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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어콜린스] 서신 (끝)

포로로 잡힌 파리어에게 편지를 보내고 싶은 콜린스.




똑똑. 소령실의 문이 울렸다. 바틀렛 소령은 기꺼운 기분으로 대답했다.

“들어오게.”

군화 소리를 울리며 나타난 사람은 그의 신뢰하는 ‘새’들 중 하나였다. 새는 방금도 정찰을 마치고 오는 길인 듯 했다. 구겨진 정복, 고글에 눌린 머리카락이 증거였다. 소령은 구명조끼만 겨우 벗고 온 듯한 조종사의 소탈한 차림새가 마음에 들었다. 남들은 빈틈없이 꽉 짜인 제복을 보면서 공군에 대한 경외를 키우는 듯하지만, 그는 좁은 콕핏 안에서 닳고 구겨진 조종사의 복장이야말로 진정한 군인의 모습이라고 믿는 사람이었다. 명예가 사라진 현대의 전투에서 전투기 조종사야말로 유일하게 남은 기사도의 현신이었으니까.

파일럿은 상관의 얼굴을 보자마자 재빨리 절도 있게 경례를 올렸다. 소령이 흡족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편히 쉬게, 콜린스.”

“감사합니다.”

“정찰은 어땠나?”

“04시 20분경에 남서쪽 상공에서 폭격기 한 대, 호위기 두 대와 조우했습니다. 지상관측소 말로는 웨이머스 항으로 가는 것 같았습니다만, 해안에 접근하기 전에 쫓아냈습니다.”

“피해는?”

“전투기는 모두 격추했고 폭격기는 돌아갔습니다. 우리 쪽은 전원 무사합니다.”

“잘했어! 아주 잘했네.”

모처럼 들려온 반가운 소식에 소령의 안색이 환하게 폈다. 그는 지난주부터 이어지고 있는 교전을 떠올렸다. 밀리진 않지만 그렇다고 완벽히 적을 몰아내지도 못하는 교착상태였다. 해안선에 근접하는 폭격기 대열을 막느라 벌써 조종사 열댓이 수장된 참이었다. 그중에서 12 중대의 포티스 팀만이 유일하게 사상자를 내지 않고 있었으니 소령이 특별히 팀의 편대장에게 큰 호의를 갖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문득 아직 서른조차 넘지 않은 중위를 향한 고마움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자네도 이제 6년째지. 익숙한 얼굴들은 아직 남아있나?”

“절반…… 정도 됩니다.”

중위가 건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는 역전의 에이스답게 절도 있는 자세로 서 있었지만,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수시로 덮쳐드는 이별과 씁쓸한 악몽 사이에서도 무너지지 않은 것은 오로지 그의 타고난 굳은 심지 덕이었다. 어떤 압박 상황 속에서도 평정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콜린스의 가장 뛰어난 미덕이었다. 바틀렛 소령은 까마득한 옛 시절 처음 그가 임관하던 때의 앳된 얼굴을 떠올리며 회한에 젖었다. 이 청년에게는 진 빚이 참 많았다.

“그들도 자랑스러워 할 걸세. 나도, 다른 대원들도 자네한테 진 빚이 참 많아.”

소령이 나지막이 읊조렸다. 그러나 솔직한 칭찬과 감사의 말에도 에이스는 크게 기뻐하거나 환하게 웃지 않았다. 늘 씩씩하게 말하고 활기차게 미소 짓던 모습은 이미 머나먼 과거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이 젊은이도 너무 많은 이별을 겪었어. 옛날과 똑같기를 바랄 수는 없는 일이다.’

소령은 남몰래 들리지 않을 한숨을 쉬었다. 간만에 찾아온 기쁜 소식도 너무 오랜 기간 음울함에 젖어버린 상심을 끌어올리진 못했다. 그는 노쇠한 기세를 숨기려는 듯, 일부러 중위로부터 등을 돌렸다. 그리고 평정을 가장하며 말했다.

“이만 가도 좋아. 피로할 텐데 가서 쉬게나.”

콜린스가 처음으로 입을 뗀 것은 그때였다.

“소령님.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콜린스의 태도는 어딘가 조심스러워 보였다. 작전이나 지시에 관한 것이 아닌 한 좀처럼 먼저 사적인 일로 부탁하는 일이 드물던 그였다. 소령은 내심 놀라서 뒤를 돌아다보았다.

“무슨 일인가?”

“일주일 뒤에 독일로 가는 접선책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곳에 잡혀있는 아군에게 물건을 전하고 싶습니다.”

듣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다.

“파리어 대위 일인가?”

그 이름이 화제에 오른 것도 근 몇 년 만이었다. 포로가 된 이들의 이름은 처음 일 이 년은 안타까운 탄식과 함께 회고 되었다가 더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망각되어 갔다. 전쟁이 계속된지도 이제 오 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일주일 사이에도 수 명씩 사상자가 발생하는 전투기중대에서 그가 잊힌 것도 순리라면 순리였다. 바틀렛 소령 본인도 콜린스가 먼저 말을 꺼내기 전까진 행방불명된 옛 부하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던 참이니까. 사실 이젠 그 얼굴을 떠올려보려 해도 인상이 흐릿했다.

그렇게 침묵 속에 잠들어가던 이름을 그의 옛 파트너가 다시 끄집어낸 것이다. 이젠 베테랑이 된 콜린스의 낯 위로 다시 신입 시절에나 보이던 초조한 기색이 어렸다.

“자간에서 편지가 왔습니다. 그곳으로 이송됐다고……”

소식을 전하는 콜린스의 시선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무리한 부탁인 걸 알면서도 청해야 하니 그 말을 꺼내기까지의 염려가 퍽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을 잘라내야만 하는 소령의 기분도 결코 유쾌하진 않았다.

“불가능한 거 알고 있잖아.”

“겨울이 너무 혹독합니다, 소령님.”

콜린스가 손에 쥐고 있던 모자를 구기며 말했다.

“저쪽의 감시는 더 혹독하지. 걸리면 잡힌 한 명만 잘라낸다고 해결될 일이 아냐. 독일과 프랑스로 투입된 정보원들을 전부 버려야 할 수도 있어. 그런 도박을 위에서 허락해줄 것 같나?”

현실을 이야기하는 소령의 표정은 딱딱했다. 아끼는 부하의 평판을 위해서라도 그 편이 나았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콜린스는 좀처럼 포기할 생각이 없어보였다. 팀원을 잃은 이후로는 더더욱 상명하복에 충실하던 사람이 이번만큼은 쉽게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송환 목록에 올려달라는 게 아닙니다. 소포 하나면 됩니다. 그뿐입니다, 제발─”

애원하는 말소리에서 절박함이 묻어나왔다. 몰려드는 적기 앞에서도 눈 하나 깜짝하는 법이 없던 남자였다. 그랬던 사람이 지금 무릎이라도 꿇을 것처럼 빌고 있었다. 마치 죽음과 싸움으로 단련되기 전의 순진하고 무르던 옛날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바틀렛은 그 눈먼 애정이 측은하면서도 기가 막혔다. 그의 부하는 사랑일 수 없는 것을 두고 사랑이라 부르고 있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저절로 언성이 높아졌다.

“불장난 하던 시간은 끝났어, 소위!”

무의식적으로 옛 호칭이 튀어나왔다.

“기댈 곳 없는 전장이라서 대위에게 많이 의지했던 건 알겠어. 그래도 그런 부적절한 관계는 전장에 두고 왔어야지. 귀환해서까지 휘둘려 살면 어떡하나?”

모진 타박이 쏟아졌지만 콜린스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꿋꿋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파리어 대위와 저는 그런…… 관계가 아닙니다. 다만 같은 편대 전우로서,”

“그럼 전우답게 처신해! 도버에서 있었던 일은 도버에 묻으라고.”

“……”

비수 같은 말이 내리꽂혔다. 콜린스는 그저 입술만 꽉 깨물었다. 창백한 얼굴 위로 그늘이 드리웠다. 소령은 점점 핏기가 빠져나가는 그 안색에서 애써 등을 돌리며 말했다.

“못 잊겠거든 모르는 척이라도 해. 이런 일로 명예도 잃고 쫓겨나기엔 자네 실력이 너무 아까워서 그래. 자네 나이도.”

그렇게 말하는 바틀렛은 자기의 경고를 진심으로 믿고 있었다. 심지어 조금 후에는 울고 보채는 아이를 달래려는 부모처럼 안타깝게 호소했다.

“아직 서른도 안 되었지 않아, 응?”

그러나 쇠약해진 노장의 회유도 우물처럼 깊어진 슬픔을 흔들진 못했다. 콜린스에게는 상관의 부드러운 회유가 마치 뱀독과 같아서, 그 이빨에 물리면 남은 희망마저 빼앗길 것처럼 느껴졌다. 이번에도 물러선다면, 그래서 영영 파리어를 빼앗긴다면 더 이상 숨을 이어갈 자신이 없었다. 그러기에는 너무 지쳐버렸다.

그는 독사를 경계하는 짐승처럼 바짝 뒤로 물러났다. 선하고 커다랗던 눈동자가 냉정한 열정으로 흔들렸다. 새파란 눈에 묵은 원망이 담겨 있었다.

“한 번도…… 단 한 번도 도망친 적 없었습니다.”

곧은 목울대가 침을 삼키느라 울렁였다. 오랫동안 순종만을 알던 입술로 원망을 내뱉는 것은 생각보다 떨리는 일이었다.

“싸우라면 싸우고 버티라면 버텼습니다. 귀환이 불가능할 걸 알아도 가라면 갔습니다. 공포도 외면해가며 충성한 결말이 고작 이겁니까?”

“군인이라면 당연히 할 일이야.”

소령이 단호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러나 한 번 새오나오기 시작한 한탄은 쉽게 멈출 길이 요원해 보였다. 콜린스는 더욱 자세를 꼿꼿이 세우며 말을 이었다.

“예, 그리고 그 분은 군인 중의 군인이었죠. 그날 던커크로 기수를 틀었을 때 파리어 대위는 당신이 다신 돌아오지 못할 거란 걸 알고 있었습니다. 누구보다 냉철하고 판단이 빠른 사람이었어요. 잘 아시잖습니까? 귀환 가능성이 일 할도 안 되는 걸 뻔히 알면서도 혼자 날아간 겁니다. 단 한 마디 불평도 없이요!”

흔들리는 배 위에 서서 초조하게 R9612의 흔적을 쫓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했다. 콜린스는 그렇게 하면 아픈 기억을 잊을 수 있기라도 하듯, 입 안쪽을 거칠게 짓씹었다. 밀물처럼 밀려드는 후회를 억누르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다시 입을 열었을 때는 이에 찢긴 입술이며 안쪽 살갗이 온통 부르터 있었다.

“그랬던 사람이 혼자서라도 살아남았으니 이제 그만 그 짐을 덜어줘도 되는 거 아닙니까.”

조국마저 외면하면 그에겐 더 이상 아무도 없어요.

물기 어린 눈동자가 그렇게 외치는 듯 했다. 고집스레 두 눈을 부릅떠 봐도 눈시울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까지 막을 순 없었다. 그 모습에 바위처럼 단단하던 소령의 그림자가 크게 움츠렸다. 콜린스는 씨근거리는 숨을 애써 가라앉히며 말했다.

“제발 편지만이라도 보낼 수 있게 해주십쇼.”

상관의 냉정하고 경악스런 시선이 쏟아졌다.


*


막사로 돌아왔을 때는 밤이었다. 혼자 쓰게 된 방은 무척이나 쓸쓸해서 불을 켤 의욕조차 돌지 않았다. 몇 안 되는 가구만이 나가기 전과 같은 모습으로 주인을 반겼다. 콜린스는 먼지 묻은 외투를 벗을 생각도 못하고 침대 위에 풀썩 주저앉았다. 정돈된 침구만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내려앉았다. 전등을 켜지 않은 막사 안으로는 가로등 불빛 하나 들어오지 않았다. 콜린스는 그 새카만 어둠 속에 홀로 앉아서 낮의 대화를 복기했다.

‘그만 잊어버리고 그만 묻으라고?’

헛웃음만 나왔다.

‘모른 척 외면할 수 있는 감정이었다면 처음부터 시작하지도 않았다.’

소령실에서 나눈 대화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가슴이 답답했다. 존경하는 그의 상관은 본인이 어떤 주문을 요구한 건지 과연 알고 있기나 할까? 그는 콜린스 또한 그날 그 때를 잊어보려 무던히 노력했다는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애를 써도 소용이 없었다. 사람 기억이 다 그렇듯, 쉼 없이 이어지는 죽음에 무뎌져서 그 사람의 실종도 쉽게 망각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현실에 치여서 잊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그 사람의 표정 하나, 습관 하나가 끈질긴 악몽이 되어 어딜 가나 악착같이 따라다녔다.

한때는 분명 소령처럼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그가 설득한 것처럼, 어차피 매도당할 사랑이라면 끝까지 감추는 것이 파리어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펜을 들어 한 글자 한 글자 글을 적어나가기 시작하면 더 이상 숨길 수 없었다. 쏟아진 잉크통처럼 진심이 흠뻑 새어나와 획 하나, 쉼표 하나마다 뚝뚝 흔적을 남겼다.

<파리어에게.>

오지 않는 소식을 그리며 홀로 시작했던 편지는 어느 새 마디마디 쌓여 수북이 산을 이룬지 오래였다. 사랑은 숨길 수 있을지 몰라도 연정까지 숨길 순 없었다. 어둠과 적막이 찾아오는 밤이면 늘 그랬듯이 콜린스는 이번에도 편지를 썼다.

<파리어에게.

새 옷을 보내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미안합니다. 바람 불고 눈이 내려도 당신을 지켜줄 수 있을 만큼 따뜻한 옷을 꼭 보내고 싶었는데, 부족한 내 능력으로는 고작 이 편지가 전부입니다. 하늘을 날아 당신을 데리러 갈 수 있다면 좋을 텐데요. 요즈음에는 차라리 밤이 끝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수십 번을 다시 쓰며 완성한 편지에는 ‘사랑’이라던가 ‘그리운’ 같은 단어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손으로 종이를 쓸면 그 위에 물들 것처럼 짙은 감정이 흠뻑 묻어났다.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결말이었다. 다른 점은, 재로 사라졌던 지난 백 통의 편지들과 다르게 이 편지는 살아남아 머나먼 곳에 있을 이에게 전달되리라는 점뿐이었다. 결국 소령은 틀렸던 것이다. 세상에는 무슨 수를 써도 묻어지지 않는 마음도 있었다.

수용소로 보내는 편지는 길이가 제한돼 있어서 길게 쓸 수도 없었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군용 엽서에 단 여덟 줄. 그게 전부였다. 넘쳐나는 염려와 마음을 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여백이었다. 콜린스는 얼마 쓰지도 못해 금세 차버린 엽서를 아쉬운 눈길로 내려다보았다.

그렇게 한참을 종이만 쓰다듬다가, 퍼뜩 어떤 생각이 닿아 책상 서랍을 뒤졌다. 구석에 작은 스냅사진 몇 장이 남아 있었다. 입대 후에 신분증을 만들기 위해 인화했던 사진이었다. 임관하자마자 찍은 것이어서 표정도 자세도 어색하기 그지없었지만, 지금으로서는 이 정도가 최선이었다.

직접 말로 할 수 없다면 사진이라도 같이 보내고 싶었다. 사진을 보내면, 그렇게 하면 무거운 몸뚱이 대신 영혼만이라도 같이 날려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서. 중력에 잡힌 새에게는 그것만이 방법이었다.


*


“Aufwachen! geh weiter!”

시끄러운 쇳소리가 고막을 울렸다. 한참을 움막 같은 볏짚 아래 누워 있던 파리어는 머리를 울리는 그 소리에 눈을 떴다. 빳빳하게 굳은 고개를 돌려 앞을 보았을 때는 이미 간수들이 추위 속에 잠든 포로들을 깨우러 다니고 있는 중이었다. 개중 몇몇은 영영 다시 눈을 뜨지 못한 이도 있었다. 어젯밤에 유난히 심하게 몸을 떨던 옆 사람은 이미 하얀 눈 속에 파묻혀 버렸다. 적어도 그 사람은 더 이상 괴롭지 않아도 되었다. 얼마나 더 이어질지 모르는 눈보라 속의 행군 대신에 고요한 눈밭이 그를 품었으니. 파리어는 추위 때문에 어질어질한 정신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이봐! 멈추지 말고 계속 가! 어서!”

눈을 떴음에도 못 박힌 듯 한 자리에 서 있는 파리어를 향해 간수가 소리쳤다. 경험 많은 포로는 굳이 대꾸하는 대신 밤 동안 내려놓았던 등짐을 다시 짊어지고 일어섰다. 잡힌 이후로 줄기차게 반복했던 반항이나 대꾸도 살을 에는 동장군 앞에서는 고개를 숙였다. 이런 추위 속에서는 말 한 마디 받아치는 것도 열량 소모였다. 동구의 낮은 짧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밤이 찾아올 것이고 그 전까지 다음 마을에 도착하지 못하면 다시 한 번 노천에서 밤을 지새워야 한다. 지금까지 잘 버텨오긴 했으나 오늘 밤의 추위는 기세부터 심상치 않았다. 행군을 계속하지 않으면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이다.

뇌까지 얼어버릴 것 같은 추위 속에서 떠오르는 생각은 그것뿐이었다. 그는 납처럼 무거운 다리를 움직여 다른 포로들 틈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절대 도착 못 할 거야.”

같은 영국인 포로 하나가 새파랗게 질린 입술을 덜덜 떨며 말했다. 파리어는 못 들은 척 고개를 숙였다.

“우린 길 위에서 죽을 거라고.”

그렇게 중얼거리는 포로는 한눈에 봐도 썩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남에게 관심을 보낼 여력조차 없었기에 파리어는 무시로 일관하며 묵묵히 다리를 움직였다.

눈이 계속 내렸다. 결국 오백 미터도 채 더 이동하지 못한 지점에서 그는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을 느꼈다. 신발이 젖었다 녹기를 반복하면서 혹사당한 발을 찢겨낼 것처럼 고통스럽게 찔러댔다. 어깨에 들쳐 맨 배낭끈이 한 발짝씩 옮길 때마다 묵직하게 내려앉으며 살갗을 갉아먹을 것처럼 파고들었다. 사흘 째 눈보라에 노출된 손끝은 감각이 둔해진지 오래였다. 쥐톨만한 불꽃이라도 온기가 간절했다.

불이 간절한 것은 파리어만의 사정이 아니었다. 몇 발자국 앞서 걷던 다른 포로들은 어느 새 주섬주섬 짐을 뒤져 장작이 될 만한 걸 꺼내고 있었다.

“불을…, 불을 피워야 해.”

외국인 포로 하나가 얼어서 잘 떨어지지 않는 입술로 한 단어를 반복했다. 그는 숯처럼 검고 그을린 손바닥을 힘없이 맞비비며 불 피우는 시늉을 했다. 그러더니 파리어의 외투 틈으로 슬쩍 삐져나온 종이 뭉치를 가리켰다. 그때서야 무슨 뜻인지 알아챈 파리어가 잔뜩 품을 수그리며 경계했다. 그는 품속의 편지가 갓난아기라도 되는 것처럼 싸고 돌았다.

“안 돼.”

“불! 불이 필요하다니까!”

외국인 포로가 답답하다는 듯이 가슴을 내리치며 말했다. 그는 주위에서 불을 피우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가리켰다. 다들 편지며 일기, 수감일지 등 지류란 지류는 모조리 꺼내 태우고 있었다. 땔감으로 쓸 수 있다면 가족에게서 온 사진까지도 불씨 속으로 집어넣었다. 체온을 녹이고 길을 밝힐 불을 피우려면 남은 종이는 전부 긁어모아야 했다. 파리어는 머리로는 그 상황이 이해가 갔지만, 도저히 품속에 감춘 편지를 꺼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건 콜린스한테서 받은 유일한 편지였다.

한 장이라도 더 땔감을 구하려는 포로와 목숨 같은 편지를 지키려는 파리어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지자, 소란을 듣고 다른 포로들이 몰려들었다. 싸움을 구경하러 왔던 그들은 파리어가 아직까지 품속에 편지를 감추고 있는 것을 보고서 간절하게 눈을 번득였다. 그들은 하나 같이 절박한 눈빛으로 파리어를 응시했다. 텅 빈 눈이 꼭 사형 선고를 기다리는 사람들 같았다. 파리어는 그 생기 없는 군중의 몰골과 마주치고서도 외면할 만큼 냉정한 성정이 되지 못했다.

“다들 가진 종이를 내놨잖아. 당신만 남았어.”

이국 억양의 포로가 말했다. 그것이 마지막 경고였다. 잠시 후에는 파리어 역시 머뭇거리는 동작으로 품속에 조심스레 감춰둔 엽서와 사진 위로 손을 가져가고 있었다. 외투 안주머니를 살짝 쥐었다가 다시 내밀었을 때는 그 손도 볼품없이 떨리고 있었다. 그는 비탄으로 흔들리는 손을 간신히 움직여 비닐로 꽁꽁 싸놓은 주머니를 열었다. 눈비에 젖지 말라고 수용소를 나서기 전에 곱게 싸놓은 비닐이었다. 먼 여정 동안 함께 했던 그 편지를 이젠 불 속에 던져 넣어야 했다.

<파리어에게.>

엽서의 내용은 하도 여러 번 읽어서 이제 보지 않고도 한 줄 한 줄을 전부 외울 수 있었다.

<따뜻한 새 옷을 보내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미안합니다. 부족한 내 능력으로는 고작 이 편지가 전부입니다.>

그러나 추위가 지배하는 수용소에 밤이 찾아오면 파리어는 옷 대신 그 편지를 담요 삼아 두르고 잠에 들곤 했다. 그 편지를 곁에 지니고 다니면 마치 콜린스를 품에 안고 있는 것만 같았고, 그 자체로 콜린스의 부재를 대신했다. 줄글일 뿐인 편지는 그렇게 현실의 반영이 되어 그의 곁을 지켜주었다.

<하늘을 날아 당신을 데리러 갈 수 있다면 좋을 텐데요.>

그러나 날아갈 수 없으니 대신 영혼을 보내겠다며 동봉한 것은 빛바랜 사진 한 장이었다. 처음 영국에서 전달된 우편 봉투를 받았을 때 파리어는 엽서 뒤에서 떨어지는 익숙한 얼굴을 보고 환영을 본 사람처럼 숨이 멎었더랬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작은 흑백 스냅사진 속에서 웃고 있는 얼굴은 오 년 만에 보는 콜린스의 얼굴이었다. 갓 임관하자마자 찍어서 아직 앳된 티가 역력한 얼굴이 그 시절 그대로 남아 있었다. 전쟁을 모르던 시절의 젊은 그는 긴장한 듯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요즈음에는 차라리 밤이 끝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새벽빛은 너무 강렬해서 꿈속에서 만났던 당신 잔상마저 삼켜버리니까요.>

그렇게 말하던 콜린스의 미소만큼은 차마 떠나보낼 수 없었다. 차마 태울 수 없었다. 수없이 쓸어보느라 모서리가 닳아버린 그 사진을, 파리어는 남몰래 다시 외투 안쪽으로 깊숙이 밀어 넣었다. 웃고 있는 어린 연인의 얼굴만은 결코 불길 속에 던져 넣을 수 없었다. 잠시 후 재촉하려 손을 내민 포로가 받아든 것은 손때 묻은 낡은 엽서 한 장뿐이었다.

형형한 파리어의 눈빛이 신경 쓰였는지, 포로는 마지못한 기색으로 콜린스의 편지를 불 속에 던져 넣었다. 편지는 구겨지지 않은 채 고운 모습 그대로 화염에 휩쓸렸다.

종이는 가장자리부터 그을리기 시작해서 점차 꺼멓게 변하기 시작하더니, 이내 한 줌 재로 화 해버렸다. 남은 건 콜린스의 혼을 집어 삼키고도 자라지 못한 미약한 불길뿐이었다.

“대위, 이만 가야 해.”

다른 포로 하나가 파리어의 어깨를 흔들며 말했다. 그때까지도 그는 편지가 타는 것을 멍하니 지켜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뒤에서 감시하고 있던 간수들이 그 때문에 지체된 대열을 알아차리고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Mach weiter! Mach weiter!”

알아들을 수 없는 시끄러운 말소리가 고함을 질렀다.

“여기 이러고 있으면 수상하게 여길 거야.”

동료가 불안한 듯 동공을 굴리며 속삭였다. 파리어는 타는 목으로 대답했다.

“인사를…… 마지막으로 인사만 하겠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살아있는 사람에게 작별을 고하듯 타버린 잿더미를 아스라이 어루만졌다. 손을 모아 검은 가루를 그러쥐어보려 했건만, 야속하게도 세찬 바람이 재를 날려버렸다. 전할 수 없는 사과만이 빈자리를 채웠다.

‘미안해. 미안해. 미안하다, 콜린스.’

싸늘한 북풍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갔다. 편지를 품고 있던 심장 한쪽이 칼로 도려낸 듯 아프게 저려왔다.


<아침마다 눈을 뜨는 것이 두렵습니다. 또 당신 없는 하루를 견뎌내야 하잖아요. 많이 보고 싶습니다, 파리어.>

<제발 어서 돌아오세요.>

마지막의 지웠다 쓴 자국은 이제 거의 사라져 있었다.



(끝)





(이하 개인적인 정리) 

* 독일 내 포로수용소의 종류 및 특징

2차 대전 시기 동안 영미군 포로를 수감한 독일의 포로수용소는 크게 다섯 종류로 구분된다. 사로잡힌 포로가 이송 중에 수감되는 임시 수용소(Dulag), 부사관 및 사병 수용소(Stalag), 장교 수용소(Oflag), 공군 수용소(Stalag Luft), 해군 수용소(Marinelagers). 이중에서 연합군 공군 소속의 장교와 부사관을 수감한 Stalag Luft는 그 뜻을 직역하면 Main Camp, Air가 되며, 독일 공군 사령부(Luftwaffe)에 의해 직접 운영되었다. (해군 수용소인 Marinelagers 역시 독일 해군 사령부에서 직접 운영.)

독일 육군(베어마흐트)이 관리하는 일반 Stalag와 BABs에 비해서 공군수용소와 해군수용소는 수감 여건이 나은 편이었다. 특히 공군 수용소의 경우, 그 관할을 맡은 독일 공군 사령부가 비밀경찰(Gestapo)이나 히틀러 직속 친위대(SS)와 경쟁 관계에 있었는데, Luftwaffe는 이들과 권력 대결을 벌이는 과정의 일환으로 연합군 포로에 대해 비교적 유한 태도를 보였다. 국제 적십자회와 이익대표국 조사위원회가 실시한 1940년~1945년 포로 수용소 실태 조사에 따르면, 독일의 전체 수용소 중에서 해군 수용소가 97%로 보통 이상의 평가를, 공군 수용소가 92%로 보통 이상의 평가를 받았다. 이와 반대로 일반 사병/장교 수용소는 보통 이하 73%의 평가를 받았다(Vasilis Vourkoutiotis, "What the Angles Saw: Red Cross and Protecting Power Visits to Anglo-American POWs, 1939-1945", Journal of Contemporary History 40(4), 2005, p.698) 

여러 공군 수용소 중에서도 세 번째로 건립된 Stalag LuftⅢ가 1944년에 RAF 포로들이 벌인 '대탈주(the Great Escape)'로 특히 유명해졌다. 독일 남슐레지아 지방 자간(Sagan, 현재는 폴란드 영토)에 세워진 Stalag LuftⅢ는 빽빽한 침엽수림으로 둘러쌓인 데다 건조한 모래 위에 지어진 불모지였다. 독일 공군 사령부는 처음 Stalag LuftⅢ를 계획할 때부터 공군 포로 중에서도 가장 탈출 시도가 잦고 반항적인 포로들을 한 데 모아놓는다는 의도로 이곳을 설립했다. 건조해서 퇴적되기 어려운 모래는 포로들이 땅굴을 파는 것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었고, 탈출 시도가 있다면 곧바로 감지할 수 있도록 모든 건물은 지면과 바닥 사이에 일정 높이의 공간을 두고 지어졌다. 혹 철조망을 넘는다고 해도 수용소 부지를 둘러싸고 있는 빽빽한 침엽수림을 제 시간에 성공적으로 빠져나가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Stalag Luft3 전경.
Stalag Luft3 전경.
감시 초소(goon).
감시 초소(goon).

1944년 4월에 RAF 포로들에 의해서 한 번의 대규모 집탄 탈주 시도가 있었는데, 이때 포로들은 1943년 3월부터 44년 3월까지 약 일 년 간 총 3개의 땅굴을 파서 하룻밤 사이에 40명 이상의 자국 포로를 탈출시키는 시도를 했다. 그러나 대다수가 곧 잡혀서 즉결 처분되었으며, 비교적 포로에 대한 대우가 온화했던 Stalag LuftⅢ에서조차 이후 분노한 히틀러의 지시에 따라 남아있던 포로들 수십 명이 보복 사살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게슈타포와 SS가 집행. 적십자회 보고서에 따르면 전쟁 수행 기간 동안 독일 내 포로수용소에서 보고된 가혹행위의 대부분은 게슈타포나 SS가 개입했을 때 벌어졌다고 한다.) 이때의 기록을 다룬 것이 1963년에 개봉한 영화 <대탈주The Great Escape>이다.

 

Stalag Luft3의 위치.
Stalag Luft3의 위치.

이후 1944년 겨울부터 1945년 5월 유럽 승전일(VE-Day)이 도래하기 전까지, 공군 수용소에서는 이전에 비해 훨씬 가혹해진 환경이 이어졌다. 무엇보다 대탈주와 그에 뒤따른 게슈타포의 보복 사살 이후로 탈출 시도가 제한적으로 줄어들었으며, 독일군이 점차 연합군에 밀리기 시작하면서 포로들에게 지급되던 식량 및 생필품의 수준이 크게 저하되었기 때문이다. 포로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 시기 동안에는 적십자회에서 보내주는 구호 소포가 아니었다면 하루의 기본 열랑조차 섭취하지 못할 만큼 식량난이 극심했다고 한다.


* 독일 내 포로수용소의 실제 생활 여건

 그렇다면 독일 내 포로수용소의 실제 생활 여건은 어땠을까? 유대인들이 수감됐던 강제수용소만큼 처참하고 심각했을까? 적어도 영미군 포로가 수감되었던 수용소는 기타 강제수용소나 소련군 포로가 수감됐던 수용소에 비해서 나은 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첫째로 영국은 1929년에 이미 독일과 포로에 대한 인간적 대우를 규정한 제노바 조약을 체결한 상태였으며, 또한 인종주의를 기치로 내세웠던 나치 독일에서는 앵글로 색슨 계통인 영국군과 미군에게는 비교적 후한 대우를 해주었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스탈린이 제노바 조약에 서명하는 것을 거부했으며, 나치 독일의 세계관에서 '독일의 노예, 슬라브 민족'으로 낙인 찍힌 러시아군 포로는 매우 열악한 환경에 수감되거나 혹은 항복 즉시 집단 사살당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제노바 조약은 포로 사살 금지 조항 외에도 체결국 포로들의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여러 조항들을 마련해두었다. 가령 국제 적십자회 및 이익 대표국 대표단에서는 변호사 및 의사를 파견해서 독일 내 포로수용소 실태에 대한 정기 조사를 실시할 수 있었다(Vasilis Vourkoutiotis의 논문이 1939~45사이에 작성된 이 스물 네 건의 보고서를 사용.) 또한 포로들은 독일 국방군이 지급받는 식량과 동일한 종류 및 분량의 식량을 배급받았으며(단 독일 국방군이 지급받은 식량 자체가 연합군 병사들에 비해 열악한 수준이었으며 전황이 악화됨에 따라 그 기준도 점차 완화되었다는 점을 참작해야 한다), 부족한 식량 및 생필품은 적십자회의 구호 소포(Red Cross Parcels)를 통해 추가적으로 지급받았다. 조약은 포로 수용소에 위생적인 수준의 숙소, 부엌, 공동 화장실 및 욕실, 운동장, 체육관을 갖출 것을 규정했으며 전기 및 환기 시설을 갖출 것을 요구했다. 특히 장교들의 경우, 적국의 군수산업에 강제로 동원되는 것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대개는 수용소 내의 농업 노동에 매진했다. 과다 근로가 잦았지만 노동에 대한 보수는 월급으로 매달 지급되었으며 이 돈으로 수용소 내의 매점에서 물건을 살 수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시설은 마련되어 있으나 물자 부족으로 인해 제대로 구색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즉, 조약의 내용 및 조사단이 작성한 실태 보고서를 참고했을 때, 독일 내 영미 포로수용소의 환경은 상대적으로 양호한 편이었으며 40년~45년에 작성된 전체 보고서 중 단 1%만이 제노바 조약에 대한 심각한 위반 사항을 지적했다. (Vourkoutiotis, 2005)

그러나 가혹행위나 인권유린은 없었다고 해도, 미디어를 통해 대중들에게 익히 알려진 이미지와 달리, 포로 수용소에서의 탈출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수감된 대부분의 포로들은 (장교를 포함해서) 만성적인 영양실조 및 총살 위협에 시달렸다. 따라서 영화에서 묘사된 집단 탈주는 매우 드문 일이었으며 대부분의 포로들은 체력 저하와 끝없는 지루함 속에서 전쟁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Imperial War Museum, "What life was like for pows in europe during the second world war", http://www.iwm.org.uk/history/what-life-was-like-for-pows-in-europe-during-the-second-world-war, 현재 홈페이지 공사중.)

 

* 포로와 본국 간의 서신 교환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이처럼 최소한의 여건 속에서 생활해야 했던 포로들에게 무엇보다 큰 위안이 되어준 것은 역시 본국에 있는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이 보내준 편지와 사진들이었다. 독일에 수감된 연합군 포로들은 제노바 조약이 규정한 바에 따라, 국제 적십자회를 통해서 모국의 가족과 정기적으로 서신을 주고 받을 수 있었다. 규정된 분량은 한 달에 편지 2~5통 및 엽서 4통이었으며, 편지 한 통 당 24줄, 엽서 한 통 당 8줄의 길이 제한이 있었다. 그러나 유럽 전역에 퍼져 있던 포로 수용소와 각국 사이에 우편을 전달하는 것은 상당한 절차였기 때문에 수시로 배송이 지연되었다. 조약은 일반적으로 거처가 확인된 포로들이 한 달에 한 통 이상의 편지를 교환할 수 있도록 정해뒀지만, 실제로는 3~4개월 이상 소식이 없다가 한 번에 수십 통의 편지가 전달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렇게 전달된 가족으로부터의 편지는 "그 자체로 가족의 부재를 대신"하면서 "이미지일 뿐 아니라 현실의 구현이자 흔적, 모사"로 여겨졌다. 동봉할 수 있는 유일한 물건이었던 스냅사진을 포로들은 실제 가족인 것처럼 소중히 품에 지니고 다니거나 키스를 보냈다. (Clare Makepeace, "Living beyond the barbed wire: the familiar ties of British prisoners of war held in Europe during the Second World War", Historical Research 86(231), 2012) 

다음은 포로 거취 확인을 알리는 적십자 편지 및 포로들이 고향에 있는 가족에게 보낸 편지들이다.





  

* 일반적으로 '수용소'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대부분은 나치 독일의 강제노동 수용소를 예시로 떠올리는데, 영국(더 포괄적으로는 앵글로-아메리칸)군이 머물렀더 수용소는 분명 이런 곳들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이 안정적인 편이었다. 그러나 강제노동이나 가혹행위가 없었다고 해서 실제로 포로들이 겪었던 어려움이나 고통을 과소평가 할 수 있을까? 적은 식량 배급(하루 세 끼를 모두 양배추, 검은 빵, 감자로 해결해야 했다), 들끓는 이와 벼룩(목재 3층 침대와 짚으로 속을 채운 매트리스 때문), 장기간 계속되는권태와 무기력, 부족한 의복 공급 등은 그 자체로 충분히 열악한 여건임이 분명하다. 무엇보다도 가족과의 이별 및 자유의 박탈은 포로들에게 가장 큰 괴로움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전황이 악화되기 시작한 1945년 초부터는 포로들을 더 외진 수용소로 이동시키려는 강제 행군(Forced March)이 성황했는데, 특히 이 해 겨울에는 혹한과 강행군이 겹치면서 적지 않은 수의 연합군 포로들이 이송 중에 목숨을 잃었다. Stalag Luft3에 수감됐던 RAF 소속 Robert Slane 중위는 45년 1월의 강제 행군 중에 다른 포로들이 불을 피우기 위해 가지고 있던 편지, 사진, 그림을 전부 꺼내 땔감으로 쓰는 장면을 기록했으며, 그것이 전쟁 중 자신이 내린 결정 중 가장 가슴 저민 결정이었다고 회고한다. (M.J. Walton and Michael C. Eberhardt, From Interrogation to Liberation: Stalag LuftⅢ-the Road to Freedom, Authorhouse, 2014, Ch.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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