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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거실의 사자 ~ 고양이는 어떻게 인간을 길들이고 세계를 정복했나

귀여움은 모든 것을 정복한다



최근 입소문을 타고 있는 책 "거실의 사자: 고양이는 어떻게 인간을 길들이고 세계를 정복했나"를 읽었다. '인간이 고양이를 길들인 것이 아니라 고양이가 인간을 길들인 것이며, 그 수단은 오직 귀여움이었다'는 급진적인 주장이 눈에 띄는 책이다. 존 브래들리의 <캣 센스>에 이어서 재미있는 고양이 교양서가 등장한 것 같다. 고양이 애호가인 기자가 썼지만 읽다 보면 고양이 기르기에 대한 환상이 흔들리는 책이기도 하다. 저자가 말하는 책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 "고양이 같은 동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의 놀잇감이 아닌 자신만의 전략과 사연을 지닌 강인한 생명체로 보아야 한다." 그래서 책을 읽다보면 고양이는 절대 기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떠오르기도 한다. 종 자체가 귀엽지만 교활한 민폐쟁이들로 보인다고 해야 할까. 그래도 개체 단위로 들어가면 또 이야기가 달라지겠지. 아마 고양이 앞에서 '귀여워'를 연발하고 있을 거다. 


1. 큰 고양이의 몰락

애완 고양이의 역사를 이야기하기 위해선 먼저 큰 고양이들(big cats)의 번성과 쇠락을 이야기해야 한다. 고양이의 승리는 그들이 몰락한 이후에 비로소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오래 전 인류의 조상이 나무에서 내려와 아프리카 사바나로 거주지를 옮겼을 때만 해도, 인간은 큰 고양이들의 좋은 영양 공급원이었다. 표범 둥지에서 단체로 발견된 유인원 두개골이 좋은 증거다. 어쩌면 탁 트인 풍경화를 좋아하는 인간의 습성도 포식자가 다가오는 걸 발견하기에 좋은 초원을 선호하던 습성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큰 고양이 맹수들이 먹다 남은 살점을 인간이 주워먹고, 거기에 맛을 들여 도구를 사용하게 되면서 둘의 관계는 역전된다. 고기를 향한 열망은 더 많은 도구 사용, 더 많은 지능을 야기했고, 결국 인간은 직접 가축을 길러 고기를 섭취하기에 이른다. 가축을 기를 목초지, 텃밭, 농지를 마련하기 위해 인간은 숲을 개간했고 그 과정에서 큰 고양이의 주 먹잇감이었던 소형 동물들이 사라졌다. 큰 고양이와 농경화한 인간의 정착지는 공생할 수 없는 운명이다. 인간의 정착지가 확대되면서 큰 고양이 맹수들은 점차 쇠토했다. 그러나 그들의 작은 후예들은 용감하게도 인간 사이로 들어와 "거실의 사자:가 되었다. 어떻게? 대담함과 귀여움을 무기로! 


2. 귀엽고 대담한 녀석들, 마을로 들어오다

큰 고양이가 사라지자 여우, 족제비, 고양이 같은 중간 포식자의 전성시대가 시작됐다. 큰 고양이가 사라진 자리를 중간 포식자들이 대신 차지했고, 이 작은 육식동물들은 다른 작은 초식동물을 사냥하거나 아니면 인간이 먹다 버린 살점을 주워먹으며 번창했다. 큰 고양이-인간의 기생관계가 인간-고양이 관계로 대체된 것이다. 물론 인간한테 잡아먹힐 위험도 있었지만, 조그마한 육식동물들에게 인간의 쓰레기통은 너무 유혹적인 보물창고였다. 

인간 마을로 들어와서 고기를 주워먹던 작은 동물들 중에는 대담한 녀석이 있었다. 펠리스 실베스트리스 리비카(일명 리비아 고양이)라는 이름의 이 작은 동물은 다른 야생동물들과 다르게 인간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배짱 있고 담력 있는 녀석들은 인간 사이에서도 불안해하지 않았고 스트레스로 죽지도 않았다. 인간 마을에서 짝짓기를 할 만큼 대범했던 이 고양이들의 천성은 인간들에게 '친화적인 성격'으로 받아들여졌고, 그렇게 리비아 고양이는 자발적으로 인간들 사이에 자리를 꾸려나갔다. 개의 경우처럼 인간이 야생동물을 길들인 것이 아니라, 스스로 동물이 인간 거주지를 집으로 선택한 것이다. 흔히들 인간과 섞여 살 수 있는 애완 고양이의 천성을 '온순하다'고 표현하지만, 사실 중간 포식자 중에서도 마을로 잠입해 들어올 만큼 배짱 쎈 동물들이 인간의 친구가 된 셈이다. 그러므로 "우리들 사이로 처음 들어온 고양잇과 동물은 나약하고 온순한 성격이 아니라, 사자의 심장을 가진 용감한 녀석들이었다." 그리고 이 한 종의 리비아 고양이로부터 오늘날 현존하는 모든 집고양이가 파생되었다. 


리비아 고양이

또한 고양이에게는 '귀여움'이라는 비장의 무기도 있었다. 어떤 인위적인 조작 없이, 오로지 우연의 일치에 의해 리비아 고양이는 인간의 아기와 유사한 외양을 띠고 있었다. 개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사족보행 포유류의 눈이 얼굴 양 옆에 달린 것과 달리, 고양이는 얼굴 정면에 눈이 달려서 익숙함을 느끼게 한다. 이목구비 뿐만 아니라 울음소리도 아기를 닮았다. 이런 외형적 특성이 얼마나 인간에게 매혹적으로 다가왔는지, 18세기 영국 선원들이 태평양의 외딴 섬에 정박했을 때 그곳 원주민들은 태어나서 처음 보는 고양이의 얼굴에 홀딱 반해버렸다. "그들은 우리의 고양이를 보고 특히 감탄했다. 고양이를 계속해서 쓰다듬었고 해변에 있는 친구들도 보고 감탄할 수 있도록 고양이를 높이 들어올렸다." "고양이에 열광했고 섬에 들르는 포경선으로부터 어떻게든 고양이를 얻으려고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 

결국 고양이는 타고난 대담성과 귀여움을 무기로 인간의 문간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다. 


3. 고양이는 왜 가축화가 늦었을까?

이렇게 유리한 조건을 두 개나 타고난 고양이들이 가축화가 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사실 지금 현재도 가축화가 진행중이다. 또 다른 반려동물인 개와 비교해보면 그 속도가 더욱 확연하게 드러난다. 외양만 봐도 알 수 있다. 인간의 교배 덕에 아종마다 털색과 골격이 현저히 달라진 개와 달리, 현대의 집고양이는 1만 년 전 리비아 야생 고양이었을 때와 비교해서 외양의 차이가 별로 없다. 일반적으로 야생 동물이 교배를 통해 가축화 되면 털색과 무늬가 변하는 법칙이 있는데, 고양이의 경우 이런 무늬의 다양화는 최근에 발생한 현상이다. 고대의 고양이는 전부 갈색 고등어 태비였다고 해도 무리가 아닌데, 가령 이집트 유물에 반영된 고양이 중에는 턱시도 고양이가 단 한 마리도 없다. 겨우 몇 천 년 전부터 털색의 다양화가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그나마도 지난 백 년 동안 이뤄진 변화가 대부분이다. 이에 더해, 동물이 가축화되면 지각과 공포를 관장하는 전뇌 부분이 작아지는 법칙이 있는데(인간한테 겁을 덜 먹고 무난하게 지낼 수 있는 종일수록 인간 사이에 섞여들기 쉽다는 점을 생각하면 당연한 프로세스다), 고양이의 경우 전뇌 축소도 비교적 최근에 일어나기 시작해서 현재 진행중인 현상이다. 말인즉 시간이 흘러 가축화 증후군이 좀 더 진행된다면 언젠가는 소처럼 꼬불꼬불한 꼬리를 가진 고양이, 귀가 처진 고양이, 털이 곱슬곱슬한 고양이들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 말린 꼬리, 처진 귀, 곱슬털은 대부분 가축화 증후군의 결과물이다!)

그렇다면 대체 이 귀엽고 대담한 동물은 왜 가축화가 늦었던 것일까? 지금까지 서술한 고양이의 강점에 따르자면 개보다도 가축화가 더 빨랐어야 할 텐데? 저자는 다소 충격적인 답변을 내놓는다. 고양이는 인간에게 별로 실용적인 쓸모가 없기 때문이란 것이다. 고양이는 인간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3장 제목: 고양이는 아무것도 안 함


4. 아무것도 하지 않는 고양이

정말로, 고양이는 인간을 위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저자는 지난 몇 세기 동안 고양이의 실용적 용도를 탐구한 사례들을 모아 "고양이의 용도"라는 파일을 만들려고 했지만, 결국에 실패로 돌아갔다고 말한다. (그중에서 16세기 독일 군인들이 고양이 등에 폭탄을 달아서 공성 병기로 사용하려고 했던 사례가 가장 신선하다. "Why do 16th-Century Manuscripts show Cats with Flaming Backpacks?", National Geographic, Mar. 11, 2014. 물론 절대로 인간이 시키는 대로 걷는 법이 없는 고양이가 적군 성에 무사히 폭탄을 배달할 리가 없으니, 계획은 시도도 해보지 못하고 수포로 돌아갔다고 한다.) 


심지어 고양이의 유일한 쓸모로 여겨지는 쥐 잡기조차 요근래 들어서는 사실 인간만의 착각일지 모른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뒷골목에서 설치류와 밀회를 벌이는 고양이가 속속들이 목격되고 있는 것이다. 한때는 저명한 인류학자가 고양이의 쥐 잡이를 다음과 같이 칭송하던 때도 있었다. "길들여진 고양이는 서구 사회의 방어 체계를 지키는 보루였다. 수천년 동안 헛간 고양이의 존재 여부에 따라 농가 사람들은 살기도 했고 굶어 죽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명언이 단지 우리 인간의 희망사항에 지나지 않는다는 증거가 연이어 드러나고 있다...... 도시의 음식물 쓰레기를 주된 먹이 공급원으로 삼는 길고양이와 쥐는 절대로 천적 관계가 아니다. 다만 "동일 자원을 공유하는" 이웃일 뿐이다. 고양이가 쥐를 잡아먹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전체 먹이의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그나마도 아직 보균 대상이 아닌 어린 새앙쥐 위주로 사냥하기 때문에 전염병의 확산을 막는 데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도시에 서식하는 쥐는 고양이가 처리하기에는 너무 수가 많으며, 무시무시한 속도로 번식한다. 요컨대 방제 수단으로서의 고양이는 쥐약보다도 별 효용이 없다는 거다. 

그렇다면 인간은 대체 왜 이토록 쓸모 없는 고양이를 기꺼이 문간에 받아들였단 말일까? 역시 답은 하나뿐이다. 고양이는 귀여우니까. 그리고 농담에 가까운 이야기를 하나 덧붙이자면, 인간의 뇌는 이미 고양이에게 중독된 걸지도 모른다. 고양이를 매개로 전염되는 톡소플라즈마 기생충은 숙주의 뇌와 호르몬을 조종하는 기생충이다. 이미 미국 인구의 1/3이 전염된 이 기생충들이 우리로 하여금 고양이에 열광하도록 호르몬을 분비하는 걸지도 모른다! (단, 한국은 톡소플라즈마 감염율 5%로 세계 최저를 기록하는 만큼 별 영향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5. 고양이는 어떻게 Meme의 승자가 되었나

마지막 장인 9장에서는 고양이가 인터넷 드립(Meme)계의 제왕이 된 과정과 이유를 추적하는데, 본문과는 별개로 내용이 재미있다. 

우선 서구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고양이 밈이 최초로 등장한 곳은 IT 업계 종사자들의 포럼인 포챈(4chan)이었다. 사이트 구성원들의 소속감과 배타성을 강화시키는 수단으로 작동한 고양이 밈(예를 들어 롤캣LolCat)은 일반 웹사이트로 퍼지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다. 포챈보다 온화한 사이트로 유행이 번지면서 집단 단결 도구로서의 기능은 잃었지만, 대신 밈의 역사에서 가장 지속적이고 성공적인 사례로 남게 되었다. 


이런 거


이런 거


이런 거


이런 거

그렇다면 하고 많은 밈 중에서 왜 고양이 밈이 유례없는 인기를 누리게 되었을까? 저자는 몇 가지 추측을 내놓는다.

 1) 고양이의 수적 우세: 도시에서 인간이 마주치기 가장 쉬운 동물인 만큼 행동을 사진으로 포착할 기회가 더 많이 때문에. 

2) 고양이를 실내에 가둬 기르는 최근 경향: 야생에 풀어놓고 기를 때는 포착하기 어려웠던 고양이의 순간 순간을 관찰하기가 쉬워져서.

3) 고양이는 사람 없이도 특징적인 동물: 개는 사람과의 상호작용에서 대부분의 특징적인 행동이 드러나기에 인간이 멀리서 관찰하기에는 별로 흥미로운 동물이 아니다. 반면, 고양이는 인간 없이도 여러 상황을 연출하기 때문에(즉, 독자성이 강하기 때문에) 멀리서 관찰하는 재미가 크다. 이 또한 가추고하가 덜 된 고양이의 특징. cf) 반대로 전통적인 이야기 형식에서는 인간과의 상호작용이 큰 개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잦은데, 대화의 주체로 연상하기에 쉽기 때문.

4) 고양이의 돌연성: 갑자기 뛰어오르거나 털을 부풀리는 고양이의 돌연적인 행동은 짧은 시간(6초 이내)에 유저의 주목을 끌어야 하는 SNS의 특성에 적합하다. 

5) 고양이의 백지 같은 얼굴: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다른 동물의 얼굴에서 마음대로 표정을 상상하기 좋아하는 습성이 있다. 무엇이든 의인화해서 이해하려는 본성 때문이다. 이때 기본 표정이 무표정에 가까운 고양이의 얼굴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적합하다. 이른바 "인터넷 고양이의 무표정한 얼굴은 고도의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뭔가를 써넣고 싶어하는 백지와 같다. 캡션을 붙여달라고 애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고양이는 온오프를 막론하고 세계를 정복하는 데 성공했다. 귀여움과 대담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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