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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어떻게 기억되는가?

루시 녹스, "21세기 초 영국의 제 2차 세계대전에 대한 문화적 기억: '평범한 영웅주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영국 본토항공전(1940) 추모 스테인드글라스.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영국 본토항공전(1940) 추모 스테인드글라스.



* 이 포스트는 <2차 세계대전과 집단 기억>에 수록된 루시 녹스의 논문 "21세기 초 영국의 제 2차 세계대전에 대한 문화적 기억: '평범한 영웅주의'"를 읽고 간단한 의견을 덧붙여 정리한 글입니다. 


현대 역사학에서 집단 기억을 연구 대상으로 삼기 시작한 것은 벌써 이삼십 여년이 지난 일이다. 일단의 프랑스 사학자들이 <기억의 장소> 연작을 통해 자국 내 민족적 장소와 대중의 역사의식을 분석하기 시작한 이래로, 독일과 미국은 물론 동아시아에서도 '기억의 場' 연구가 활발히 이어지고 있다. 즉, 단순한 역사적 사실(史實)뿐만 아니라 그 사실을 대중이 어떻게 기억하는지 또한 역사학에서의 중요한 탐구 영역으로 포섭된 것이다. 루시 녹스의 이 논문 역시 2차 대전에 대한 작금 영국 사회의 집단 기억을 분석한다. 

21세기 현재, 영국에서 2차 대전이 적석, 기념비, 미디어를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기념되고 있다는 점은 확실하다. 제이 윈터Jay Winter가 정의했듯이 21세기의 전쟁사에는 '추모 붐'이 일고 있다. 전쟁 생존자들과 PTSD 경험자들의 안타까운 사연이야말로 21세기의 우리가 20세기의 총력전을 기억하고 이해하는 주된 방식이자 매료 요소로 작용한다. (이 대목을 읽으며 어찌나 가슴이 따끔거리던지. 직접 전쟁을 경험해보지 않은 내가 그동안 머나먼 타국인의 전쟁의 상흔을 읽고 들으며 어떤 서사적 대리 만족을 느껴온 것은 아닌지?) 이 같은 '추모 붐'은 문화와 지역을 가로질러서 확인되는 현상이며, 이를 반증하기라도 하듯 2000년 이후에 영국 내에 건립된 2차 대전 관련 기념비만 십여 개에 달한다. 영국 본토 공중전 기념비(2005),  폭격 사령부 기념비(2012), 왕립기갑연대 기념비(2000), 2차 대전 공헌 여성 기념비(2000) 등. formal한 기념시설 외에 일상 속으로 침투한 슬로건까지 포함하면 그 범위는 더욱 넓어진다. Keep Calm and Carry on 슬로건, 셰퍼드 맥주 공장의 Spitfire Beer, The Bottle of Britain 등 2차 대전기의 기억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막론하고 영국인들의 집단 기억 속에서 여러 형태로 재현, 반복되고 있다. 


스핏파이어 맥주
스핏파이어 맥주


스핏파이어 두 잔 더 줘요
스핏파이어 두 잔 더 줘요


괴링. 괴링. 끝났음.
괴링. 괴링. 끝났음.



1939년 영국 재무성에 의해 처음 고안된 절약 권장 슬로건.
1939년 영국 재무성에 의해 처음 고안된 절약 권장 슬로건.


상술한 영국의 2차대전 기억에는 핵심적인 사건 세 가지가 있다. 이른바 '1940년의 신화'로서, 1) 던커크 철수(1940.06), 2) 영국 본토 항공전(1940.06~09), 3) 대공습 Blitz (1940.09~1941.05)들이 그 대상이다. 이들 세 가지 사건은 미국이 참전하기 이전 아직 영국이 연합군의 최전선에 위치해 있던 시기에 벌어졌으며, 결과적으로 성공한 작전들이었다는 점에서 1940년대 당시부터 일종의 호국 전설로 숭앙되었다. 스페인 무적함대 격파나 넬슨의 트라팔가 승전처럼, 던커크 철수 또한 영국인의 국민 의식을 공고히 하는 '던커크 정신Dunkirk Spirit'이 되어 확대 재생산 된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다수가 빚을 진 소수(the Few)"ㅡ즉 전투기 부대 조종사들은 '평범한 출신의 영웅'이 되어 국민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동시에 세계 2차 대전은 유럽에서 나치 독일의 위협에 '홀로 맞선' '영국의 황금기'로 묘사되기에 이른다. 시련의 시기가 영광의 시기로 장식된 것이다. 더불어 미국 참전 이전의 2차 대전은 '영국 국민의 전쟁'으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영국의 황금기로서의 2차 대전기'는 역사적 사실인가? 아니면 집단 기억의 영역일 뿐인가? 

이 미묘한 구별에 대해 저자는 후자의 손을 들어주고 있는 듯 하다. 우선, 녹스는 영국에서 기념되는 '국민의 전쟁 2차 대전' 속에는 독일 및 기타 추축국에 영국의 무차별 폭격, 이탈리아 침공, 몰타 섬에서의 거주민 학살 사건 등이 포함되어있지 않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영국군(RAF 포함)의 치부일 수 있는 사건들은 2차 대전의 기억 속에서 배제되어 있으며, 어느 것을 기억할지가 선택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1940년 신화의 주축을 이루는 RAF 조종사들은 교육받은 소수 엘리트로서, 과연 이들의 전투가 계급과 지위를 초월하여 '국민의 전투'로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 의문이 남는다. '영국 국민의 전쟁 2차 대전'이라는 표어 자체가 전쟁 당국이 탄생시킨 전시 프로파간다의 유산일 수 있다는 것이다. 

위의 두 가지 지적보다도 더 중요한 문제는, '파시즘에 홀로 맞서 자유의 최전선을 수호한 영국'이라는 관념이 자칫하면 2차 대전이 발발한 근본적인 원인을 흐릴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2차 대전에 대한 영국의 기억은 "전쟁 기간 유럽의 일반적인 정황을 대체로 무시하고" "그 대신 나치즘과 파시즘에 대항한 영국의 역할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소련군의 인적 지원, 미국의 재정적 지원이 과소평가되는 것이 단적인 예다. 

그런데 1939년 당시 영국이 독일과의 전쟁을 결심한 주된 동기는 진실로 파시즘 저지였는가? 홀로코스트라는 나치의 악업이 세계에 밝혀진 것은 종전을 전후로 한 죽음의 수용소 해방과 전범 재판 등을 통해서지, 39년 당시의 영국인 다수는 독일 내 반유대주의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거나, 혹은 알더라도 무관심했을 가능성이 더 크다. 이미 많은 학자들이 지적했듯이 2차 대전은 서구 열강 사이의 식민지 경쟁이 포화상태에 이른 결과 벌어진 전쟁이며, 영국의 최초 참전 의도 또한 독일의 위협에 맞서 대영제국의 영향력을 수호하고 유지하기 위해서였다는 해석이 더 설득력있다. 

요컨대, 오늘날 미디어를 통해 수없이 재생산되는 '자유 수호자로서 영국의 전쟁 참여'란 이미지가 과도해질수록 이 전쟁의 제국주의적 성격이 위장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문제점은 무엇보다 한 나라의 국가사가 대개 해당 국가의 역사가에 의해 서술되는 경향 때문에 더욱 가속화된다. 다른 모든 이웃들처럼 태어나고 자란 고국에 대한 소속감을 지닌 역사가 개인은 쉽게 자국 역사의 치부를 드러내기 어려워한다. (드러내는 데 심리적 거부감을 느낀다.) 저서 <2차 대전의 기원>을 통해서 영/프/독 삼국 간의 식민지 경쟁이 전쟁을 야기했다고 분명히 밝힌 리차드 오버리Richard Overy조차 <Battle of Britain>을 저술하는 과정에서는 그의 모국인 영국을 '파시즘 독일에 맞선 외로운 자유의 수호자'로 설정하는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 


이처럼 2차대전을 '영국의 황금기'로 기억하는 것이 21세기 영국 사회의 주된 흐름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면, 최근 영미 영화산업계의 관심이 2차 대전 초기로 회귀하고 있는 현상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전쟁 후반기의 대규모 전투(노르망디 상륙작전 등)는 미국의 문화산업이 선점했고, 홀로코스트는 개별 국가를 초월해서 유럽 공통의 기억이 돼버린 상황이다. 이 시점에서 영국의 미디어가 오롯이 '영국의 자랑스런 기억'으로 삼을 만한 시기는 실상 개전부터 미국 참전 직전까지의 18개월 정도로 좁혀진 것일지도 모른다. 영화 <덩케르크> 또한 이러한 트렌드를 담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감독 개인의 제작 의도는 다를 수 있을 테나, 결국 개인의 역사의식은 그가 속한 사회의 집단 기억에 의해 영향받는다. 제작 동기를 차치하더라도, 이 영화가 영국에서 크게 흥행했따는 사실은 과연 무엇을 시사하는가? 2차 대전으로부타 70여 년. 한 영화의 흥행을 통해서 영국인들이 그 전쟁을 기억하는 방식을 엿볼 수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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