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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의 맛: 취향의 탄생과 혀 끝의 인문학

시간의 앞뒤를 종횡무진, 경계를 넘는 음식 이야기



*이 포스트는 『18세기의 맛』(한국 18세기 학회, 문학동네, 2014)를 읽고 개인적으로 정리한 글입니다. 등장하는 요리와 국가의 순서는 일괄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1. 음식 묘사는 즐거워: 청 건륭제의 강남 미식 순행

읽는 내내 입맛이 당기는 책이다. 오죽하면 '읽는 내내'를 '먹는 내내'로 쓸 뻔 했을까. 특히 옛 문헌에서 뽑아낸 요리 묘사들이 일품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생생했던 묘사를 꼽자면 역시 청나라 건륭제의 강남 미식순행기에 나오는 만주족 요리 에 관한 묘사이다. 이른바 청대 삼황(淸代 三皇)의 마지막 왕인 건륭제는 '문화적 만한일체' (만주족과 한족이 한 몸과 같음)를 전파하기 위해서 재위 기간 동안 총 열 번 이상의 강남 순행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수차례의 남순 동안 황제를 따라서 궁중요리실인 어차선방이 함께 여행길에 올랐고, 이들 요리사들은 미식가였던 황제의 주방장답게 삼시 세끼 절묘하고 이색적인 요리를 제조하고 기록했다. 특히 남순 기간 동안 황제의 식탁에 오른 메뉴는 화북 만주족의 전통요리와 강남 한족의 요리가 함께 섞여있다는 점에서 식문화에 반영된 만한일체를 은유한다. 보통 중국 최고의 요리로 일컫는 만한전석(뜻을 해석하자면 '만주요리와 한족요리를 한 상에 놓다')의 시초인 셈이다. 

여기 건륭제의 남순을 기록한 <남순성전> 중 황제의 식사 메뉴를 일부 발췌한다. 소리내어 읽기만 해도 절로 식욕이 돋는 이름들이다. 

'뜨거운 솥에 담아낸, 볶은 닭고기가 들어간 가정식 모듬 숙회'
'실처럼 가늘게 찢은 오리고기가 어우러진 제비집'
'양고기 편육'
'찹쌀을 넣은 오리'
'봄 죽순과 술지게미에 절인 닭고기'
'훈제오리로 만든 소를 넣어 지진 완자'
'실처럼 가늘게 찢은 닭고기를 넣은 시금치 두부 탕'
'술지게미에 절인 오리알'
'뜨거운 솥에 담아낸, 계란 떡과 술로 훈제한 오리'


2. 유럽 요리의 변화: 후추의 매운 맛에서 느끼한 버터맛으로 


버터의 역사 등 유럽 식문화에 관한 장으로 시작한 책이 건륭제의 식단까지 흘러가리라고 어떻게 짐작이나 했을까. 뒤늦게 머리말을 다시 읽어보니 이 책은 '한국 18세기 학회'에서 음식을 주제로 동서양의 인문학술을 탐구한 저술이었다. 일반적으로 문사철 관련 학회는 지역적으로 세분화 되어있기 마련인데, 시간축을 18세기로 고정하되 공간의 폭은 확대하여 그동안 개별적으로 연구되던 동서양 문화사를 하나의 학술회에서 발표, 토론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물론 18세기의 맛이라고 해서 그 이전이나 이후 세기를 다루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각 지역 요리의 변천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라도 때로는 18세기 이전을 들여다봐야 한다. 예를 들어 유럽에서의 버터의 승리를 설명한 1장 <버터, 섬세한 맛의 승리> 편이 그렇다. 

오늘날 서양요리(유럽요리)는 버터로 대변되는 '섬세한 맛'(소위 부드럽고 느끼한 맛)이 주류를 이루지만, 이는 버터가 대중화된 17~18세기 이후의 일이며, 중세와 르네상스기 까지는 신맛과 매운맛이 유럽 미각의 주류를 이뤘다. 중세 요리책에 수록된 레시피들을 보면 대부분이 포도주, 식초, 포도즙, 향초를 베이스로 해서 신맛이 강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게다가 후추, 육두구 등 향신료를 가득 치는 것이 곧 부의 상징이었기 때문에 중세의 이상적인(그리고 보편적인) 맛은 인도요리에 비견될 정도의 매운 맛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흔히 양식을 먹을 때 떠올리는 기름지고 느끼한 맛과는 정반대에 위치해 있지 않은가? 뜻밖의 발견이다. 


영국 튜더 시대 요리의 재현.
영국 튜더 시대 요리의 재현.


2-2. 중세 요리에 관한 이모저모 

해당 챕터를 읽은 후에 호기심이 생겨서 중세 유럽의 요리에 관한 사항을 조금 더 찾아보았다. 이럴 때 가장 빠르고 쉽게 기본적인 배경지식을 얻을 수 있는 통로는 역시 영문 위키백과다. 다음은 위키 백과의 Medieval Cuisine 항목에서 흥미롭게 읽은 부분을 일부 발췌하여 정리한 것이다. 

a. 상술했듯이 중세 유럽의 요리는 신맛과 매운맛이 주류를 이루었다. 중동, 아시아에서 수입한 이국적인 향신료가 부의 상징이었던 만큼 한 종류의 요리를 만드는 데 여러 종류의 향신료를 섞어서 사용했다. 파슬리, 생강, 후추, 정향(마늘과 유사한 맛)을 한 데 들이붓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상류층이 애용한 대표적인 향신료로는 후추, 사프롱, 생강, 과일 식초, 신포도 과즙 등이 있다) 게다가 서민들의 경우 이국에서 수입한 비싼 향신료 대신 유럽 전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각종 과일을 발효한 소스를 대신 사용했는데, 서양 식초, 덜 익은 포도즙(verjuice), 와인 등이 대표적인 재료였다. 중세 유럽의 요리책에 "신맛, 톡 쏘는 맛(purgent)"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신 과즙(verjuice)을 만들기 위해 덜 익은 포도를 따는 모습. 1474.
신 과즙(verjuice)을 만들기 위해 덜 익은 포도를 따는 모습. 1474.

b. 중세는 철저한 위계사회로서, 평민의 소화기관과 귀족의 소화기관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여겨졌다. 보다 섬세한 소화 기관을 지닌 귀족은 좀 더 섬세하게 정제되고 요리된 고급 요리를 섭취할 필요가 있었다. 반대로 노동 계층은 호밀, 덜 정제된 곡식, 덜 저민 고기 등 조금 더 "거친" 요리를 섭취해도 소화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는 일이 흔했다. 

소화기관에 대한 중세 유럽의 또 다른 재미있는 특징은, 소화 과정(digestive process)을 위에서 일어나는 또 하나의 요리 과정(cooking process)로 치환해서 파악했다는 점이다. 영양가 높고 건강한 요리를 만들기 위해서 세심한 순서와 절차가 필요하듯, 위장에서 음식이 제대로 소화되기 위해서는 적절한 순서에 따라 요리를 섭취해야 했다. 음식을 먹을 때는 첫번째 순서로 아페리티프(라틴어 aperire에서 유래한 단어로 '열다'는 뜻)를 먹음으로써 위장을 "열어준다." 생강, 꿀, 설탕 등으로 절인 단맛의 간식이 여기에 해당한다. 둘째로 사과처럼 소화하기 쉬운 과일을 섭취하고, 세 번째로는 양배추, 상추, 허브처럼 수분이 많은 과일 및 "가벼운" 고기(닭고기)를 섭취한다. 마지막 순서에는 "무거운" 육류로 분류되는 돼지고기 또는 소고기로 마무리한다. 마치 유럽 코스 요리의 초기 형태를 보는 것 같지 않은가? 이 같은 음식 섭취 순서는 중세의 의학 전문가들에 의해 중요한 식이요법으로 널리 받아들여졌다. 


c. 중세의 부엌에는 오늘날과 비슷한 모습도 있고, 다른 모습도 있었다. 다른 점으로는 부엌에 따로 스토브가 설치돼지 않았다는 점이다 (부엌 스토브는 18세기에 이르러서 최초로 등장한다). 오븐이 존재하기는 했으나 설치 비용이 비싸고 설계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개인 가정에는 오븐을 들이지 못했고, 대신 빵집 등에서 마을 구성원이 공용으로 사용했다. 스토브도 없고 오븐의 사용도 제한돼 있으니 일반 가정에서 요리를 하기 위해서는 불 위에 직접 솥을 올리고 음식을 조리하는 기술을 익혀야 했다. 솥을 쓴 이유는 불 위에 직접 올려놓고 조리하기에 가장 편리한 도구인 데다가, 재료의 각종 부속을 모두 담을 수 있고 육즙을 버릴 염려 없이 모두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비슷한 점은 무엇일까? 중세의 부엌에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것과 같은 조리 도구들이 기본적인 형태로 존재했다. 프라이팬, 주전자, 냄비는 물론이고 심지어 와플 굽는 틀까지 갖추고 있었다! 


국자를 사용하는 조리사의 모습. 1485, 독일 지역.
국자를 사용하는 조리사의 모습. 1485, 독일 지역.


투스카니 성에 복원한 중세 부엌.
투스카니 성에 복원한 중세 부엌.


오븐에서 빵을 굽는 사람.
오븐에서 빵을 굽는 사람.


빵과 음료를 나눠 먹는 농민들. 14세기 프랑스. 예나 지금이나 식사는 단순한 섭취 행위를 넘어선 사교 행위로 기능한다.
빵과 음료를 나눠 먹는 농민들. 14세기 프랑스. 예나 지금이나 식사는 단순한 섭취 행위를 넘어선 사교 행위로 기능한다.


* 중세 유럽의 음식문화와 관련된 볼만한 자료

- 위키백과 Medieval Cuisine 

- 유럽의 음식문화 (맛시모 몬타나리, 새물결, 2001)

- The Art of Cookery in the Middle Ages (Terence Scully, 1995) 

- Food in the Middle Ages: A Book of Essays (Adamson, Melitta Weiss (editor), 1995)

- Food and Eating in Medieval Europe (Carlin, Martha & Rosenthal, Joel T. (editors), 1998) 


3. 18세기여야 하는 이유: 서유럽의 커피하우스와 조선 선비의 사랑방

잠시 중세의 부엌으로 우회했다. 다시 책의 핵심시대로 돌아가보자. 왜 18세기인가? 근대를 기준으로 잡고자 하면 17세기를 시작점으로 잡을 수도 있었다. 왜 18세기여야만 하는가? 머리말 부분에 그 대답이 나와 있다. 18세기는 동서양을 아울러서 1) 교역이 폭발적으로 확대됨에 따라 이색적인 재료들이 대거 유통되던 시기이며, 2) 동시에 고급 음식이 대중화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은 중남미의 사탕수수 생산과 노예 삼각무역의 등장을 동시기 조선 사회에 일어난 단맛의 변화와 함께 아울러 서술할 수 있으며, 서유럽의 '공공의 장으로서의 커피숍/카페' 형성과 동시기 조선 선비들의 다기를 갖춘 사랑방 풍경을 자연스럽게 넘나들 수 있다.  

17세기부터 영국 프랑스 등 서유럽에서 유통되기 시작한 커피는 18세기에 커피 하우스 문화의 인기에 힘입어 근대 계몽사상 담론을 탄생시키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신분이나 지위에 구애받지 않고 시민들이(단, 남자시민이라는 한계를 지닌다) 커피하우스에 모여서 세상 돌아가는 일, 문예, 과학, 철학, 변혁을 이야기하던 풍경이 18세기 조선 선비들의 사랑방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약간의 과장이 섞여있긴 하지만, 18세기 조선의 선비들은 청나라 연행길에 들여온 중국산 다기, 그리고 1760년 남해안에 표류한 중국 상선에서 유통된 찻잎을 사랑방에 구비해놓고서 사상을 교류했다. 양란 이후 연행사와 통신사를 보내 청나라와 일본을 방문했음에도 여전히 차 문화를 기이하게 여겼던 조선 사회에서, 비록 10년 뿐이긴 하나 최초로 차와 살롱 문화(!)가 등장한 것이다. 차의 각성 효과와 지식인 계층의 정신 능률 향상에 관한 언급이 늘어난 것도 마치 서유럽에서 커피가 부르주아 계급에 선사한 '능률과 효율' 담론을 연상시킨다. 

"차는 능히 잠을 적게 하며, 혹 밤새도록 눈을 붙이지 못하게 한다. 새벽부터 밤까지 공무에 있거나 (...) 닭이 울자마자 물레에 앉는 여자나, 한묵의 장막 아래서 학업에 힘 쏟는 선비도 모두 이것이 적어서는 안 된다. 만약 열심히 돌아보지 않고 쉬지 않으며 밤을 새우는 군자라면 즉시 받들어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 이덕리, <동다기> 중." (p.166) 

능률 향상을 위해 하루에 12잔씩 커피르 마셨다던 볼테르, 근면과 노동성 향상이라는 기치 아래 노동자들의 공장에까지 티타임을 보급했던 영국의 일화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4. 술: 능률과 결속의 프로파간다 

서유럽 역사에서 커피만이 근대 공공의 장 및 노동 능률의 상징이었던 것은 아니다. 술 또한 그보다 좀 더 앞선 시기부터 공론장 및 시민들의 활력을 향상시켜주는 마법의 음료로 칭송받았다. 프랑스에서는 와인이 사상가들의 살롱 모임에 절대 빠지지 않았고, 영국의 에일하우스 (펍)에서 사람들은 공유된 소비 경험을 통해 공동의 정체성을 형성, 결속하는 한편 성장하는 모국의 번영과 활기를 자랑했다. 이곳 에일하우스와 펍에서 산업혁명기 주요 산업가들의 거래가 이뤄졌다는 점은 맥주의 공론장 기능을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18세기 영국에서 맥주는 동시대의 또 달느 인기 주류였던 진과는 매우 대조적인 평가를 받았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증류주를 물에 희석하고 설탕과 과일즙을 첨가한 진은 싼 값에 빨리 취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서민과 빈민층에서 빠르게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영양 상태가 나쁘고 강한 알콜에 익숙하지 않았던 영국의 빈민들은 빠른 속도로 진에 중독되어갔고, 사회 지배층은 서민층에 만연한 알콜 중독이 국가의 생산성을 떨어트릴 것을 경계했다. 더불어, 세금을 내지 않고 음지에서 유통된다는 진의 특징(진은 주로 가정집의 주부들이 개별적으로 만들어 팔았다)까지 더해지면서 18세기 영국 사회에서 마치 오늘날 마약이 받는 취급과 비슷한 비난을 받게 되었다. 


윌리엄 호가스, 진의 거리(Gin Lane). 1751. 알콜에 중독된 빈민들.
윌리엄 호가스, 진의 거리(Gin Lane). 1751. 알콜에 중독된 빈민들.


이처럼 '빈민의 술'이자 '악덕의 술'로 여겨진 진과 대립항에 놓인 것이 바로 영국의 전통적 산업기반인 맥주(에일)였다. 원료인 밀과 제조공장이 모두 국내에 있다는 점 때문에 산업혁명 이전부터 맥주는 영국의 기간 산업이자 부의 창출원이었다. 게다가 진과는 달리, 합법적으로 세금을 납부하는데다 오래 전부터 계층에 상관없이 식수 대신으로 마셔온 술이기도 했다. 맥주가 단지 기력을 북돋아주는 능률 향상의 음료일 뿐만 아니라, 국가적 자존심이자 민족정체성 결속의 상징으로 격상된 것은 필연적인 수순이었다. 

윌리엄 호가스의 판화 <진의 거리> 및 <맥주의 거리> 연작은 이 같은 진과 맥주의 위상 차이를 명백하게 보여준다. <진의 거리>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만취한 창녀, 주정뱅이, 노숙자로 그려지는 반면, <맥주의 거리>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각자 시원한 맥주를 한 잔씩 걸치면서도 자기 직분에 충실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병색이 깊은 진 음주자들과 달리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혈색이 좋고 통통하며, 와인으로 은유되는 프랑스인을 번쩍 들어 내쫓기도 한다. 18세기 영국 사회에서 맥주는 로스트 비프(소고기)와 함께 성공, 번영, 국가의 부, 활력을 상징할 뿐 아니라 민족 정체성을 강화하는 도구로 사용된 것이다. 

맥주! 우리 섬의 축복받은 특산물 
늠름한 힘을 줄 수도 있고
또 노고에 지쳤을 때
사나이 마음을 북돋아 줄 수도 있네
노동과 예술은 당신 덕에
성공적으로 발전하고

우리는 당신의 감미로운 즙을 기쁘게 들이키고
맹탕은 프랑스로 떠나네. (p.111) 

맥주의 거리. 다들 혈색이 좋다.
맥주의 거리. 다들 혈색이 좋다.


5. 만들어진 전통요리: 로스트 비프, 잉글리쉬 브랙퍼스트, 자우어크라우트

오늘날 영국의 얼마 없는 전통요리 중 하나로 여겨지는 선데이 로스트 비프는 사실 19세기에 처음 등장했다. (영국식 아침식사English Breakfast가 확립된 것도 이와 비슷한 시기다) 프랑스와의 식민지 경쟁이 심화되면서 요리에서도 민족 감정을 추구하는 경향이 등장했고, 영국에서는 기존의 프랑스식 고기 요리(스튜, 찜) 대신 통째로 구운 '영국식' 고기요리를 선호하기 시작했따. 

1760년 무렵이 되면 드디어 영국의 중산계급 사이에서 가정에서 만든 요리보다 tavern이나 펍으로 외식을 나가서 "실컷 비프 스테이크를 먹거나 영국식 아침식사를 먹었다"는 기록이 빈번히 등장하기 시작한다. 고기에 집중한 나머지 채소를 소홀히한다는 국민성이 등장할 정도로 육식 위주의 식생활이 보편화되었다. 

로스트비프로 대표되는 18세기 영국인들의 고기 사랑은 대륙 유럽에서는 야만적이라고 폄하된 한편, 영국인들 자신 사이에서는 에일과 마찬가지로 사나이다운 번영과 활력의 상징으로 칭송, 자부심의 대상이 되었다. 대륙인들은 "한 번에 아홉 접시씩 내온 걸 마음대로 가져가서 먹기를 세 번 반복하는" 영국식 식사 예절을 폄하하는 기록을 남기곤 했다. 대화도 없이 묵묵히 먹기만 하는 영국인들을 "예절도 화술도 모르는 육식 인종"으로 비꼰 것이다(p.284). 18세기에 처음 등장한 로스트비프, 푸딩, 타르트, 파이, 영국식 아침식사는 이 같은 타자화 과정을 거쳐서 '자랑스러운 전통요리'가 되었다. 홉스봄의 말대로, 역시 전통은 만들어진다.


선데이 로스트의 정석: 완두콩, 감자, 소고기, 차, 푸딩(빵).
선데이 로스트의 정석: 완두콩, 감자, 소고기, 차, 푸딩(빵).


만들어진 전통요리가 발견되는 것은 영국만이 아니다. 독일의 자우어크라우트 또한 그 예다. 양배추를 식초에 절여서 만들며, 감자, 밀 등의 탄수화물 및 고기, 소세지, 햄, 베이컨 등의 기름진 육류와 최고의 궁합을 보이는 이 채소요리는 본래 동아시아의 절인 배추(쏸차이)에서 유래한 요리로 추정된다. 아직까지도 독일인 태반이 굳건히 믿고 있는 독일 전통 유래설과 달리, 게르만이 아닌 몽골 침입기에 중국으로부터 유래된 것이 직접적 기원인 것이다. 17세기에 30년 전쟁을 치르느라 독일 전역이 황폐해지면서 비교적 값이 싼 양배추로 자우어크라우트를 만들기 시작했고, 이것이 18세기~19세기의 대중화를 거치면서 게르만 민족의 소울푸드로 자리를 굳힌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대중화된 자우어크라우트는 20세기 한국의 김치 민족주의처럼 독일 애국주의의 대표적인 요리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우리의 고귀한 사워크라우트를 /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되리.
독일인이 이것을 최초로 만들었으니 / 이것은 분명 독일의 음식.
사워크라우트 속에 들어있는 희고 연한 고기 한 점
그야말로 그림이구나 / 장미 속에 들어있는 비너스처럼. (울란트)

식탁이 차려졌다. 이 식탁에서 나는
온전한 옛 게르만식 음식을 본다.
내 인사를 받으시라, 나의 사워크라우트여. (하이네)


역시 전통은 만들어지며 음식은 그 기수다. 인간 삶의 가장 근본적이고 기본적인 요소, 즉 음식을 통해서 대륙을 넘나들고 학제를 넘나들어 사람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책. "시간의 앞뒤로 종횡무진하고 경계란 경계들은 죄다 넘어버리는" 음식은 역시 한 시대의 문화현상을 가장 친근하고 맛있게 보여준다. 



동아시아 쏸차이에서 유래한 자우어크라우트. 그리고 부어스트.
동아시아 쏸차이에서 유래한 자우어크라우트. 그리고 부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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