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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어콜린스] 튼튼숭아 콜린스 1

요즘 튼튼건강숭아 콜린스한테 꽂혔다


콜린스 소위는 튼튼하다. 모두가 그 사실에 동의했다. 장신의 키, 다부진 체격, 종일 비행을 하고도 지치는 법이 없는 지구력. 신체 건강한 젊은이들이 모이기로 유명한 전투조종 대대에서도 그는 남다른 체력을 뽐냈다. 그의 건강함은 술집이나 거리에서 육군과 시비가 붙을 때도 단연 눈에 띄어서, 암암리에 ‘공군 불주먹 걔’라는 별명을 얻은 지 오래였다. 남들보다 월등히 높은 키를 내세워서 위에서 깔아볼 때면 고목나무에 압사당한 매미 같아진다는 의견이 예사였고, 우유에 담갔다 뺀 것처럼 희고 고운 손 어디에서 그렇게 매서운 주먹이 나오느냐며 다들 신기해했다.

콜린스 본인도 자신을 둘러싼 무성한 소문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으니, 말하진 않아도 꽤 으쓱해 했다. 엘리트 정규군이니 어쩌니 해도 결국 RAF도 혈기왕성한 사내놈들 여럿 모인 군대였다. 그리고 군대에서는 명령과 복종만큼 중요한 것이 서열이다. 안 그래도 버드나무처럼 곱고 순둥한 인상 때문에 초면에 얕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는 콜린스로서는, 오해를 좀 사더라도 힘 꽤나 있어 보인다는 소문이 군 생활하기에 훨씬 편한 것이 사실이었다. 튼튼하고 건강하게만 자라달라던 부모님의 지극한 소원을 받들어 매일 매일 운동도 열심히, 연병장도 열심히 뛰고 편식 않고 삼시 세끼 꼬박꼬박 챙겨 먹는 점까지, 그야말로 완벽한 맷집과 내구성을 자랑했다.

그런고로 그는 입대한 이래로 한 번도 자기의 건강에 의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존경하는 파리어 대위님과 연애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콜린스는 방금 식사한 지가 언젠데 벌써 주먹만 한 초콜릿 바를 건네는 대위님을 곤혹스런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짧은 휴식시간, 야외 대기실 밖에 마련된 간이의자에 앉아서 바람 좀 쐬고 있으려는데 어디선가 나타난 파리어가 종종 다가왔다. 자기보다 키는 좀 작지만 단단한 근육만큼은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체격의 사람이 사람들 시선을 피해 슬쩍 자기를 찾는 모습은 퍽 사랑스러웠다. 그렇게 흐뭇하게 웃고 있으려는데, 파리어가 옆자리를 차지하더니 여기저기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구명조끼 안쪽에서 곱게 포장된 미제 초콜릿 바를 꺼내더니 말없이 조용히 찔러주는 것이었다.

“……대위님, 점심 식사 한지 삼십 분밖에 안 지났습니다만……”

예의상 한 번 빼봤으나 파리어는 무슨 소리냐는 듯 눈썹을 꿈틀 거렸다.

“성장기에는 많이 먹어야지.”

성장기는 한참 전에 지난 스물일곱 장정에게 그렇게 말한다. 파리어의 열렬한 권유에 밀리다 못한 콜린스는 슬쩍 시선을 내려 파리어가 가져온 초콜릿 바를 내려다보았다. 큼직큼직한 아몬드가 박혀 있고 캐러멜 시럽이 듬뿍 둘러진 초콜릿 바는 한눈에도 달달하고 열량도 많아 보였다.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초콜릿은 한 입만 베어 물어도 나른한 오후의 잠이 번쩍 달아날 만큼 달달해 보였다. 사이사이 들어찬 설탕 누가는 또 어찌나 달콤해 보이던지.

유혹적인 초콜릿 바의 자태에 넘어가고 만 콜린스는 결국 파리어가 내미는 간식을 덥썩 받아들고 말았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껍질을 까서 한 입 가득 초콜릿과 캐러멜 향이 퍼지고 난 뒤였다. 그는 혀끝이 녹도록 달큰한 맛을 음미하며 입을 우물거렸다. 오도독오도독, 아몬드를 씹는 사이사이, 콜린스는 의심스레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대위님, 왜 저한테 자꾸 (우걱) 맛있는 거 (우걱) 갖다 주십니까 (우걱)”

제가 그렇게 못 먹고 다니는 것처럼 보입디까? 불만 섞인 투정을 흘려 보아도 파리어의 흐뭇한 미소는 사라질 줄 몰랐다. 그는 남은 초콜릿 바를 마저 와작와작 삼키는 콜린스를 흡족한 얼굴로 구경했다. 보기만 해도 절로 배가 부르다는 말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얼굴로. 요즘 따라 파리어는 더더욱 자주 그런 표정을 지었는데 그럴 때마다 콜린스는 어쩐지 귀여움 받는 강아지가 된 것 같아 가슴이 간질간질하면서도 민망했다. 똑같이 다 큰 성인인 처지에 파리어가 주는 간식거리를 넙죽넙죽 받아먹기만 하고. ‘다음에는 절대로 넘어가지 말아야지’ 다짐해 봐도, 파리어가 또 주머니를 주섬주섬 뒤져 달다구리한 과자며 초콜릿을 은근스레 손 안에 쥐어주면 어느 새 홀랑 넘어가서 까먹고 마는 것이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른다. 지금도 파리어는 강아지 쓰다듬듯이 그의 노란 머리통을 쓱쓱 쓰다듬으며 말했다.

“비행 한 번 할 때마다 얼마나 진이 쭉 빠지는데, 잘 먹고 다녀야지.”

그 비행 벌써 일 년째 하고 있습니다만. 소위 계급장은 괜히 단 줄 아십니까? 입술을 삐죽이며 툴툴거려 봐도 파리어는 못 들은 척 자신의 건장한 손목만 만지작만지작 거릴 뿐이다. 마지막 남은 한 입을 쑥 집어넣고 부러 거칠게 와그작와그작 씹어 먹는 콜린스를 보고도 파리어는 배부른 표정으로 조용히 웃었다.

“우리 튼튼한 복숭아. 먹고 무럭무럭 자라라고 주는 거야 내가.”

낮게 중얼거리는 그 혼잣말에 복숭아 소위는 펄쩍 뛰어올랐다.

“아, 대위님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저도 대위님이랑 똑같은 전투 조종삽니다, 전투 조종사요. 같이 비행도 하고 뺑뺑이도 돌고 리더한테 쪼인트도 까인다고요.”

그러니까 애 취급은 그만 하십쇼, 그렇게 따지고픈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얼마 전에는 파리어가 저 먹을 간식거리를 챙긴다고 무려 특식으로 나온 도넛을 리더한테서 갈취한 사건까지 있었다. 살구 쨈을 총총 올린 왕도넛을 받자마자 자기 몫을 얼른 콜린스 입에 쏙쏙 집어넣어 주더니, 애기가 맛있게 꿀떡꿀떡 집어삼키는 것을 보고는 은근 슬쩍 리더 옆에 달라붙어 눈치를 준 것이었다.

‘나이 들면 단 게 안 당긴다던데……’

‘당뇨병 걸릴 때까지 먹고 죽을 거다, 이놈아!’

아직 늙었다는 소릴 듣기에는 창창한 리더가 성을 내며 되받아쳤다. 그래도 결국 팀 막내 줄 거라는 항변에 조용히 손에 쥐어주긴 했다. 포장지 곱게 싸서 도넛을 받아가는 첫째를 보고서 포티스 팀 대장은 혀를 끌끌 차며 면박을 줬다.

‘아까 식당에서도 고기를 산더미 같이 쌓아주더니. 그렇게 좋냐? 응?’

눈을 흘기며 묻자, 포티스 1호는 부끄러워하기는커녕 뻔뻔하게 눈을 치켜뜨며 되묻는 것이었다.

‘대장 벌써 노안 왔습니까? 얘가 키만 멀대처럼 컸지 빼빼 곯은 거 안 보이십니까? 손목이 한 손에 들어와요, 한 손에.’

그 얇은 손목의 주인한테 흠씬 두들겨 맞은 사람들이 들었다면 기가 찰 법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갖다 대는데 산전수전 다 겪었다는 켄필드 소령도 말을 잇지 못했다. 빈말로라도 곯았다고 말하기에는 포티스 팀의 막내는 지나치게 건강했다. 오죽하면 ‘저놈 저거 최근 파리어놈이랑 사귄 이후로 하도 넙죽넙죽 잘 받아먹어서 닫혔던 성장판이 다시 열린 건 아닐까’ 의심이 될 지경이었으니, 듣고 있던 콜린스조차 파리어의 무리한 과보호에 얼굴이 화끈거릴 지경이었다. 그러나 늦게 시작한 연애질에 홀딱 빠져버린 포티스 1호는 아랑곳 않고 어린 애인에게 이것저것 주전부리 챙겨주기를 멈추지 않았고, 그때마다 리더 눈총, 다른 부대원들 눈총을 받으랴 난처한 건 콜린스 몫으로 돌아갔다.

그래도 음식은 남기면 안 된다고, 일단 받은 간식들은 마다 않고 마지막 한입까지 깨끗하게 처리하자는 것이 콜린스의 신조였다. 교육 잘 받은 젊은이답게 순식간에 초콜릿 바를 해치우는 것을 보고서 파리어가 이번엔 누가 사탕을 건네줬다. 역시 단맛은 함께할 때 두 배로 맛있어지는 법. 뽀얗고 통통한 막대를 물고서 쪽쪽 빨아보니 이만한 후식이 또 없다. 콜린스는 야물딱지게 챱챱 한입, 복스럽게 춉춉 한입, 그렇게 대위님의 두 번째 선물도 깔끔히 처리했다.

허전한 입을 채우고 나니 그제야 슬슬 파리어의 지나친 과보호에 신경이 쏠렸다. 부른 배를 쓸고 있던 콜린스가 입가에 묻은 초콜릿을 핥으며 따졌다.

“대위님, 자꾸 이렇게 (춉) 간식 빼돌려서 (춉) 저한테 주시면 (쭙) 제가 취사병한테도 미안하고 (우걱) 다른 대원들 눈치도 보이고 (우걱) 리더가 신경질 내고 (꿀꺽) 또, 어, 군것질을 하다보니까 요즘 살도 많이 찌고 살이 찌면 무거워서 비행기를 못 타고…… 아무튼 군 생활 하는 데 지장이 많이 간단 말입니다. 곤란하지 말입니다.”

대위님을 애인으로 뒀다고 제 군 생활 책임져주지 않지 말입니다.

거기에 눈썹을 축 늘어뜨리는 애교까지 더하자 덩치 큰 강아지가 따로 없었다.

물론 콜린스는 입대한 이후로 삼시세끼 모두 두 번씩 배식을 받으러 가고 중간 중간 나오는 새참이며 야참도 사양하는 법 없이 꼬박꼬박 규칙적으로 챙겨먹는 모범장병이기 때문에 굳이 파리어의 간식이 아니더라도 체중 증가는 필연적인 결과였지만, 파리어는 굳이 그 점까지 지적하진 않았다. 자신의 튼튼하고 건강한 콜린스가 늘 힘차고 씩씩하기만 하다면 부당한 모함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래서 대위는 이번에도 피식 웃으며 복슬복슬한 머리를 쓱쓱 쓸어주는 걸로 그치고 말았다.

“복스럽게 먹는 게 보기 좋아서 그래.”

콜린스는 살짝 이마를 찌푸렸다. 내가 그렇게 많이 먹었던가?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고목나무만한 덩치를 움직이려면 그만한 열량이 필요한 법. 사실 파리어가 자꾸 먹이는 것 자체에는 불만이 없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그의 부모님은 먹는 걸 사양하는 염치없는 아들로 키우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틈만 나면 자꾸 먹이려 들고, 리더가 쿠사리를 먹일 때마다 은근히 자길 싸고도는 파리어를 볼 때마다 ‘내가 그렇게 못 미덥나, 아직 챙겨줘야 하는 병아리처럼 보이는 걸까’ 싶어 조금 자신이 없어질 뿐이다. 전투 대대 중에서도 가장 활약이 크다는 제 11 전투비행대대 포티스 팀에 합류해서 유럽 이곳저곳을 날아다니며 나치놈들 뚝배기를 깨고 다닌 지 벌써 일 년째.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뚝배기를 깨고 다녀야 파리어는 자신을 어깨를 겨룰 만한 윙메이트로 봐줄까?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어리숙하지만도 않고 나약하지도 않다고, 어떻게 각인시켜 줄 수 있을까?

콜린스는 차마 말로 하진 못한 채, 생각에 잠긴 얼굴로 막대기에 늘러 붙은 남은 누가를 쭙쭙 빨아먹었다.

파리어의 반응이 달라진 것은 그때였다. 멍하니 막대기를 ‘쫍’하고 빠는데, 옆에 앉아있던 파리어의 몸이 크게 움찔했다.

“? 대위님 왜 그러십니까?”

“크흠, 아무것도 아냐. 신경 쓰지 말고 사탕 먹어, 옳지.”

그러나 콜린스는 생긴 건 순둥할지 몰라도 속내는 시커먼 군인이었다. 그는 감 좋은 파일럿답게 흰색 풀오버 아래 숨겨진 파리어의 목덜미가 살짝 연붉은색으로 바뀌는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그걸 보자 머리에 깨달음의 종이 울렸다.

‘이거구나!’

파리어는 아닌 척 고개를 돌렸지만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알아채기란 쉬웠다. 이제 누가는 다 녹아서 자국만 남아있는 막대기를 괜히 한 번 더 쫍 빨아보자, 파블로프의 개처럼 재깍 어깨가 들썩인다. ‘만날 나보고 강아지 같다더니 대위님이 더 귀엽잖아.’ 콜린스는 흐뭇한 표정으로 웃었다. 그는 은근슬쩍 손을 뻗어 파리어의 손을 잡았다. 기다랗고 말캉한 손가락으로 거친 손등을 간질이듯 문질러주자 당혹스러운 듯 되돌아보는 모습이 더욱 승부욕을 자극했다. 콜린스는 단내 풍기는 입안이 바싹 마르도록 흥분되는 것을 느꼈다. 주위에 아무도 없건만 그는 재빨리 목소리를 낮추고선 파리어를 떠보았다.

“파리어, 오늘 저녁 후에 따로 일정…… 없으시죠?”

은근한 시선을 보내며 묻자 파리어는 당혹스런 표정만 지었다. 콜린스는 그 침묵을 대답 대신으로 받아들이고선 의뭉스레 통보했다.

“이따 대위님 방으로 갈게요.”

과묵한 남자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는 모습을 실컷 만끽하며, 콜린스는 회심의 의지를 다졌다. 말로 해서 안 되면 몸으로 보여주는 수밖에. 마침 잠자리에서도 도자기 인형처럼 자길 다루는 것이 못내 불만스럽던 차였다.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약하지도, 깨지지도 않는다고 단단히 알려줄 참이었다.



써놓고 보니 간식 먹는 콜린스가 되어버렸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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