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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어콜린스] 재회 3 (끝)

종전 AU 마지막. 약간의 베드씬 묘사가 있습니다.






서른 번째 거절이었다. 인력 사무소를 나서던 파리어는 앞으로 몇 번을 더 퇴짜를 맞아야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지 계산해보았다. 지금까지의 결과로 보건대 가능성은 0에 수렴했다. 알싸한 담배 연기만이 쓰린 속을 달랬다.

그의 아버지는 평범한 교사였고 어머니는 가정주부셨다. 노동계급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물려받을 사업이나 금융권에 연이 닿을 만한 인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애초에 직업군인의 길을 선택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맨손으로 도전해서 성공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길인데다가 전역한 후에도 다른 커리어를 쌓기에 유리하다고 판단했으니까. 분명 온전한 몸으로 만기 전역을 했다면 늦은 나이에 구직을 한다고 해도 그럭저럭 괜찮은 일자리를 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귀환병들로 포화상태가 된 본국에서 장애가 있는 몸으로 일을 구하기란 생각만큼 만만하지 않았다. 전역한 다른 이들보다 상황이 약간 더 나쁠 뿐이라고, 파리어는 애써 담담히 생각하려 했다.

양 손을 능숙하게 쓸 수 없다는 건 예상했던 것보다도 더 커다란 결점이었다. 우선 쌓아온 비행 경력은 물론이고 항공기를 정비하며 쌓은 경력까지 포기해야 했다. 부드럽게 굽혀지지 않는 손으로는 쉬운 펜치 하나 다루기에도 힘에 부쳤다. 사무직이 어렵다면 타자수라도 될 수 있다면 좋겠으나, 손이 이 모양이어서는 정비 일을 하지 못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평생을 런던 골목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자랐으니 시골로 내려가 밭뙈기를 부쳐 먹고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남은 선택지는 퇴직금 받은 것으로 가게를 하나 내어 물건을 떼다 파는 것일 텐데, 솔직히 말해서 지금의 파리어에게는 사람을 상대하며 가계를 꾸려갈 만한 기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활력은 꺼지고 사랑도 사그라지고, 매일 매일을 무딘 감각 속에서 기계적으로 살아간다. 넘어가지 않는 밥을 삼키고 도무지 일어나지지 않는 몸을 일으키고. 손과 달리 멀쩡해야 할 두 다리조차 때로는 낡아서 나사가 빠진 로봇 같았다. 독한 위스키와 진의 세계로 도피하지 않은 것은 몸뚱이가 망가졌는데 뇌까지 곤죽이 되도록 망가트릴 수는 없다는 마지막 남은 자제력 덕분이었다. 술을 마시면 콜린스가 생각난다. 매일 밤 내일 아침에는 꼭 시체로 발견되기를 빌면서 잠드는 삶 속에 그 아이의 모습은 환상이나마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 너는 내가 없는 곳에서 건강하게 살아가야 한다. 무기력과 불안과 냉소와는 관련 없는 삶다운 삶에서 살아가야 한다.

그런데 왜 나는 끊임없이 네 주위를 맴도는 것인지? 파리어는 다시 거리로 발을 내딛자마자 어느 새 콜린스가 머무는 숙소 근처로 향하는 자신을 바라보며 멍하니 생각했다. 철근처럼 무거운 다리는 동력이 다한 기계처럼 느리고 천천히 길 위를 걸어갔다. 아니, 질질 끌려갔다. 중력에 끌려가는 달처럼 앤드류가 있을 만한 곳을 찾아 유령처럼 방황했다. 죄책감과 수치심으로도 누르지 못한 절박함이 솟아서 이스트엔드의 허름한 여관으로 이끌려 간다.

근처 공터 벤치에 앉아 하릴없이 앉아 있었다. 습관적으로 끼니를 거르고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못해서 반응이 느려진 몸뚱이는 발 앞에 커다란 그림자가 드리울 때도 둔하게 앉아만 있었다. 눈 먼 꿈의 세계에서 파리어를 건져낸 것은 익숙한 방언 섞인 억양이었다.

“며칠이나 더 숨어서 지켜볼 생각이었어요?”

저녁 바람에 건조해진 목소리가 말했다. 공터에는 파리어와 콜린스, 두 사람뿐이었다. 교회에서 여섯 번의 종소리가 울렸고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들은 저마다 저녁을 들러 집으로 돌아갔다. 스산한 도시를 맴도는 외지인은 그들뿐이었다.

더러운 보도블럭을 쳐다보던 중인 파리어는 조금 고개를 들어 앞에 선 그림자를 보았다. 콜린스의 얼굴에는 무언가를 결심한 사람의 단단함이 어려 있었다.

아, 강인하고 상냥한 콜린스. 사람들은 무뚝뚝한 파리어와 쉽게 웃음 짓는 콜린스의 겉모습만 보고서 둘 중 더 단단한 쪽은 파리어일 거라고 쉽게 진작하고들 했다. 하지만 파리어는 예전부터 느끼고 있었다. 오래된 나무처럼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쓰러지지도 않는 쪽은 콜린스다. 그의 두 다리는 깊이 뻗은 뿌리처럼 단단히 대지를 지탱하고 서서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응시한다. 몇 번이나 파리어를 구원했던 단단함으로 콜린스가 명령했다.

“미련은 이제 그만 끝내요, 에드워드.”

그토록 아파보이는 눈으로 내리는 명령에 어떻게 저항할 수 있을까. 파리어는 차마 시선을 피하지 못한 채로 목울대를 움직였다. 화를 내려는 것일까? 욕하고 원망하려는 것일까? 그런 거라면 괜찮다. 미움을 사게 된다면 많이 쓰라리겠지만 홀로 그리움을 안고서 어떻게든 살아질 거다. 심장이 부서진다 해도 가루나마 그러안고 연명할 수는 있다. 그러나 두 번 다시 찾아오지 말라는 명령이라면, 기만적인 얼굴일랑 다시는 들이밀지 말라는 명령이라면 그때는 살아갈 수 없다. 끝끝내 미련을 버리지 못해서 몇 번이고 몰래 주위를 맴돈 자신이었으니까.

파리어는 두려운 심경으로 곧 내려올 축객령을 기다렸다. 그때 콜린스가 떨리는 손을 뻗어 파리어의 옷깃을 잡아끌었다. 파리어가 미처 뒤로 물러날 틈도 없이 그 흉한 손을 이끌어다가 품에 꼭 쥐었다. 그는 준비해둔 이야기를 꺼내려는 듯 짧게 숨을 멈췄다.

“맴돌기만 하는 건 이제 끝내요. 머물 곳이 필요하면 우리 집으로 가고, 일이 필요하다면 함께 찾아요. 과거를 곱씹으면서 아파할 거면 차라리 내 옆에서 아파하고요. 내가 볼 수 없는 곳에서 아파하는 건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는 사시나무 떨리듯 파리했으나, 비틀린 두 손을 붙잡은 손길만은 변함없이 따뜻했다. 눈에 물기가 차오르는 것을 막으려는 듯, 콜린스가 힘들여 눈을 꿈뻑거렸다. 비가 내린다. 그 참아내는 모습 앞에서 달리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차갑고 음울한 런던의 빗방울이 볼을 타고 흐르는 축축함을 가려주길 기도하며, 파리어는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이 손을 만지고도 그런 꿈을 꾸다니, 대책 없이 낙천적인 건 여전하구나.”

파리어는 젖 먹던 힘을 짜내어 냉소했다. 그러나 콜린스는 물러서지 않았다.

“손이 뭐요. 그게 무슨 상관인데요.”

훌쩍이는 목소리가 따져 묻는다. 파리어는 올라가지 않는 입가를 억지로 끌어올렸다.

“영원히 내 곁에 있어달라고, 오래전에 그런 부탁을 한 적 있었지? 그 부탁을 후회해. 봐, 이젠 비행은커녕 공구 하나 제대로 쥐지도 못해.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어진 통나무, 그게 현실이야. 떳떳하게 누구 옆에 설 처지가 못 된다, 난.”

‘그리고 더 이상 우는 네 눈물을 닦아줄 수도 없지.’

인정하는 순간 숨이 막혔다.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고요!”

변명을 들은 콜린스는 화를 내며 소리쳤다.

“손 좀 못 쓰게 됐다고, 얼굴이 뭉개졌다고, 그래서 뭐가 변하는데요? 더 이상 내가 당신한테 예쁘게 웃어주지 못하고 더 이상 당신이 날 쓰다듬어주지 못해도 살아가는 데 아무 지장 없어요. 근데 당신이 이대로 사라져버리면 그땐 난 살 수가 없어.”

눈물은 이제 굵은 빗줄기 사이로도 확인할 수 있을 만큼 넘쳐흘렀다. 더 이상 어리지 않은 청년은 다시 아이로 되돌아간 것처럼 흐느꼈다. 멈추지 않는 울음 속에서 떠듬떠듬 말을 잇는다.

“나 혼자서 어떻게 버텼는데……, 깜깜한 바다도,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밤들도 어떻게 견뎌냈는데…… 오 년! 오 년이었어요. 당신 없이 오 년을……”

그는 말을 끝맺지 못하고 밑동이 잘린 나무처럼 파리어의 품 안으로 쓰러졌다. 그의 옷깃이 마지막 동아줄이라도 되는 듯이 절박하게 붙잡고서 매달렸다. 금방이라도 밀쳐내질 것을 두려워하는 그 모습을 내려다보며, 파리어는 비로소 콜린스가 어떤 세월을 보내왔을지 깨달았다. 달빛조차 비치지 않는 어둔 밤을 혼자 항해하고, 시커먼 바다 속으로 동료를 몇이나 장사지내며, 홀로 육지에 남아 돌아오지 않는 이들을 기다렸구나. 그렇게 천 팔백의 밤을 혼자 지나왔구나. 모두 떠나가기만 하고 아무도 돌아오진 않는 고독한 밤의 항로를 그렇게—. 뒤늦게 인지한 아득한 시간 앞에서 파리어의 머리가 멍해졌다. 굽은 콜린스의 등을 밀어내지도, 그렇다고 자신 있게 감싸지도 못하고 있는 파리어를 향해 콜린스가 쐐기를 박았다. 둥글게 처진 파란 눈이 수정 같은 물기를 담고 요구한다.

“날 사랑한다고 말해요. 당신한테 내가 필요하다고 말해요.”

“콜린스, 난,”

“제발. 제발 단 한 번만이라도 진심을 말해봐요.”

‘그럼 다 용서해줄게.’ 구겨진 얼굴이 애원했다.

웃음인지 울음인지 알 수도 없다. 일그러진 살갗 위로 차가운 물줄기가 흘렀다. 그를 알고 지낸 세월 이후로 처음 콜린스의 우는 모습을 본 파리어는 결코 도망칠 수 없었다. 그 젖은 얼굴을, 서러움으로 점철된 얼굴을 보고서 도망칠 수 있을 리 없다. 혼자 울도록 내버려둘 수 있을 리 없다. 그는 달이 중력에 이끌리듯이, 품에 안긴 인영을 끌어안았다. 커다란 남자는 다시 고치 속으로 돌아가려는 나비처럼 파리어의 품으로 계속, 계속 안겨들었다. 자부심과 의연함만 가득해 보였던 등이 이젠 버틸 수 없다는 듯 둥글게 굽는다. 나날이 먼지가 되어 스러지는 세상 속에서 그는 너무 오래, 홀로 버텨왔다. 이제는 그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 끊어주고 싶었다.

누가 먼저 입맞춤을 시작했는지는 모른다. 차갑게 식은 입술 위에 키스의 비가 내리던 순간, 파리어는 그동안 자신을 옭아맸던 이름 모를 시선들에서 해방되는 것을 느꼈다. 주박처럼 조여오던 강박적인 자학은 흩어지고 남은 것은 애정과 안쓰러움뿐이었다. 그는 빗물과 눈물이 뒤섞여 얼룩진 콜린스의 이마와 볼과 입술 위에 길게 입 맞췄다.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콜린스―”

고장 난 오르골처럼 미안하다는 한 마디만이 반복된다. 널 외면했다. 바보 같은 아집 때문에 겁을 먹고서 널 두고 도망쳤다. 네 곁에 있어서 너의 집을 나누어야 했는데, 널 두고 떠났지. 너무 먼 곳으로 가버렸지. 파리어는 속죄할 수 없는 것을 속죄하려 하고 있었다. 뒤늦게 바로 잡고, 고치고 싶었다. 최초의 온전하던 생으로 돌아가지는 못하더라도 깨진 유리조각을 붙여 모아 다시 꾸려나가고 싶었다. 너와 함께.

“말해요, 파리어.”

그가 명령한다. 파리어는 자신의 떨리는 입술이 천천히 미소를 그리는 것을 느꼈다.

“네가 필요해, 콜린스.”

안개비 너머로 한 줄기 가느다란 빛이 보였다.




전등도 촛불도 켜지 않은 캄캄한 침실 안에서 두 사람은 몸을 겹치고 있었다. 밤의 어둠은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검고 부드러운 벨벳의 커튼 속으로 녹아들듯이 편안하고 안락하기만 했다. 노동의 고통스런 햇빛 아래서 빨갛게 벗겨진 피부도 서늘하고 은은한 달빛 아래서는 아프게 피를 흘리지 않았다. 남자는 열기에 그을려 찌그러지고 흉이 졌지만 여전히 새하얗게 빛나는 연인의 살갗을 조심스레 쓰다듬어보았다. 이곳에서 그와 콜린스는 모든 허례와 가식을 내려놓을 수 있다. 서로 맨살을 맞대고,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의 모습 그대로 껴안는 것이 허용된다. 비난도, 연민도, 동정도 존재하지 않는 밤의 장막 속에서는 다 괜찮다. 오 년 만에 처음으로 느껴보는 안도감 속에서 파리어는 마주보고 누운 콜린스의 하얀 몸을 꼭 끌어안았다. 두 번 다시 타인의 온기가 닿는 일은 없을 거라고 체념했던 피부 위로 다정한 손길이 스치는 것을 느끼고서, 콜린스가 모로 기대고 있던 고개를 살짝 들었다. 눈을 감은 그는 수 년 전과 같은 열기를 띄고서 윤곽을 어루만지는 파리어의 손길을 깊이 음미했다. 선선한 밤기운으로 예민해진 살갗 위를 긁듯이 간질이자, 곧 아름다운 눈꺼풀이 떠지며 물빛 홍채가 드러났다. 그는 나른한 눈빛으로 파리어에게 속삭였다.

“손 이리 줘 봐요.”

파리어의 뇌리를 스친 첫 번째 생각은 못생긴 손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화상을 입었어도 콜린스는 여전히 아름답다. 그에 반해 골격이 뒤틀린 자신의 손은 봐줄 만한 곳이라고는 한 군데도 없이 볼품없었다. 그렇지만 여기서 뒤로 물러서면 이젠 도망치지 않겠다는 약속이 무효가 될 거란 생각이 잇따랐다. 파리어는 용기를 내기로 했다. 그는 오랜 달램 끝에 경계를 풀고 인간에게 몸을 맡기는 사자처럼, 조심스레 손을 내밀었다.

콜린스는 절반 정도 밖에 펴지지 않는 다섯 손가락을 지긋이 응시했다. 어긋난 골격 하나, 주름진 관절 하나 하나를 모조리 삼키려는 사람처럼 관찰했다. 그러다 조심스레 파리어의 검지를 끌어다 자신의 입 속에 넣었다. 이내 붉고 말캉한 혀가 굽은 손가락들을 한 마디 한 마디 정성스레 애무하기 시작했다. 흠칫한 파리어가 뒤로 손을 물리려고 했으나, 콜린스는 두 입술을 꼭 다무는 것으로 의사를 표현했다. 부드러운 혀가 뻣뻣해진 살결을 부드럽게 녹이듯, 짐승이 서로 털을 골라주듯 세심하게 손끝을 핥아 내린다.

따뜻한 온기를 띠고서 파리어의 굳은 손가락을 빨고 있는 그곳은 사고를 당한 콜린스의 신체 부위 중에서 유일하게 불길을 피한 온전한 곳이었다. 그 소중하고 아름다운 곳이 자신의 가장 추한 치부를 머금고 있다. 파리어는 수치스러워 할 새도 없이 콜린스의 붉고 말캉한 혀가 자신의 감각 없는 손가락을 정성들여 애무하는 광경을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 직접 몸 안에 들어가지 않았지만, 손가락을 콜린스의 입 안에 물린 것만으로도 섬뜩한 흥분이 몰아쳤다. 어린 연인은 발기한 파리어의 아래를 눈치 챘는지, 더더욱 뾰족하게 혀를 세워 끝부분으로 물고 빨기를 계속했다. 손등과 맞닿는 곳까지 깊숙이 머금었다가, 빼냈다가, 입 전체를 조여 빨아들이기를 반복한다. 살과 점막이 맞닿아 축축하게 젖은 소리를 내고, 파리어는 콜린스의 매끄러운 입술 사이로 들어갔다 빠져나오는 굽은 손이 마치 성기인 것만 같은 환상을 느꼈다.

뜨겁고 젖은 입 안의 감촉, 그리고 눈을 감고 한껏 음미하는 듯한 콜린스의 표정이 도화선이었다. 파리어는 몽정하는 사춘기 소년처럼 불현 듯 사정했다. 하얀 체액을 흩뿌려댄 물건은 콜린스가 다시 깨끗하게 핥아주었다. 그가 기다란 몸을 숙여 늘어진 성기를 물고 깨끗이 청소해주는 동안 파리어는 무아지경 속에서 콜린스의 노란 뒤통수를 어루만졌다. 가을 밀밭 같은 금발은 여전히 강아지처럼 부드럽고 매끄러웠다.

천천히 사정의 여운이 가라앉고 마침내 파리어가 몽롱한 열락의 세계에서 내려왔을 때, 콜린스가 싱긋 웃으며 몸을 기댔다. 커다란 몸을 둥글게 말아 품으로 파고드는 모습에서는 방금 전까지 그를 지배했던 께느른한 유혹은 한 점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는 사랑받는 강아지처럼 파리어의 뺨에 볼을 비비며 속삭였다.

“예전에 내가 했던 말 기억해요?”

“무슨 말?”

“내 심장에 당신이 들어앉은 자리는 이제 빼낼 수도 없다고 했던 말이요.”

조바심에 들떠 몰래 콜린스의 창가 아래로 찾아갔던 밤, 그 푸른 밤이 떠올랐다. 파리어의 이마가 기억을 더듬느라 살짝 찌푸려졌다. 콜린스가 그 이마를 잡아 입 맞추며 당부했다.

“할아버지가 되고 머리가 하얗게 샐 때까지, 난 당신이랑 함께할 거야.”

창밖에 비가 내린다. 불타고 휜 나무 둘이서 빗속을 걸어간다. 서로 몸을 기대고 상처를 핥으며 걸어간다. 휘청거리는 나무여도, 우리는 어떻게든 살아갈 것이다.

파리어는 만족스레 눈을 감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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