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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사람의 복수극: 몬테크리스토 백작

"복수를 결심한 날, 왜 내 심장을 뽑아버리지 못했던가"


펭귄 클래식 판 표지. 샤토 앙페 디프(이프 성)




어릴 적 기억 속에서 어렴풋이 제목만 기억하던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뽑아들게 된 것은 모 게임 덕분이다. 복수귀를 자처하는 그 게임 캐릭터는 시니컬한 냉정함으로 주인공에게 우정을 표하고, 비관적인 언행 속에 인간찬가를 노래하는 기묘한 캐릭터였다. 이 입체적인 캐릭터의 원형이 된 인물은 과연 어떤 인물일지 궁금해졌고, 그것이 근 15년 만에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집어들게 된 계기였다.

어릴 적 친척 집의 서가에 앉아 몰래 읽던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암굴왕』이라는 일본식 제목의 축약본이었다. 표지에는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비참한 행색의 남자가 감옥 안에 갇힌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얼핏 들춰 본 초반부의 내용은 오싹해질 만큼 음울했다. 겁이 많았던 나는 지레 공포소설인가보다 겁이 나서 책장을 덮었고, 그 후로 너무 비참한 나머지 나까지 우울해질 것만 같은 『암굴왕』 이야기는 잊고 살았다.

아니나 다를까, 15년 만에 다시 펼쳐 든 암굴왕의 이야기는 내 공감성 수치를 한계까지 끌어올리는 억울한 사연이었다. 지극한 효자이자 충실한 연인이고, 정의롭고 선량하며 열아홉 소년. 젊은 나이에 상선 선장으로 추대될 만큼 능력과 인품도 뛰어나고 매력적인 외모와 성품까지 겸비했다. 이보다 더 주인공스러울 수 없는 인물이 그를 질투한 주변인의 모함에 휘말려 억울한 옥살이를 하게 된다. 정치범으로 몰려 영장도 없이 구금되고, 결백이 밝혀질 것을 기대하고 정직하고 진솔하게 진술하지만, 믿었던 선의는 배신당하고 이후 14년 동안 외딴 성채 감옥에 갇혀 토굴살이를 하게 된다.

나는 확실히 이런 류의 이야기에 약하다. 선량하고 죄 없는 사람이 부당하게 고통 받고 시련을 당하는 이야기에 약하다. 몸이 거부라도 하는 듯이 심장이 뛰고 안절부절 못하며 맥박이 빨라진다. 전형적인 공감성 수치 증세다. 소설의 법칙에 따라 후에 시원한 복수극이 예정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혹시 그 복수가 허무하게 끝나진 않을지, 복수를 이룬 주인공이 죄책감이나 허무함에 못 견뎌 더 큰 파국으로 빠지진 않을지 걱정이 돼서 참을 수 없다.

이렇게 자잘한 걱정을 견디고 책을 읽게 한 것은 단 두 가지─타고난 이야기꾼인 알렉상드르 뒤마의 필력과 인간 에드몽 당테스(몬테크리스토 백작의 본명이다)의 매력 덕분이었다. 행복의 절정에서 나락으로 떨어졌다가, 절망의 시간을 견뎌 다시 한 번 비상을 꿈꾸는 에드몽 당테스의 행보를 따라갈수록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됐다.

조력자 파리아 은사로부터 교육을 받기 전부터 이미 지중해 3개 국어를 구사하고 명민하고 판단력이 빠르며 훌륭한 항해사─이런 설정들을 보다보면 ‘이것이 19세기인이 상상한 먼치킨 캐릭터구로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200년 전의 프랑스 독자들이 이런 ‘이상적인 근대인’의 매력에 이끌려 『몬테크리스토 백작』이 폭풍적인 인기를 구가한 것일지도 모르겠으나, 정작 내가 에드몽 당테스에 푹 빠지게 된 이유는 선천적인 선량함과 이유 있는 원한 사이를 오가는 그의 입체적인 성격, 다시 말해 끊임없이 갈등하는 그의 인간적인 면모 때문이었다.

에드몽이 고통받고 갈등하는 장면을 홀린 듯이 읽은 적이 여러 번이다. 그 대목들을 멋들어지게 정리해서 소개하고 싶지만, 아무래도 내 빈약한 문장으로 멋을 부리기보단 원문을 인용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pp. 181~182.) 샤토 디프의 독방에 갇혀 인간의 손길을 잊어가던 에드몽.

“그는 버릇처럼 간수가 새로 오기만 하면 또 얘기를 해보았다. 새로 온 간수가 먼저 사람보다 더 말 상대를 안 해주어도 좋았다. 그 사람이 설령 벙어리라 할지라도, 한 인간에게 말을 한다는 것이 그에게는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당테스는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보려고 말을 거는 것이었다. 그는 혼자 있을 때, 말을 하려고 하면 무서운 생각이 들곤 했다.”

(p.183) “행복한 사람에게 기도란 다만 단조로운 무의미한 것들의 집합에 지나지 않으나, 괴로운 날이 오게 되면, 고통은 불행한 사람에게 신과 이야기할 수 있는 이 숭고한 언어의 의미를 이해하게 해준다.”

어떤 이유로든 간에 오랫동안 사람과 말을 하지 못하게 될 때의 두려움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언어를 잃어버릴 것만 같은 두려움에 아무 말이라도 인간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더 이상 나의 힘이나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신을 찾아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이 절박함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그런 적이 있었다.

 

다행히 이 소설은 에드몽의 고문극이 아닌 에드몽의 복수극이기 때문에 결국 탈옥에 성공한다. 감옥에서 사귄 벗을 여의고 그 시체 주머니에 몰래 숨어서 탈옥을 한 뒤 지나가던 밀수선에게 구조받은 뒤, 에드몽은 오늘의 연도를 묻는다. 의아해하는 선원으로부터 1828년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난 에드몽은 씁쓸한 웃음으로 생각한다.

(p.291) “지난 14년 동안을 하루 같이 감옥 속에 틀어박혀 있었던 것이다. 19세에 샤토 디프에 들어갔는데 서른셋에 그곳을 나왔던 것이다. 쓰디쓴 미소가 당테스의 입술 위에 떠올랐다.”

14년만에 육지에 발을 디딘 에드몽이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이발소였다. 그곳에서 면도와 이발을 부탁하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에드몽은 생각한다.

“샤토 디프에 처음 들어갔을 때의 당테스는 인생에의 첫걸음으로 순조롭고 미래도 행복으로 가득 차서 얼굴에 그늘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환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랬던 것이 지금은 완전히 변해 있었다. 갸름하던 얼굴은 홀쭉해지고, 웃음을 머금고 있던 입은 결심을 나타내는 듯 꿋꿋하고 동요하지 않는 선이 드러나 있었다. 눈썹은 단 한 가지 생각에 잠긴 듯 깊은 슬픔이 어려 있었고, 그 슬픔 속에서는 때때로 염세와 증오의 암담한 빛이 솟구치고 있었다. 햇빛과 대기를 오랫동안 쬐지 못했던 그의 안색은 윤기가 없었고, 얼굴은 검은 머리로 둘러싸여 마치 북방인 같은 귀족적인 아름다움마저 보이고 있었다. 그가 얻은 심오한 학문은 그 얼굴 전체에 안정된 예지의 빛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를 알던 누구도 알아보지 못할 만큼 변해버린 인상은 훗날 그가 정체를 숨기고 적에게 복수를 할 수 있는 유용한 무기가 된다. 그러나 감옥에서 유산 받은 보물지도 덕으로 백만 장자가 되었다고 해서, 시련으로 담금질한 강인한 체력과 심장이 생겼다고 해서 어떻게 14년의 불행이 보상받을 수 있을까? 몬테크리스토 섬의 보물을 찾고 14년 만에 고향 마르세유에 돌아왔을 때, 에드몽이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그가 살던 거리와 아버지의 집이었다.

“유년시절의 갖가지 추억,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남아 지울 수 없는 추억들이, 광장 구석구석, 거리 구석구석마다 떠올랐다. 노아이유 가의 어귀에 와서 알레 드 메랑을 바라보았을 때엔 무릎이 탁 꺾이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 방에는 아버지가 살던 때를 생각나게 하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옛날의 헌 가구들, 당테스의 어린 시절의 친구로서 그 세세한 부분까지도 기억 속에 뚜렷이 남아있는 가구들도 모조리 사라지고 없었다.”

사랑하는 아버지는 아들이 잡혀간 지 일 년도 되지 않아 돌아가셨고 사랑했던 약혼자 메르세데스는 종적을 감췄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에드몽은 아버지의 최후를 듣기 위해 수소문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 진실을 듣게 되었을 때 그는 신부로 변장했던 것도 잊고서 단장이 찢어지는 절규를 토해낸다.

“굶어죽다니!” 신부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 “굶어죽다니! 아무리 비천한 동물이라도 굶어죽지는 않는데!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개들도 마음씨 착한 사람이 빵이라도 한 쪽 던져 얻어먹게 마련인데, 기독교 신자인 인간이 자칭 기독교인이라는 사람들 틈에서 굶어죽다니! 그럴 수는 없소! 그럴 수는 없고말고!”

억울하게 아들을 빼앗긴 후 에드몽의 아버지는 자의로 식음을 전폐하고 자살을 택했던 것이다. ‘단장이 끊어진다’는 고사의 유래는 자식의 죽음을 탄식하는 부모에게서 유래한 것이지만, 어쩐지 에드몽의 상황을 설명하는 데 이보다 더 나은 표현이 없을 것만 같았다.

 

이 정도로 세상한테 배신을 당했으면 세상을 미워할 법도 하건만, 본성이 선량한 탓인지 그는 무지막지한 복수귀로 변신하는 대신 ‘정의에는 상을 주고 불의에는 벌을 주는 사도’로 자신을 재정의한다. 어려웠던 시절 아버지를 돌보아주고 끝까지 자신의 구명을 위해 탄원해주었던 옛 주인 모렐 가족을 파산에서 구해내고, 갓 탈옥해서 인간에 회의하고 있을 때 사람의 정을 보여준 동료 선원을 남몰래 돕는다. 복수를 행하기 위해 순진하고 너그럽던 면모를 버리는 한편, 여전히 인간적인 정에 흔들리는 모습이 번갈아 나타나는 장면은 갈등하는 인간으로서의 에드몽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p.17) “그는 치명상을 입은 관리를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그는 싸움 때문에 피가 끓어올라서인지 아니면 인간적인 감정이 냉각되어 버려서인지, 그것을 보고도 마음에 아무런 충격도 받지 않았다. 당테스는 지금부터 달려가려고 하는 길 위에 서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목표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의 마음은 가슴 속에서 화석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 세상은 팡그로스 박사가 생각한 것처럼 그렇게 선량한 것도 아니며, 또한 당테스가 생각하던 것처럼 악의에 찬 것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동료가 죽으면 그 사람 몫의 상여금까지 탈 수 있는 것을 알면서도 그가 죽어가는 것을 보고 이 사나이는 이처럼 진심으로 걱정을 해주는 것이 아닌가? (…) 당테스는 자코포를 유혹해보려고 했다. 그는 간호의 답례로 자기 몫의 상여금을 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코포는 화를 버럭 내면서 이를 거절했다.”

그리고 에드몽은 자신에게 인간의 선의를 베풀어준 동료에게 그에 걸맞는 보답을 베푼다.

(p.18) “에드몽은 마치 파리아 신부가 자기의 선생이 되어주던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은 자코포의 선생이 되곤 했다. 그는 우리들의 머리 위에 하늘이라고 불리는 커다란 책, 즉 신이 창공에 다이아몬드로 써 놓은 저 하늘이라는 책을 읽을 수 있도록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자코포가 ‘나같이 시시한 선원이 그런 건 알아서 뭐하누?’하고 말하면 이렇게 대답해주었다. ”알 게 뭐야? 자네도 언젠가는 선장이 될 거 아냐? 자네하고 같은 나라(코르시카) 사람인 보나파르트는 황제가 다 됐는데.“

 

“그는 고독 속에서 이 세상에 내던져졌으면서도 때때로 말할 수 없이 고독하고 싶을 때가 있었다. 그런데 캄캄한 밤, 무한한 침묵 속에서 주께서 내려와 보는 밑을 오직 혼자서 떠다니는 배보다도 더 광대하고 시적인 고독이 있겠는가? 고독은 그의 생각으로 가득 차고, 밤은 그의 공상으로 빛나며……”

 

과거의 은인에게 보답을 마치고 난 후, 에드몽은 이제 격렬한 감정을 버리고 복수귀로 화하기 위해 과거를 감춘다. 소설은 이십 년 뒤로 넘어간다. 작위를 사서 몬테크리스토 백작이 된 에드몽은 원수의 아들인 알베르를 만나서 계획의 실마리를 열고, 파리의 사교계에 입성하여 적들을 상대로 복수의 거미줄을 짓는다. 그 과정 동안 소설의 시점은 주변인들의 시각에 빙의해서 진행된다. 선한 청년 에드몽 대신 계략적이며 미스테리한 인물 몬테크리스토 백작이 묘사되는 것이다. 작품의 서술 방식 역시 에드몽의 심리와 행동을 직접 묘사하기보다는 주변 인물들의 시각에도 본 그의 행적을 따라간다. 인물들의 가장자리에 존재하지만, 모든 사건은 그의 손 아래서 움직이고, 점잖고 친절하게 웃는 그의 존재 앞에서 인물들은 저마다 탐욕이나 업보에 이끌려 파멸의 길을 걷게 된다. 다만 여전히 모렐 가족처럼 ‘복을 받을만한 선한 복자들’ 앞에서는 한없이 다정하고 상냥해지는데, 이런 복합적인 면모가 에드몽을 ‘입체적 복수자’라고 부른 이유다.

 


2. 정교한 거미줄처럼 진행되던 에드몽의 복수가 급격하게 전개되기 시작하는 것은 4권 후반부터다. 에드몽이 지난 날 자신을 정치범으로 모함하고 사랑하는 약혼자를 빼앗아간 원수 페르낭의 치부를 밝히는 데 성공하자, 페르낭의 아들인 알베르는 대부처럼 따르던 백작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모멸감과 배신감에 떨며 오페라 극장으로 쳐들어온 알베르를 향해 이전까지의 미소를 거두고 더 없이 냉정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동안 별러 온 복수를 시작하려는 듯이.

(p.419) “그러나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일어서려고도 않고 의자를 앞으로 기울이면서 손만 내밀어, 알베르의 움켜쥔 손가락 사이에서 땀으로 축축해지고 꾸겨진 장갑을 빼내면서, 무서운 어조로 말했다.

「이 장갑은 던진 것으로 생각하고 받겠습니다. 나중에 총알에 싸서 보내드리죠. 자, 이젠 돌아가시오. 안 그러면 하인들을 불러서 문 밖으로 던져 버리게 하겠습니다.」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다시 쌍안경을 들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장내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이 사나이는 청동 심장과 대리석으로 된 얼굴을 가진 것이 틀림 없었다.“

원수의 아들이기는 하나 아무 사실을 모르고 있는 알베르를 보면서 에드몽은 수없이 흔들렸다. 죄 없는 그를 불쌍히 여기기도 했다. 그러나 평생을 바친 복수를 포기하기에는 그의 자존심이 용납할 수 없었고, 그는 죄 없는 아들을 죽여서라도 그 아비에게 복수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토록 확고한 결심을 무너트린 것은 옛 연인 메르세데스의 등장이었다. 인생을 걸고 사랑했던 사람, 지금은 원수의 아내가 된 여자가 ‘처음부터 당신임을 알고 있었노라’ 고백하며 아들을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메르세데스는 에드몽의 인생과 소설의 서사를 관통하는 중요 인물임에도 그전까지 기이할 만큼 등장이 적었는데, 이 대목에 이르러 등장인물들 중에서 오직 그녀만이 백작이 에드몽임을 알아보았음이 밝혀진다. 동시에 강철 같던 백작의 가면은 벗겨지고 미처 잘라내지 못했던 사랑, 애정, 선량함, 감동 같은 본래 성품이 드러나버린다.

(p.428) 「에드몽, 제발 제 아들을 죽이지 말아주세요!」

백작은 한 걸은 뒤로 물러서며 나지막하게 외마디 소리를 지르더니, 들고 있던 권총을 떨어트렸다.

「방금 뭐라고 부르신 겁니까, 모르세르 부인?」

「당신 이름이에요!」 부인은 베일을 벗어던지며 말했다. 「당신 이름이에요. 저만은 그 이름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에드몽, 지금 여기 온 사람은 모르세르 부인이 아니에요. 메르세데스에요.」

「메르세데스는 살아있어요. (…) 메르세데스만은 당신을 보았을 때, 아니 보기 전에 당신의 목소리만 듣고도 당신을 알아보았으니까요.」

그리고 모르세르 백작(페르낭의 작위)에게 잘못이 있다면 남편과 자신만을 벌하고, 아들을 살려달라고 간청한다. 자기를 모함하고 악행의 악행을 거듭해서 백작이 된 자의 이름을 듣자, 백작은 수십 년 전 일개 항해사와 어부와 시골 처녀에 지나지 않았던 그들 세 사람의 이름을 오랜만에 기억해낸다.

“「페르낭 얘기시로군요.」 백작은 신랄하게 비꼬는 어조로 말을 이었다.

「기왕에 우리의 옛날 이름을 되찾으려면 다른 사람들의 이름도 기억해 내시지요.」

 

그리고 메르세데스에게 자기 행동의 이유를 밝히는 부분이 이어진다. 바로 여기서 뒤마가 생각한 복수극의 핵심이자 에드몽의 복수가 독특한 이유가 나오는데, 그는 자신의 복수를 사적 복수가 아닌 신의 대리인으로서 정의를 실현하는 것으로 정의하는 것이다. 『몬테크리스토 백작』이 흔한 기독교적 후회의 복수극이 아니라 시원시원한 복수극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백작은 자신의 복수에 후회하지 않으며 사필귀정의 실현으로 받아들인다.

 

(p.429) “「부인께선 지금 혼동하고 계시는군요. 이건 불행이 아닙니다. 징벌이라는 거지요. 모르세르 씨가 쓰러진 것은 제가 한 일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벌을 내리신 겁니다. (…) 그 프랑스 장교(모르세르)와 바질리키의 달 사이의 문제는 부인 말씀대로 저와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죠. 그리고 제가 설혹 복수를 맹세했다 하더라도, 그건 결코 프랑스 장교나 모르세르 백작을 향해서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어부 페르낭, 즉 카탈로니아 출신의 메르세데스의 남편입니다.」”

(p.432) “그런데 프랑스 사람들은 그러한 반역자에게 아무런 복수도 하지 않더군요. 스페인 사람들도 그를 총살하지 않았고요. 알리도 무덤 속에 누워 있어, 그 배신자를 처벌할 수 없었지요. 그러나 무덤 속에까지 던져졌던 나는, 하느님의 은혜로 그 무덤에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런 은혜를 베푸신 하느님을 위해 나는 복수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p.434) “메르세데스, 그래요. 과연 그 이름을 부르니 내 마음은 아직도 즐겁군요. 나는 슬픈 탄식을 할 때나, 괴로워 신음할 때나, 무서운 절망 속에서나 늘 이 이름을 불러왔습니다. 감방의 짚더미 위에 쭈그리고 앉아, 추위에 몸이 얼어 붙어서도 이 이름을 불렀지요. 너무 더워서 바닥의 포석 위로 몸을 이리저리 굴리면서도 이 이름을 불렀지요. 메르세데스, 나는 복수를 해야만 합니다. 난 십사 년이나 되는 세월동안 고통받았고, 십사 년 동안 울면서 저주했으니까요. 메르세데스, 분명히 말해두지만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복수해야만 합니다.”

 

이처럼 벼락 같은 복수를 다짐한 에드몽의 단 한 가지 실수는, 자기 안에 숨어 있던 인간적인 정이며 사랑을 완전히 버리지 못했다는 것 하나였다.

(p.436) “「당신은 자기가 없는 동안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습니까? 심연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는데,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가 자기의 연적에게 손을 내미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없어요.」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원수의 아이를, 내 아이를 죽이려는 것은 본 적이 있어요.」

메르세데스의 이 말에는 너무나 짙은 슬픔의 빛이 스며 있었고, 그 어조 역시 너무나 절망적이어서 그 말과 그 어조를 듣는 백작의 목구멍에서는 급기야 흐느끼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마침내 사자(使者)가 고개를 숙였다. 복수를 부르짖던 사람이 굴복하고 만 셈이었다.

「뭘 어떡하란 말씀입니까? 아드님을 살려달라고요? 좋습니다. 살려드리죠.」

그때 메르세데스가 지른 환성에 백작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솟아나왔다.

 

그런데 백작이 알베르를 살리는 대신에 선택하는 대가란 스스로 자살을 감행하는 것이다.

 

“「메르세데스, 내가 이 세상에서 당신 다음으로 가장 사랑하는 나 자신, 즉 내 권위는 다시 말하면 나를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하게 해주는 나의 힘입니다. 이 힘이야말로 내 생명이고요. 그 힘을 당신은 단 한 마디로 쓰러뜨려 버린 겁니다. 그러니 난 죽을 수밖에 없지요,」

「하지만 당신이 용서해 주신 이상 결투는 안 하게 되는 것 아닌가요?」

「아니, 할 겁니다」하고 백작은 엄숙하게 말했다.

「단, 아드님의 피가 땅속으로 스며드는 게 아니라 제 피가 흐르게 될 뿐이죠.」

 

(p.440) 메르세데스는 방문을 열었다. 그리고 백작이 복수의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된 데서 오는 비통하고도 심각한 상념 속에서 깨어나기 전에 이미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모르세르 부인을 태운 마차가 샹젤리제 가의 포석 위를 구르는 소리에 백작이 얼굴을 다시 들었을 때, 앵발리드의 시계는 한시를 알리고 있었다.

「바보 같은 짓을 했구나」하고 백작은 생각했다.

「복수를 결심한 날, 왜 내가 심장을 뽑아버리지 못했단 말인가!」


나는 이 대사가 에드몽 당테스의 삶을 관통하는 글귀이자, 갈등을 경험해본 모든 사람들을 대변하는 글귀라고 생각한다. 오래토록 결심하고 별러 온 감정을 결국 놓을 수밖에 없던 사람이라면 느껴보았을 한탄이라고. 그래서 이 독백을 좋아한다.

 

(p.441) “무슨 일인가! 그처럼 오래오래 준비하고 그토록 고심해서 세워놓은 계획이 단 한 마디, 단 일격에 단번에 무너지다니! 그래도 보통 인물은 아니라고 생각해오던 내가, 그처럼 자신만만하던 내가, 이프 성에서 그처럼 초라하게 지내다가도 이렇게 위대하게 될 수 잇었던 내가 내일은 한줌의 먼지가 되어버려야 하다니!”

(p.448) “내가 안타까워하는 것은 살고 싶어서가 아니다. 그것은 그처럼 오래오래 고심해서 열심히 쌓아놓은 계획이 무너져버렸기 때문이다. 이 계획을 찬성해 주시는 줄 알았던 하느님도 실은 반대해 오신 것일까? 결국 신은 이 계획이 성취되는 것을 바라지 않으신단 말인가?

나는 거의 지구만큼이나 무거운 짐을 들어올려서, 그것을 마지막까지 가져온 줄 알았는데…… 오, 십사 년 동안의 절망과 이십 년 간의 희망으로, 신과 같이 된 줄 알았던 내가 다시 운명론자로 되돌아가야 하다니!

이 모든 것은 죽은 줄만 알았던 내 심장이 잠시 잠들어 있던 것에 불과한 까닭이다. 그리고 그것이 다시 눈을 떠서 고동치기 시작하여, 한 여자의 목소리에 가슴 밑바닥에서 다시 고통스럽게 들리는 그 고동소리를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손을 들어버린 까닭이다."

 

(p.444) “「하느님!」 그는 하늘을 우러르며 말했다. 「저는 하느님의 명예를 위해서나 저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 이렇게 해놓았습니다. 지난 십년 동안 저는 복수를 위해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사도라고 자임해 왔습니다. 그리고 저 모르세르 이외의 악당들, 당그라르나 빌포르에게, 그리고 모르세르 자신에게 우연의 힘으로 용케 적의 손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하게 해선 안 됩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그들의 처벌을 명령한 신의 섭리가 나 한 사람의 의지에 의해서 변경된 것이라는 점과, 이 세상에서 모면한 벌이 저 세상, 즉 영구한 내세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려야만 합니다.」”

 

이 소설에서 복수는 어리석은 미련이나 헛된 아집이 아니다. 에드몽의 여정을 지켜본 독자라면 자연스레 수긍하게 되는 사필귀정의 일환이다. 영혼처럼 사랑한 메르세데스의 부탁에 흔들려 그 계획을 변경하는 결말부마저 에드몽의 선한 본성을 부각시키는 지레로 작용한다.

그는 결국 선한 사람인 것이다. 어린 날 무서운 표지와 뿌리 깊은 증오로 날 소름 돋게 했던 몬테크리스토는 잔인한 악인의 일대기라기보단, 사실 선량한 사람의 투쟁기였다. 동시에 복수극의 전형을 완성한 주인공이었다. 200년 전 뒤마의 손에서 탄생한, 공감할 수밖에 없는 복수귀의 이야기.

 

혹시나 이대로 에드몽의 복수가 완전히 무위로 돌아가고 권선징악은 수포로 돌아가는 것인지 궁금해 할 사람이 있을까 싶어 뒷이야기를 첨부한다.

자살을 결심하고 결투장에 나간 그에게 과거 은인의 아들인 막시밀리앙 모렐이 다가온다.

(p.448) “잠시 후에 객실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백작이 손수 문을 여니, 막시밀리앙이 문 앞에 나타났다. 막시밀리앙은 약속 시간보다 이십 분 가량 일찍 온 셈이었다.

「너무 일찍 온 것 같네요.」하고 모렐은 말했다. 「실은 전 한숨도 자지 못했습니다. 온 집안 사람들이 모두 그랬죠. 전 백작님의 꿋꿋하고 침착하신 모습을 보고 제 정신을 좀 가라앉히려고 이렇게 일찍 왔습니다.」

사랑이 넘치는 이 말을 듣자, 백작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청년에게 손을 내미는 대신 두 팔을 벌렸다." (에드몽이 그 복수의 맹세 뒤에 사실은 누구보다도 깊이 사람의 애정을 갈구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내 지나친 편애일까?)

 

그리고 선한 자에게 복이 있다는 성경구절처럼, 상황은 영리한 메르세데스의 기지로 반전된다. 메르세데스는 분노를 불태우는 아들 알베르에게 아버지의 업보와 진실을 밝힌 것이다. 어머니의 정직한 성품을 물려받은 것일까? 알베르는 결투를 포기하고 대신 입회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백작에게 용서를 구한다.

(p.459) “저는 백작님께서 에피루스에서 제 아버님(페르낭)이 저지른 일을 폭로한 것을 두고 비난했습니다. 왜냐하면 제 아버지가 아무리 죄가 있다 하더라도, 백작님께 그를 벌할 권리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백작님께는 그럴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오늘 이렇게 급히 사죄드릴 생각이 든 까닭은, 페르낭 몬데고가 알리 파샤를 배반했다는 점 때문이 아니라, 어부 페르낭이 당신을 배신하고 그 결과 당신이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불행을 겪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백작님, 백작님이 제 아버지에게 복수하신 것은 당연한 처사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저는 백작님께서 제 아버지에게 그 이상의 일을 안 하신 데에 대해 자식으로서 감사를 드립니다."


마침내 자신의 모함이 해소되고 결백이 인정받는 순간, 백작은 생각한다.

 

(p.461) “그는 아들의 목숨을 구해 달라고 찾아왔던 그 용감한 메르세데스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 아들을 위해 백작이 자기 목숨을 희생하기로 한 이 마당에, 그녀는 그 무서운 가문의 비밀을 고백함으로써 다시 자기 목숨을 구해준 것이다. 그리고 그 고백은 알베르에게서 아버지에 대한 자식의 정을 영원히 앗아가 버린 것이다.”

 

과오가 바로잡히고 선한 자가 정당한 보상을 받는 복수극은 얼마나 속이 시원한가. 내가 무서워했던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사실 선량한 사람의 복수극이었다.

 

 


+ 덧붙임: 『몬테크리스토 백작』에 나타난 나폴레옹 인식과 혁명기의 만화경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배경이 되는 시점은 나폴레옹이 1차로 엘바 섬에 유배되었던 1814년부터 그의 백일천하가 실패로 끝나고 부르봉 왕조에 의해 왕정복고가 이뤄진 1830년 사이를 배경으로 한다. 19세의 에드몽이 보나파르트 당원으로 의심당해서 샤토 디프에 갇히게 되는 전반부까지가 1차 왕정복고기(1814~1828), 돌아온 에드몽이 몬테크리스토섬의 보물을 찾고 세상을 유랑하는 중반부가 2차 왕정복고기, 그리고 파리로 돌아와 복수극의 서막을 올리는 후반부가 1830년 7월 혁명으로 인해 왕정과 민주정이 불안하게 공존하는 10월 왕정 시기에 해당된다. 요컨대 1789 이후로 공화정부, 통령정부, 나폴레옹의 민주적 제정, 복고왕정, 루이 필립의 10월 왕정이 번갈아가며 등장하던 격동의 프랑스 근대사를 배경으로 한다.

이렇게 빠르게 옮겨가는 시대상 속에서 소설은 주인공인 에드몽의 행적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지만, 틈나는 대로 당시의 시대상을 끼워 넣는 것도 잊지 않는다. 에드몽의 누명에 숨겨진 비밀을 풀어내면서 나폴레옹 복권을 기도하는 보나파르트 당의 계획과 이를 진압하려는 왕당파의 반동에 한 장(章) 이상을 할애하여 길게 서술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런데 이 상세하고 긴 서술이 단순히 작가의 지적 허영심 때문만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한때 보나파르트 사상에 공감했던 경험 덕분인지, 뒤마는 이런 시대상을 묘사하는 부분에서 19세기 전반 프랑스인들이 나폴레옹에 대해 가졌던 양가적인 감정을 절묘하게 포착한 것이다.

북쪽의 파리와 남쪽의 마르세유로 프랑스가 양분되어 있던 시절. 1789년 혁명과 그 뒤를 잇따른 나폴레옹의 등장, 왕정복고를 겪으면서 프랑스의 귀족과 평민, 부르주아와 노동자는 이 격동의 시대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혁명 초기 동안 재산을 몰수당하고 친인척이 참수당하기도 한 파리의 왕당파에게 나폴레옹은 당연히 혁명의 악동, 평민 출신으로 황제를 자처하며 민주주의와 제정을 절묘하게 뒤섞은 사기꾼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런데 소설의 등장인물들이 태어난 곳이자 수도 파리에서 떨어진 상업과 군인의 도시 마르세유에서는 사정이 달라진다. 프랑스 남쪽 일천한 섬 코르시카에서 태어난 군인이 대혁명 전쟁을 치르며 혁명정부에서 승승장구하더니, 종국에는 스스로 황제를 칭하며 제정을 설립했다. 그렇게 성립된 나폴레옹의 제정에서는 부르봉 시절의 작위나 권력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고, ‘1789의 혁명 정신을 계승하는’(적어도 나폴레옹은 그렇게 주장했다) 새로운 권력층과 새로운 지배계급이 등장했다.

요컨대, 평민 군인으로 시작해 복고 왕정을 누르고 만인지상의 자리에 오른 나폴레옹은 1) 주변부 지역에서 태어난 2) 평민 출신의 3) 군인과 부르주아지에게 일종의 성공 신화가 된 셈이다. 작중 등장하는 인물들(자수성가형 사업가 모렐, 군인 막시밀리앙, 밀수업자 베르투치오, 성악가 다니엘라 양 등)이 나폴레옹을 언급할 때 보이는 태도라던가, 심지어 정치적 무당파를 지향하는 에드몽조차도(그는 나폴레옹의 제정이나 부르봉 왕당파나 제대로 사건을 조사하지 않고 모함을 방조했다는 점에서 똑같이 악이라고 본다) 나폴레옹으로 대변되는 계층 대이동을 언급한다. (앞서 인용한 자코포와의 대화를 떠올려보자. 그는 하급 선원인 자코포에게 ‘자네도 언젠가는 선장이 될 거 아냐? 자네하고 같은 나라(코르시카) 사람인 보나파르트는 황제가 다 됐는데’라고 독려하며 항해술을 연마하기를 권고한다.)

작중에서 나폴레옹은 에드몽이 수감되어있던 10년 동안 복권에 실패하고 결국 대서양의 세인트헬레나 섬에 유폐되어 생을 마감하지만, 그 이후에 전개되는 복고왕정과 10월왕정에서도 혁명의 그림자는 유령처럼 남아있다. 세습귀족이 몰락하고 왕에게 충성하거나 공로를 세운 이들이 새로이 작위를 얻거나 돈으로 작위를 사는 경우가 횡행하는데, 사실상 작품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이 이에 해당한다. 당장 에드몽은 몬테크리스토섬에서 발견한 막대한 보물로 작위를 사서 몬테크리스토 백작이 되었고, 그의 원수인 어부 페르낭이나 회계 당글라르는 각각 군에서의 공로, 투기를 통해 백작과 남작 칭호를 얻는다. 소설에 묘사되는 파리의 정치는 절대군주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귀족 의회와 평민이 주축이 된 언론사와의 견제 사이에서 이뤄진다. 이 같은 숨은 묘사들을 통해 19세기 전반 프랑스에서 일어났던 왕당파와 공화파의 끊임없는 줄다리기, 군주제와 민주제의 반복되는 교체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는 19세기 프랑스에만 국한된 경험이 아니며, 봉건적 왕정이 근대적 민주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을 겪는 사회라면 한 번쯤 겪고 넘어가는 보편 경험인 것이다. 200년 전에 쓰인 통속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태어나 자란 사회의 역사를 떠올린 것은 이 때문이다.

신문에서 연재됐다는 사실 하나로 쉽게 ‘통속소설’로 치부되는 글이, 때로는 어떤 순문학보다도 충실한 사료가 되며 보편적 공감을 일으키는 애정작이 된다. 현대 복수극의 원형을 만들어낸 매력적인 주인공은 덤이다.

 



후기.

힘들고 괴로워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침대에서 일어날 용기가 나지 않을 때, 좋아하는 소설을 읽는다. 일단 읽어본다. 그리고 재미있는 이야기에 푹 빠져서 지금 날 괴롭히는 고단함이 잊혀지면, 그 때의 고마움을 남겨두고 싶어서 글을 쓴다. 깊은 불안과 우울 때문에 문장이 만들어지지 않고 괴로운 나머지 차라리 세상에서 사라져버리고 싶을 때, 내가 좋아하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조금은 숨이 쉬어진다. 그렇게 이 글을 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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