940년 4월.


두 사람은 수 마일 내 어떤 구조물보다도 높이 솟은 건물의 발코니에서 담배를 나누는 중이었다. 마치 그렇게 붙어 서있으면 지난 일주일 간 단 한 번도 키스를 나누지 못한 사실도 보상받을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달리 숨을 만한 곳이 없는 상황에서 파리어는 항상 스핏파이어를 몰고 하늘을 나는 시간이 오기만을 갈망했다. 오직 그때만이 편히 숨 쉴 수 있는 시간이었다.

“우리 집이 엄청나게 특별하단 건 아니에요, 파리어. 그러니까 그냥, 가족이거든요. 가족 말이에요. 알죠?”

콜린스가 길게 한 모금 들이쉬었다 내뱉으며 말했다. 활주로에서 집합을 외치는 병사의 고함이 들려오기 전까지, 두 사람은 오랫동안 서로 손가락을 얽고 있었다.

파리어는 콜린스가 하는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마냥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1945년 12월.


콜린스 농장으로 이어지는 구불구불한 도보에 당도하기까지는 버스와 택시를 번갈아가며 타야했다. 좁은 도보 양 옆으로 눈송이가 쌓여 있었지만 길 자체는 세심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그래도 길이 울퉁불퉁한 것은 여전해서, 이십 여 분 뒤에 대문의 노란색 칠이 벗겨지기 시작한 돌집에 마침내 도착했을 때는 지끈거리기 시작한 엉덩이가 더할 나위 없이 반겼다. 차가운 스코틀랜드의 안개가 양가죽 재킷 안까지 파고들어 맨 살이 드러난 목을 서늘하게 할퀴고 지나갔다. 파리어는 목깃을 더욱 여미며 집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얀 눈 위로 잡초가 수북이 솟았고 경첩이 허술해진 헛간 문이 돌풍에 흔들리며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곳곳에 자란 덤불은 관리되지 못한 채 길게 자란 상태였으며 건물의 2층 창문은 나무판자로 막혀 있었다. 그는 천천히 현관문으로 올라섰다. 안에서 새어나오는 불빛과 굴뚝에서 나는 연기가 아니었다면 버려진 집이라고 착각했을 뻔한 풍경이었다. 그냥 여기에 성경을 놔두고 다시 시내로 돌아가는 편이 나을지도 몰랐다. 돌아가는 데는 한 시간이면 충분했고, 이곳까지 오는 내내 혹사당한 하체도 서서히 통증이 더해가는 중이었다.

하지만 어느 새 눈이 다시 내리기 시작한데다, 작은 성경책은 비록 신문지로 세심하게 에워싸긴 했지만 찢어지기 쉬운 낡은 책이었다. 무엇보다도 콜린스에게는 매우 중요한 물건임이 분명했다. 파리어는 현관의 문고리를 들고서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철문을 세 번 두드렸다.

슬슬 자신의 행동이 후회되기 시작할 때쯤 갑자기 문이 열리면서 새파란 눈과 밝은 금발 터럭이 그를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무슨 일로 찾아오셨어요?”

여자아이는 최근에 새로 배운 것이 분명한 태도로 물었다. 이마를 찌푸리고 입술을 꾹 다무는 것이 콜린스가 호기심이 일거나 경계할 때마다 짓던 표정과 똑같았다. 아이는 아름다웠다. 아버지만큼이나 아름다웠고, 그때서야 모든 퍼즐조각이 귀신처럼 맞춰지는 기분이었다.

파리어는 심장이 지끈거렸다.

“아무것도 아니란다, 얘야.”

그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건 네 아빠 건데, 나대신 네가 전해주렴. 그래주겠니?”

포장된 책을 건네는 동안 파리어는 억지로 미소를 띠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그 익숙한 파란 눈을 들여다 본 후, 다시 시내로 돌아가기 위해 무거운 발걸음을 뗐다. 한 시간 안에만 도착한다면 밤을 보낼 숙소를 구한 다음 내일 이른 아침에 런던 행 기차를 잡을 수 있을 테다. 다소 쌀쌀하지만 무스탕을 입은 데다 독일에서는 이보다 더한 날씨도 겪어봤으니 괜찮았다.

‘다 괜찮을 거야.’

그는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상실이 아닌 다른 생각들로 머리를 채워보려고 애를 썼다.

몇 야드 뒤에서 콜린스의 딸이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파리어는 듣지 않았다. 그는 불편한 다리가 허락하는 한 가장 빠른 속도로 걸음을 재촉했다. 이 정도는 예상했어야 했다. 길고 고된 수용소에서의 나날 동안 동아줄처럼 매달렸던 머릿속의 동화 같은 미래는 말 그대로 동화일 뿐이었다. 당연한 일이다. 콜린스는 과거에서 벗어나 아내를 찾았고 이젠 아이도 가진 것이다. 그런 남자가 뭐가 아쉬워서 전시에 잠깐 온기만 나눴을 뿐인 남자한테 한 번 더 눈길을 주겠는가? 보나마나 콜린스는 마을의 영웅, 살아 돌아온 몇 안 되는 베테랑일 게 뻔했다. 그에 반해 파리어는─ 떠돌이 개였다. 다리를 절고 감상에 젖은, 잊혀버린 떠돌이 개.

그는 새어나오려는 눈물을 지독한 추위 탓으로 돌리면서 할 수 있는 한 꿋꿋하게 걸음을 옮겼다. 그래, 모든 건 추위 때문이다. 그밖에 다른 이유가 있을 리 없었다.




1941년 5월.


“언젠가는 우리 집에 데려갈게요.”

어느 날 아침, 이미 수백 번은 더 확인한 듯한 낙하산을 다시 한 번 점검하는 동안 콜린스가 파리어에게 말했다.

“파리어 같은 대도시 런던 사람한테는 좀 지루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지루한 걸 보상해줄만 한 장점 한 가지 정도는 있을 거예요.”

토마스는 발끝에 걸리는 낙하산을 멀리 차 보낸 다음, 콜린스를 끌어안고 침상 위로 쓰러졌다. 그는 연인의 목덜미며 쇄골에 연이어 입을 맞추며 대답했다.

“글쎄, 벌써 생각나는 장점이 하나 있는데?”

그리고 콜린스의 입술에서 샘솟는 웃음소리를 깊은 입맞춤으로 삼켰다.




1945년 12월 15일.


멀리서 부르는 소리에는 귀를 막을 수 있을지 몰라도 손목을 잡아채는 강한 힘까지 무시하기는 어려웠다. 반사적으로 등을 돌려 뒤를 바라본 순간, 파리어는 익숙한 아마 빛 금발과 친숙한 입술 위의 점을 보고 입을 턱 벌렸다.

“토마스?”

그의 이름이 불렸다. 속삭이는 콜린스의 목소리는 끝이 갈라져 있었다.

“파리어, 정말 당신이에요?”

“마지막으로 확인했을 때 그게 내 성(姓)이긴 했지.”

파리어는 최대한 무심하고 스스럼없는 태도로 답하려고 노력했다. 다시 한 번 심장이 부서지는 것만 같았다. 수용소 간수가 트래버스에게는 편지를 전해주고 그를 향해서는 불쌍하다는 듯 고개만 저었을 때와 똑같은 기분이었다.

콜린스는 한 번 그리고 두 번, 연이어 파리어의 얼굴을 위아래로 훑었다. 그리고 절대 자기가 헛것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님을 확인하려는 듯이 다시 한 번 더 뚫어져라 응시했다. 다시 시선이 마주쳤을 때 콜린스의 눈은 이미 넘치기 시작한 눈물로 방울방울 빛나고 있었지만, 파리어는 그가 왜 우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당신이 죽은 줄 알았어요, 파리어. 아무도 당신을 못 찾았다 길래.”

말이 안 되는 얘기였다.

“하지만 줄곧 너한테 편지를 썼는데.”

잉크와 종이가 떨어지고, 그래서 다른 사람 것을 훔쳐야 할 때까지 수백 번이나 계속 쓰고 또 썼단 말야. 한 번쯤은 네가 답장을 보내줄 거라는 희망에 매달려 살았어. 편지를 받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만 믿고 해방될 때까지 버텼단 말야.

“편지라니, 난 한 번도─”

“해미쉬 삼촌, 나는 안 된다면서 삼촌은 외투도 안 입고 나가면 어떡해?”

파리어가 떠난 현관 앞에서 작은 소녀가 크게 소리를 외쳤다. 파리어는 이제 콜린스가 뒤돌아 갈 거라고, 그의 가족이 기다리고 있는 안락한 집으로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콜린스는 돌아서지 않았다. 그는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

“삼촌?”

콜린스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파리어의 손목을 부드러이 잡아끌었다. 그는 충격으로 놀란 파리어를 흔들어 깨우면서 만면에 소년 같은 웃음을 띠었다. 그 손짓이 뜻하는 바에 파리어는 얼떨떨하게 고개를 흔들 수밖에 없었다.

“들어와요. 우리 조카 소개해 줄게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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