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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도시들 가운데 Among the Dead Cities

연합군(RAF)의 민간인 전략 폭격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 사람에 따라 매우 잔혹할 수 있는 사진이 다수 첨부되어 있습니다. 심신 미약자는 보지마세요. 



서지사항: A.C. Grayling, Among the dead Cities, Bloomsbury(London), 2006


* 부제가 '2차대전기 독일과 일본에서의 전략 폭격에 대한 역사와 윤리적 유산'이다. 제목이 나타내는 그대로, 연합군(주로 영국과 미국)이 독일 및 일본의 민간인에 대해 행한 전략 폭격(strategic bombing, 융단 폭격carpet bombing, 포화공격stratify bombing이라고도 한다)이 과연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지에 관한 철학적 문제를 다룬다. 즉, 단순한 역사서라기보단 철학서에 가깝다. 

이 책에서 Grayling은 나치 몰락 직후부터 대중에게 폭로된 홀로코스트의 참화 때문에 독일시민 및 일본 시민을 상대로 행해진 연합군의 민간인 폭격은 '그들이 자초한 벌'로 당연시되는 경향이 강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연합군의 융단폭격에 대한 미흡한 법적 판단은 오히려 전후 네오 나치들이 독일의 피해 정도를 과장하고 극우주의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쓰이고 있으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2차 대전 당시 연합군의 폭격 작전에 대한 전범 여부는 치밀하고 객관적으로 판단되어야 한다는 것이 책의 전반적인 주제다. 


* 책에서는 융단폭격의 정의, 역사, 피해 정도 및 실행 당사자의 의도를 살펴본 후, 이어서 여러 질문을 던진다. '민간인에 대한 (연합군의) 융단 폭격은 의도였는가, 실수였는가?' '빠른 전쟁 종결을 위해서 민간인에 대한 대량폭격이 꼭 필요했나?' (cf. 전쟁의 장기화와 그로 인한 장병의 희생을 막기 위해 전략폭격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특히 트루먼 대통령이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대한 원폭 투하를 정당화하면서 제기한 주장으로 유명하다) 이 선행 질문들에 대한 저자의 답은 모두 '아니오'다. 당시의 복잡하고 자세한 상황은 생략하더라도, 영국이나 미국 모두 전략폭격이 승리에 필수적인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적국(독일과 일본) 민간인에 대한 대량 폭격은 프로파간다 및 보복 차원의 심리가 더 컸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저자가 지적하는 전제는 폭격 당한 사람(독일인, 일본인)이 희대의 악인이라고 해서 그 악인에 대한 가혹행위가 정당화되지는 않는다는 윤리관이다. 중첩된 윤리적 문제는 개별적으로 판단되어야 하며, 나치의 홀로코스트 범죄 및 독일 국민 일반이 나치의 행위에 동참했는지 여부와는 별개로, 그들에게 가해진 민간인 대량 폭격은 별개로 판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군수시설이나 산업시설만을 폭격하는 일반 전략 폭격은 군사작전의 하나로 인정되지만, 민간인에 대한 폭격은 일반적으로 제노바 협정에 위반되는 것으로 간주된다) 


* 일제의 만행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피식민국 입장에서는 이성과 감성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부분이다. 강제 징용 및 징역, 위안부 착취, 인체실험, 극심한 수탈에 동참한 일본의 도시에 원자폭탄이 떨어진다고 해서 솔직히 큰 동정심이 일지는 못한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인간인 탓일까. 책에 언급된 민간폭격 피해자들의 경험담 및 폭격을 당한 도시의 참상에 관한 기록을 읽다보면 자연히 속이 불편해진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참혹한 현실 때문이다. 

특히 영국측에서 서술된 2차대전 기록만 읽다보면 놓치기 쉬운 RAF(영 공군)의 가혹하다싶을 정도로 무자비한 폭격 작전이 그렇다. 본격적인 민간폭격의 시작점이자 참혹했던 43년의 함부르크 폭격 묘사가 있어 옮겨본다. 


* 1943년 7월, '고모라 작전Operation Gomorrah' 이라 이름 붙은 첫 대규모 민간 폭격이 엘베 강변의 도시 함부르크에 대해 실시된다. 강을 끼고 있는 대도시 함부르크는 야간에 폭격기들이 위치를 찾기 쉽고, 선전용으로 사용하기에도 좋은 적당한 규모의 도시였다. 이후 이곳에 일주일 이상 떨어진 소이탄(incendiary)의 규모를 보면, 유황으로 불타는 도시 고모라를 작전명으로 택한 이유가 납득이 간다. 

소이탄은 낙하 당시에는 폭발하지 않는 대신, 지상에 떨어진 후 약간의 연소 자극에도 쉽게 불이 옮겨 붙어 대폭발을 일으키는 폭탄으로 진압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더욱 위험하다. 이 같은 소이탄을 일주일 내내 대량으로 퍼부어진 함부르크에서는 문자 그대로 불기둥이 일고 불폭풍이 이는 등 지옥 같은 광경으로 변모한다. (가장 잔인한 기록은 제외하고) 당시의 참상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함부르크 위로 폭탄을 투하하는 RAF의 폭격기 부대.

  


폭탄과 소이탄으로 파괴된 함부르크 시가지.


"여러 거리에서 치솟는 불길이 서로 합쳐져 거대한 불기둥을 만들었다. 불기둥은 점점 뜨거워지더니 마침내 7,000 피트 높이까지 치솟으며 근교와 백 마일 이상 떨어져 있는 거리의 모든 것을 한 시간 만에 빨아들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인공 불 폭풍은 거대한 파이프오르간처럼 진동했고 가는 곳마다 다시 불을 붙였다."

"트램의 유리창이 녹아내리고, 설탕 봉지가 끓고, 불타는 대피소에서 뛰쳐나온 사람들은 거리의 아스팔트가 녹고 있는 그로테스크한 광경을 보고 절망했다. (...) 폭격 대원들은 폭격 직후에 도망가는 와중에도 25,000 피트 상공까지 치솟는 불기둥의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 

많은 시신들이 불에 바싹 타서 어른의 시신도 어린아이만한 크기로 작게 졸아들었다." (pp.16~18.)




전투


"갑자기 하늘에서 불이 비처럼 쏟아졌다. (...) 대기가 불로 가득 차 있었다. (...) 곧 불폭풍이 시작되더니 거리를 휩쓸었다. 폭풍은 얼마 지나지 않아 불 소용돌이로 번졌다." (p.83)

"(...) 미쳐버린 함부르크 시민들은 죽은 친지나 가족의 시신을 트렁크에 넣고 피난길에 오르려 했다. 부인과 딸의 시신을 넣은 남자, 미라가 돼버린 아기를 넣은 부인 (...) 바바리아에서 기차를 타려던 한 여인의 트렁크가 굴러 떨어졌다. 뚜껑이 열린 트렁크에서 장난감, 매니큐어 함, 그을린 속옷, 그리고 미라처럼 줄어들고 바싹 탄 어린 아이의 시신이 굴러 나왔다." (p.84)


* 전투기 조종사들이 전투 당시에나 전후에나 영광스런 하늘의 용사들로 칭송된 것과 달리, 폭격기 부대의 현실은 이토록 암담했다. 최근 국내 서브컬쳐계에서 영국 공군(속칭 RAF)에 대한 과한 미화가 보이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민간인 대량 폭격이라는 직접적인 원죄를 짊어진 폭격기 부대 외에도 RAF를 포함한 연합군의 전투기 부대 또한 몰타, 북아프리카 전선 등지에서 현지인에 대한 가혹 행위를 자행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애당초 2차 대전의 기원이 영프독을 포함한 서구 열강의 식민지 경쟁에서 발원했다는 사실도. 기회가 된다면 최근 영국에서 발간된 2차대전 서적의 지나친 민족주의 성향 및 2차 대전의 제국주의 전쟁 성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 경향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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