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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어콜린스] 콩깍지와 편견 B

더 이상 국민성 개그가 아닌 무언가



* 쓰기 전엔 재밌을 줄 알았다




3. 솔직하게 말해요

 

사귄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파리어 대위의 못된 버릇이 드러났다. 연인과 사이가 몹시 좋으면 친구처럼 느껴진다고 했던가. 딱딱한 천도복숭아인줄로만 알았던 소위가 둘만 있을 때는 은근히 자기를 봐준다는 것을 눈치채자마자, 그동안 숨겨오던 잉글랜드 남자의 몹쓸 습관이 고개를 치켜들기 시작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것을 보면 솔직하게 좋다 말하지 못하고 괜히 짓궂게 괴롭히는 습관이. 그리고 장난의 빈도는 호감과 비례해서 올라간다.

마침 구보를 마친 소위가 수돗가에서 목을 적시고 있었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노릇노릇 구워지는 건 피차 같은 처지인데, 어쩜 혼자서만 뽀송뽀송 빛나는지. 솜털이 보송보송 난 복숭아처럼 뽀얀 뺨을 보며 대위는 감탄을 삼켰다. 똑같이 연병장을 구른 다른 놈들은 몸 여기저기 얼룩덜룩 지저분하게 타던데, 우리 소위는 올리브 열매처럼 곱게 익기도 하지. 영글은 열매처럼 예쁘게 선탠이 된 소위의 피부를 바라보고 있으려니 한 입 깨물어 먹고 싶은 욕망이 절로 솟구쳤다. 크게 한 입 베어물면 입 안 가득 달콤한 과즙이 차오를 텐데. 그러나 정말로 실행에 옮겼다간 돌주먹으로 명치를 맞을 게 분명하기에 파리어는 대신 손가락을 들었다.

“콜린스.”

“예?”

‘뾱’

볼록 들어간 보조개 속으로 두툼한 손가락이 콕 들어간다. 가만히 있어도 그늘이 지는 예쁜 보조개를 쿡쿡 찌르자 아기처럼 예쁜 미소가 만들어졌다. 물론 소위의 파란 두 눈은 절대로 예쁘지 않았지만. 부드러운 뺨의 감촉에 홀딱 넘어간 대위는 부끄러운 줄 모르고 손가락을 ‘뾱뾱뾱’ 찔러댔다. 야차처럼 험상궂게 변하는 콜린스의 표정도 그를 막진 못했다.

“멉니까, 이기.”

“뭐가? (뾱뾱뾱)”

“그만 좀 하심더. 아도 아니고.”

심기불편해진 콜린스가 팩 쏘아붙였다. 그러나 이미 콜린스를 놀리는 것에 맛이 들린 대위는 멈출 줄을 몰랐다. 이번엔 두 개의 손가락이 오른뺨 왼뺨 양쪽을 꾹 눌러 더 깊은 보조개를 만들었다. 앞니가 뽀짝 튀어나오며 천사 같던 얼굴이 성난 토끼로 변했다.

“장난이야, 장난. 뭐 이런 걸 갖고 승질을 내나?”

군인답지 못하게. 상관이 자그맣게 덧붙인 말 때문에 이제 소위는 내빼기도 뭐한 처지가 됐다. 장난은 무시하는 게 상책이다. 상관을 때리면 영창이다. 아무리 애인이어도 덮어줄 수 없는 선이라는 게 있는 법이다. 소위는 참을 인을 새기며 금방이라도 튀어나가기 직전인 주먹을 참았다.

일단 콜린스가 커리어와 일신의 안위를 생각해서 모른 척 참아주자, 대위의 손길은 점점 거침이 없어졌다. 군 생활 n년 만에 비로소 권력의 즐거움을 맛보는 순간이었다. 그는 집게손가락을 만들어서 말랑말랑한 올리브빛깔의 뺨을 쭈욱 늘였다 당겼다, 지점토 놀이하듯 주물럭거렸다. 찰지고 고운 콜린스의 뺨은 만지면 만지는 대로 망개떡처럼 몰캉몰캉 늘어났다.

“이익”

찌부러진 복숭아가 심통을 터뜨린다. 항상 아래로 처지던 눈매가 매섭게 치켜 올라간다. 점토 놀이에 홀딱 빠진 파리어의 눈에는 그것조차 망개떡이 화를 내는 것 같아서 너무너무 귀엽게만 보였다.

“이이익, 대이님 그한하힙효”

“거참 진짜 말랑말랑하네. 쭉쭉 늘어난다, 늘어나.”

파리어는 이제 두 손을 둥그렇게 모아서 부들부들한 뺨을 떡 메듯 부르르 떨었다.

“그한하라후효”

“어휴, 베어 먹으면 꿀떡꿀떡 넘어가겠어, 소위.”

“이 대이님이 진짜!”

결국 박치기가 나가고 말았다. 이마를 정통으로 얻어맞은 파리어의 입에서 ‘악!’ 단말마가 새었다. 단단한 돌복숭아에 얻어맞은 이마는 일초도 지나지 않아서 시뻘겋게 부어올랐다. 예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강렬한 통증이었다. 순간 눈앞이 아찔해졌다. 잠시 구름 위 천사를 만나고 온 것도 같았다. 콜린스보다 한참 못하지만, 그래도 분명 천사였다. 리더한테 쪼인트를 까였을 때보다 서너 배는 더 아픈 박치기였다.

그렇게 파리어가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사이, 콜린스는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고 식식거리기를 반복했다. 자기가 때렸지만 서도 너무하다고 자각은 하는지, 빨간 얼굴 가득 당황한 티가 역력했다. 어린 장교는 자기가 상관한테 박치기를 날렸다는 사실과, 그걸 맞은 대위님이 데굴데굴 구르고 있는 것을 보고 어쩔 줄 몰라 했다. 아기장교는 잘 익은 복숭아 같은 얼굴을 하고서 소리쳤다.

“그, 그러니까 지가 그만하라고 했잖슴꺼!”

말을 더듬는 모습까지 귀여워 보이면 이젠 콩깍지 벗지도 못하는 거겠지? 아, 깨물면 푸딩처럼 맛있을 것 같다. 파리어는 성내는 복숭아를 황홀하게 바라보며 생각했다. 근엄한 얼굴의 상관이 무슨 삿된 속내를 품고 있는지도 모르고, 소위는 항변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시, 싫다카는데 자꾸 만지는 것도 다 데이트 폭력임더. 그러면 안 되는 거라꼬 성교육 시간에 안 배우셨슴꺼?”

“난 소위가 너무 귀여운 표정을 하길래 그만……”

파리어가 죄책감을 가장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기어들어가는 말끝을 보고서 콜린스는 괜히 큼큼, 헛기침을 하며 훈계를 했다.

“지가 말했잖아예. 좋아하면 좋아한다꼬 말로 하라꼬. 강생이도 사람이 좋으면 꼬리를 흔들어싸는데, 대이님은 입이 뚫렸는데 왜 말로 못하심미꺼.”

그러더니 단단히 결심을 했는지 ‘에잇’ 주먹을 꽉 쥐며 말한다.

“안 되겠심더. 이번 기회에 대이님 머리통에 아주 콱 새겨넣어야겠심더!”

그런 콜린스의 발길이 향하는 곳이 둘만의 침대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파리어는 느꼈다. 박치기 한 번에 즐거운 몸의 대화라니. 이만한 거래가 또 없다. 언제나 그렇듯, 복덩이는 넝쿨째 들러온다.

 


4. 필로우토크

 

잭 앤드류 콜린스는 한다면 하는 남자였다. 어른스럽게 마음을 표현할 줄 모르는 가련한 대위님을 위해서 제대로 된 몸의 대화를 가르쳐주겠다던 그의 결심은 진심이었다. 신체 건강한 군인 둘이서 비좁은 이층침대에 파묻혀 격렬하고 열정적으로 ‘진솔한 대화’를 주고받은 끝에, 침대 기둥이 삐거덕거리는 고무적인 결과를 낳았다. 위에서 베개싸움을 해도 멀쩡하던 철제 다리도 소통을 향한 끈덕진 열정 앞에서는 버틸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파리어 대위는 불안하게 흔들리는 침대 위에 철푸덕 누운 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거칠어진 숨소리를 내기는 옆쪽도 마찬가지였다. 한참을 대위 위에 올라타서 짓누르고 방아를 찧던 기럭지가, 마침내 께느른하게 미끄러진다. 문짝 소위는 힘이 풀린 사지를 주체하지 못한 채, 새끼 기린처럼 애인의 품 안으로 휙 주저앉았다. 그는 두툼한 가슴팍에 고개를 묻은 자세 그대로 은은한 땀내를 흠뻑 들이켰다.

“이제, 흐, 좀 아시겠슴꺼? 좋아하면 말로, 흐으, 하라꼬예에…… 으으응!”

마지막까지 엉덩이를 주물럭거리는 커다란 손길에, 젊은 군인은 그만 말을 잇지 못하고 폭 안기고 말았다. 대위는 또 혼날 걱정도 잊고서 손 안에 꽉 들어차는 풍만한 살덩이를 음미했다.

“후우, 물론이지. 문신처럼 딱 새겨놨어. 솔직하게 몸으로 말하기.”

“음숭하기는!”

콜린스가 콧등을 탁 치며 대꾸했다. 그렇게 두어 번 눈을 흘기더니, 싱글벙글한 대위님 표정에 마음이 사르르 녹았는지 결국 자기도 파리어를 바짝 따라 눕는다. 그리고 커다란 덩치를 꼬물꼬물 움직여 애인 품 안으로 데구르르 굴러들었다. 그는 아직 열기가 식지 않은 맨살을 파리어한테 답싹 달라붙으며 물었다.

“근데예, 근데예에.”

“응응.”

“대이님은 지 어디에 반했어라예?”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코를 큼큼거리는데, 거기에 안 넘어갈 수가 없다. 이미 몸의 대화로 한 번 무장해제 당한 바 있는 파리어는 근엄한 잉글랜드인의 체신도 잊고서 함빡 따라 웃었다.

“병아리처럼 포슬포슬한 뒤통수가 좋아. 쓰다듬으면 강아지 만지는 느낌이 들거든.”

“병아리”

“웃을 때 살짝 드러나는 앞니도 좋아. 토끼처럼 귀엽잖아.”

달구 새끼에 이어서 토께이까지 거론되자 콜린스의 표정이 어딘가 미묘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간증은 계속되었다.

“커다란 키도 좋아. 좋은 건 크게 봐야지.”

“잘빠지고 늘씬한 다리도 좋아. 엉덩이는 또 얼마나 잘 올라붙었어?”

“근육도 알차고 두툼한데 손대보면 말랑 촉촉해서 좋아. 만지는 맛이 있어.

“으으음”

어딘가 불편한 소리가 흘렀지만, 파리어는 무시했다.

“우유에 담갔다 뺀 것처럼 뽀얀 피부도 좋아. 거기에 땀이 흐르면 얼마나 섹시한지 넌 모르지?”

“튼튼해서 좋아. 언제나 잘 먹고 잘 뛰고 건강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그래서 내가 무리해도 안 지치고 받아줘서 좋아.”

마지막 속삭임에서 드디어 콜린스가 새빨갛게 폭발해버렸다. 기럭지도 길고 근육도 알차고 피부는 촉촉말랑하고 건강미 넘치는 문짝 소위는, 딱딱한 돌주먹으로 대위의 가슴을 퍽퍽퍽 치며 난리를 떨었다.

“히야, 이 대이님 좀 보소! 머슴처럼 아주 입을 깍 다물고 있낄래 입 좀 속 시언하게 터보소, 햇더니만 응큼한 아제가 됐심더! 숭악하니까 그만 두이소.”

좋으면서 아닌 척 잡아떼는 모습조차 사랑스러워서 파리어는 입이 찢어질 듯이 웃었다. 가슴에 멍이 들도록 토닥토닥 얻어맞으면서도, 그저 웃었다. 그는 콜린스의 포슬포슬한 뒤통수를 쓱쓱 쓸면서 흐뭇하게 속삭였다.

“이런 응큼한 짓해도 좋아해주는 너라서 좋아.”

 


5. 축구의 요정

 

파리어 대위가 알고 있는 콜린스 소위의 모습은 거짓이다. 적어도 몰리 상병은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었다. 콜린스 소위는 결코 대위가 믿는 것처럼 사랑스러운 푸딩이 아니라, 슈니발렌을 깨부수는 영국의 망치라고. 오늘도 어김없이 축구 소집 명령이 내려온 사병들 틈에 부대끼면서 몰리 상병은 그렇게 생각했다.

“자, 집합! 집합했으면 퍼뜩퍼뜩 팀 나누자꼬!”

콜린스 소위님이 들뜬 목소리로 호령했다. 하얀 운동복을 갖춰 입고서 운동화 끈도 챱챱 조여 맨 모습에서는 청량감이 듬뿍 묻어나왔다. 남들보다 종아리 한 마디씩은 더 긴 신장 탓에 하얀 운동복이 허벅지 위로 딸려 올라갔는데, 축구를 한다는 생각에 너무 들뜬 나머지 민망스러운 줄도 모르고 있는 듯 했다. 옆에서 톡 건드리면 풍선이 터지듯 팟! 웃음이 와락 터져 나온다. 그런 흐트러진 모습이 일을 할 때의 절제하는 모습과는 사뭇 달라서 모처럼 나잇대 다운 풋풋함이 사르르 풍겼다. 왜 연대 사람들이 포티스 팀의 막내 장교를 아끼고, 그와 친해지고 싶어 하는지 십분 이해가 생기와 활력이었다.

이상의 모든 달짝지근한 비유와 묘사는 몰리 상병이 아직 콜린스 소위를 잘 몰랐을 때의 이야기다. 지난 일 년 동안 콜 소위님과 함께 땀내 부대끼며 (반강제로) 연병장을 뛰어야 했던 상병은 이제 진실을 안다. 저절로 시선이 돌아가는 매끄럽고 기다란 허벅지는 사실 부딪치면 뼈에 멍이 드는 폭주 기관차다. 나비처럼 날아올라 벌처럼 휘두르는 팔은 명치에 적중하면 숨이 턱 막힌다. 타고나기를 보드라운 피부결에 속아서 방심하고 근처에 있다간 중요한 순간에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만나러 갈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 돌주먹에 (실수로) 맞아본 적 있는 몰리 상병은 일주일 내내 파랗게 멍이 든 가슴팍을 부여잡고 다녀야 했다.

요컨대 상병이 연대 내 축구 시합을 기피하는 데는 타당한 이유가 있다는 뜻이다. 특히 그 시합이 콜린스 소위님의 적극적인 제안이라면 더욱 더. 그리고 콜린스 소위님은 자타공인 연대 최고의 축구 애호가였다. 공을 찰 생각에 벌써부터 붕붕 날아오르기 시작한 막내 소위님을 바라보며, 몰리 상병은 조용히 눈물을 삼켰다.

‘아, 살고 싶다.’

결코 콜린스 소위님의 본심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은 연대 어디에나 널렸고 실제로도 프로 경기가 있는 날이면 삼삼오오 라디오 앞에 모여서 중계를 들으며 훈수를 놓는 것은 장병들의 대표적인 취미생활이니까. 잘 찾아보면 콜린스 소위보다 더 축구에 열광하는 사람도 숨어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콜린스 소위에게는 다른 축구 애호가들에겐 없는 문제가 있는데, 바로…… 문짝만 하다는 것이다!

타조처럼 뛰어올라 장롱만한 덩치로 부딪히는 그의 태클은 이미 명성이 높았다. 뼈 밀도가 다르기라도 한 건지, 전속력으로 공을 따라가면서 팔을 흔드는데, 실수로 거기에 부딪혔다가 포기를 선언하고 뒷방 벤치로 물러나는 사람이 매 경기 나오곤 했다. 하필 포지션도 공격수다. 직접 말로 하진 않되, 포지션을 나눌 때마다 은근한 얼굴로 ‘내는 가운데가 좋더라’, ‘연병장은 가운데서 봐야 잘 보이더라꼬’, ‘골대를 향해 뛰고 싶어야’ 등의 말로 종용하는데 강아지 산책 조르듯 미드필더 자리를 탐내는 그 초롱초롱한 눈빛을 누구도 외면하지 못한다. 콜린스 소위는 결국 매번 소원대로 ‘화합과 단합의’ 축구 경기를 뛰고, 공격수 자리를 꿰차는 데 성공하고 만다. 그렇게 콜 소위의 공격수 포지션이 확정되고 나면, 남은 대원들은 제발 그와 같은 팀이 되기만을 빌 뿐이다. 상대팀이면 더 얻어맞을 테니까.

맹렬하게 달려드는 콜 소위의 태클을 처음 온몸으로 받아냈을 때, 몰리 상병은 이게 말로만 듣던 병영 부조리인가 싶었다. 공군은 폭력이 덜하다고 들어서 입대했는데, 다 뻥이고 사실은 뒤에서 축구공으로 패는 것이었구나. 나중에는 자기도 모르는 새에 콜린스 소위님한테 찍힌 건가 심란해서 오금을 떨며 지새운 밤도 있었다. 그만큼 무서웠다. 공을 향해 힘차게 뛰어오르는 콜핏파이어는 공포이자 경외의 대상이었다.

수소문해본 결과, 다행히도 콜핏파이어의 태클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평등하게 닥치는 권능이었다. 고급 장교가 아닌 이상, 비긴 힐 기지에서 근무를 하다보면 한 번쯤은 겪게 되는 자연재해라고 할까. 그 사실을 알고 나니 조금은 마음이 놓…이진 않고 여전히 축구 따위 하기 싫었다. 오늘도 모세 앞의 홍수처럼 스러져나갈 선수들을 생각하니 조금은 억울하기도 했다. 결국 몰리 상병은 용기를 내서 총대를 메기로 했다.

“소위님! 저 사실은…… 저 사실은, 축구가……!”

‘하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그렇게 당당하게 외쳐야 했다. 그러나 미처 말을 끝내기 전에 콜린스 소위의 말간 얼굴이 먼저 클로즈업 됐다. 그는 자못 심각한 눈빛으로 상병의 안색을 탐색했다.

“니 설마 공차기 모르나.”

“예?”

“니 추꾸할 줄 모르냐고.”

‘그럼 내가 가르쳐줄게.’ 그렇게 덧붙이는 콜린스의 표정이 너무 다정하고 걱정스러워 보여서 상병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세상 무해한 표정으로 물어보시면 반칙이시지 말입니다. 리트리버처럼 웃어놓고는 비글처럼 돌진할 거면서…… 상병은 울상을 지었다.

유혹과 진실 사이에서 잠시 갈등하긴 했으나, 돌진하는 콜핏파이어는 역시 무섭기 때문에 상병은 대충 그렇다고 둘러대려고 했다. 자존심이 문제가 아니다. 또 저 달리는 폭격기에 얻어맞느니 좀 바보 같아 보여도 축구를 모른다고 거짓말 하는 편이 나아 보였다. 그렇게 결심하고 용기를 내려고 할 때였다.

“네, 저 사실 축구 안……‘

저 너머 관중석에서 뜨거운 시선이 느껴졌다. 파리어 대위였다. 대위는 팔짱을 낀 채로 말없이 몰리 상병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손으로 V자를 만들었다. 그리고 자기 눈을 한 번 가리켰다가, 천천히 상병의 눈을 가리켰다.

‘다 보고 있다.’

입술 하나 꿈쩍이지 않고 뚫어져라 응시하는 얼굴빛은 지옥의 수문장과 같고, 팔짱을 끼느라 한층 도드라지는 두툼한 어깨는 일부러 과시하는 듯하다. 과시하는 게 분명하다. 지금부터 그 입에서 나올 말을 잘 선택해야 할 거라고.

명백한 겁박과 위협이었다. 축구의 요정보다도 더 질이 나쁜 그런 협박. 군 생활이 복잡해지길 원치 않았던 막내는 결국 양심의 소리를 무시하고 말았다.

“으늡느드…… 축꾸…… 은즌 흐그 습습느드……”

“아, 진짜!”

활짝 웃는 얼굴이 천사처럼 예뻐서 차마 콜 소위를 원망할 수도 없었다. 병영 내 괴롭힘은 없지만 병영 내 부당 연애가 존재하는 건 분명하다. 자긴 상관이라서 안 뛰어도 된다고 이렇게 협박을 하다니! 파리어 대위는 듣던 것보다 훨씬 더 악독한 상관이었다.

언젠가는 당신도 콜핏파이어한테 톡톡히 당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그렇게 눈물을 삼키며 상병은 연병장으로 끌려갔다. 축구의 요정이 해사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6. 복수

 

편대장으로부터 자유 시간 내 체육활동에 대한 특별 지시가 내려왔을 때, 파리어는 가장 먼저 어여쁜 애인의 안색부터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발걸음도 씩씩하게 축구화를 달랑 달랑 들고 걸어오던 애인은 이어지는 소령의 지시를 듣고 그만 공을 떨어트리고 말았다.

“단체 소원수리가 들어왔다. 오늘부터 축구 시합은 자제하도록.”

공은 떼구르르 굴러갔다.

“머라고예?”

“지금부턴 축구 시합 금지라고.”

“와…… 와임니꺼? 갑자기 와 그러는데예?”

“소원수리가 들어왔다니까. 축구 중에 병사들 잔부상이 너무 많다고 하잖아.”

소위는 이미 세상을 다 잃은 표정이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사슴 같은 눈망울을 크게 뜨며 간절하게 소령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이미 단련된 소령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다른 운동 하면 되잖아. 크리켓이 좋겠네. 얌전하고 부상도 적고. 얼마나 좋아?”

“우리 애들 하루 죙일 뱅기 안에서 꾸겨져 있는데, 그런 째깐한 운동으로는 턱도 없슴미더! 팔도 쭉 피고, 다리도 쭉 피고! 이렇케 쭉쭉 피는 데는 추꾸가 제일임미더!”

“그렇게 쭉쭉 피다가 싸워보기도 전에 앓게 생겼다니까. 너 임마, 등치는 장롱만해가지고선. 니 팔다리 간수 좀 잘 하지 그랬어.”

켄필드가 콜린스 소위의 이마를 톡톡 치며 나무랐다. 시무룩한 콜린스 대신 역정을 낸 이는 파리어였다.

“잘 먹고 잘 뛰는 애한테 왜 뭐라고 하십니까? 건강하고 보기만 좋습니다. 요즘 새끼들이 빠져서 엄살 좀 떠는 것 가지고 리더는 왜 얘한테 뭐라고 그래요?”

“마, 맞슴미더! 새로 들어온 아들이 너무 무른 검미더. 므찐 파일럿이 될라고 하믄 추꾸가 필수라고예.”

애인이 거들어 주자 용기를 얻은 콜린스가 쫑알쫑알 덧붙였다. 다행히 파리어와 달리 아직 상식과 식견이 남아있는 켄필드는 막내의 아무말에 넘어가지 않았다. 그는 콜린스를 한 번 쳐다봤다가, 다시 파리어를 쳐다봤다. 콜핏파이어의 악명을 만들어낸 숨은 장본인이 여기 있었다. 곧 파리어의 이마 위로 따끔한 꿀밤이 내렸다.

“다 너 때문이다, 너 때문. 내가 연애할 거면 티 안 나게 하랬지.”

“예쁜데 그럼 어쩝니까. 리더는 사람 마음이 마음대로 되십니까?”

그 덤덤한 태도에 켄필드는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이 자식 그 숫기 없던 놈 맞아? 사랑 앞에 내성적이던 잉글랜드인은 어디로 갔는지, 천지가 뒤집힐 일이다.

사춘기 자식들처럼 틱틱거리는 두 사람을 향해 켄필드가 강하게 소리쳤다.

“아무튼 축구는 안 되는 줄 알아!”

 

 

7. 연어

 

축구 금지령이 떨어지고 난 후 콜린스가 너무 낙담했기 때문에 대위는 어떻게든 위로해주고 싶었다. 평소 우울한 콜린스를 달래기 가장 좋은 방법은 같이 축구 중계를 듣거나 축구를 하게 해주는 것인데, 그 축구가 금지당한 것이니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무엇이 좋을까? 어떻게 하면 저 얼굴에 다시 복숭아꽃이 피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대위는 한 가지 결론에 다다랐다.

‘역시 저기압일 땐 고기 앞이지.’

그렇게 해서 간만에 콜린스를 데리고 외식을 하러 갔다. 분위기 좋은 테이블에 앉아서도 콜린스는 시무룩하게 메뉴판만 만지작거렸다. 그 측은한 모습을 견딜 수 없던 나머지 파리어는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그러다가 스코틀랜드에서는 연어를 자주 먹는다는 얘기를 들은 것을 떠올렸다.

“소위는 역시 연어 요리로 할 텐가? 스코틀랜드인들은 연어를 좋아하지?”

스코티쉬 남자와 사귀기 시작한 이래로 틈날 때마다 사전조사를 했다. 그 정성이 드디어 빛을 본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가슴이 뿌듯해졌다. 그런 파리어의 보람을 깨트린 것은 다름 아닌 콜린스였다. 그는 정색하며 파리어를 타박했다.

“대이님, 그렇게 말하믄 안 되심미더. 그게 다 지역 차별이고 편견인 거라예. 스꼬뜰랜드 아라고 다 연어에 환장하는 줄 아심니꺼?”

그러더니 자세까지 바로 잡아가며 조곤조곤 아이 가르치듯 파리어에게 설명했다.

“입장을 바꿔보심더. 잉글랜드 사람들은 음식을 다 태워 먹으니까 아, 이 사람들은 탄 음식을 좋아하는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얼마나 꺼끄럽겠슴미꺼?”

정확한 지적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파리어는 콜린스의 논리 정연한 예시에 탄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조신하게 반성했다.

“네 말이 맞아, 콜린스. 미안하다. 네 취향은 다를 수 있는데 내가 입맛을 멋대로 정해버렸어. 사과의 의미로 오늘은 전부 내가 사도록 하지. 그럼 어떤 걸로 하겠어?”

“지는 구운 연어요.”

순진무구한 얼굴이 배시시 웃는다. 파리어는 엄숙한 손짓으로 웨이터를 불렀다.

“연어 구이 둘, 위스키 두 잔.”

그리고 그만의 비밀 노트에 몰래 기록해두었다. <스코틀랜드인은 연어에 환장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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