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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톨비 기반) 인형가방 톨비쉬 1

톨비쉬 인형가방이 귀여워서 쓰는 글.

* 망설이다가 포스타입에도 포스팅. 기록은 남기자 싶어서... 천천히 가기로 했다. 




이멘 마하를 지날 때였다. 인형공방의 휴가 웬일로 가게 앞을 지나가던 밀레시안을 붙잡았다. 평소 냉하고 무심하기로 유명한 사장님이 몸소 나서서 권하기를,

“인형가방 하나 입양하지 않을래?”

상이한 두 단어가 만나 애매한 신조어를 만들어내는 것을 듣고 밀레시안은 혀를 찼다. 

“인형이면 인형이고 가방이면 가방이지, 인형가방은 뭡니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그에게 휴는 작업대 위에 앉아있는 뼈대 하나를 가리켜 보였다. 아직 세부를 붙이지 않은 인형은 매끌매끌한 민머리였다. 단추로 눈과 입을 표현한, 참으로 심플한 모양새를 보고서 밀레시안은 눈썹을 으쓱였다. 설마 이걸 강매하겠다고 붙잡은 거? ‘내가 돈이 없지 머리가 없나.’ 이런 야바위에 넘어갈 정도로 휴한테 얕잡아 보인 건가 싶어서 밀레시안은 조금 짜증이 났다. 

“요즘 새로 개발 중인 신상품이야. 양산형인 기존 인형가방들과는 다르게 일대일 맞춤제작이고, 연금술과 마법을 융합한 동력원을 사용했기 때문에 원본을 재현하는 능력도 훨씬 높아졌지. 마침 임상실험이 필요한 참이거든. 싸게 해줄게.”

“아니 그러니까 인형가방이 뭐하는 건데요.” 

“뭐야. 인형가방 없어?”

그렇게 물어보는 휴의 시선에는 진한 동정이 어려 있었다. 울컥한 밀레시안은 볼멘소리를 냈다. 

“나쁜 건 빈 통장이지 내가 아니거든요?”

“어…… 뭐, 그래. 없을 수도 있지. 그럼 이참에 하나 마련해.”

밀레시안을 쳐다보는 검은 눈에 잠시 미묘한 웃음이 어린 것 같지만, 못 본 걸로 하자. 대신 인형공방 사장님은 보기 드문 친절 모드로 돌입했다. 그는 얌전히 앉아있던 미완성 인형을 데려와서 보여주며 차근차근 설명을 시작했다. 

“인형가방은 말 그대로 인형이면서 가방 역할도 겸하는 획기적인 아이템이야. 데리고 다니면서 자잘한 물건들을 맡길 수도 있고, 소환하면 바쁜 주인을 대신해서 골드와 아이템을 모아주기도 하지. 특히 이 T모델은 골드와 장비 줍기에 특화되어 있어. 구매자들이 보내준 후기를 읽어보면, 주인이 사냥이나 채집하느라 물건을 주울 시간이 없을 때, 필드에 풀어놓으면 뽈뽈 뛰어다니면서 가방을 채워오는 게 너무 귀엽다고 하더군. 최소 기능만 탑재한 초기 모델이 그 정도였으니까, 대화 기능과 감정 기능을 추가한 지금은 얼마나 유용할지 상상이 가지?”

새로 개발한 모델을 들고서 줄줄 장점을 읊기 시작한 휴의 모습은 말 그대로 장인…… 아니, 뿌듯한 창조주였다. 더 듣다가는 정말로 강매 당한다. 위험을 감지한 밀레시안은 지금이야말로 도망칠 마지막 기회라고 인지했다. 그러나 

“어딜 가.”

피실험자를 구하고 말겠다는 장인의 의지가 좀 더 빨랐다. 조소를 업으로 삼은 사장님은 손힘이 장난이 아니었다. 붙잡힌 실험쥐 신세가 된 밀레시안은 인상을 잔뜩 구기며 투덜댔다. 

“아이템 정도는 직접 주우라고 해요. 그걸 못 주워서 인형한테 시켜? 허참, 게으른 사람들이네.” 

“……그냥 혼자 줍기 힘들만큼 골드를 터뜨려본 적이 없다고 말해. 보기 불쌍하니까.”

“전 그런 속물적인 인간 아니거든요?” 

시뻘개진 얼굴로 애써 변명하는 밀레시안은 제쳐두고, 휴 사장님은 밀레시안의 정수리에서 머리카락 하나를 뽑아냈다. 

“아얏!”

“자, 하나는 됐고. 모델이 되어줄 사람 누구 있어?”

“함부로 머리는 왜 뽑아요?! 이거 혹시 흑마술 아냐? 강령술?!” 

“말하기 싫으면 내가 고르고. 어디보자…… 아, 여기 마침 한 가닥 있네.” 

재빠른 휴의 손길이 닿은 곳은 밀레시안의 가슴팍이었다. 연녹색 정장 위에 뜬금없는 금발 한 가닥이 붙어 있었다. 밀레시안의 염색 한 번 안 한 순수 흑발에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화려한 색이었다. 

“자, 잠깐만요”

“굳이 출처는 묻지 않을게.”

휴도 굳이 고객의 사생활까지 알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는 모른 체 눈을 감아주며 머리카락만 쏙 가져왔다. 준비된 용액에 두 개의 가닥을 집어넣고 기다린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밀레시안의 검은 머리카락과 정체 모를 금색의 머리카락이 용액에 사르르 녹으면서 영롱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문외한이 봐도 심상치 않아 보이는 현상이 일어나자, 밀레시안은 절망적으로 울부짖었다.  

“으아아 잠깐만요 뭔데 이거”

“가만 있어봐. 이렇게 잘 섞인 용해제를 인형에 뿌리고 주문을 외우면—”

“흑마술이잖아요!”

휴는 밀레시안의 딴지를 무시한 채 매뉴얼대로 주문을 외웠다. 빛나는 용액을 뒤집어쓴 인형에서 연기가 풀풀 나기 시작하더니, 곧 폭죽 터지는 소리와 함께 한바탕 작은 버섯구름이 일었다. 

“흑마술이라니. 내 인형에 대한 모독이다. 자, 이렇게 완벽한 인형 본 적 있어?”

연기가 걷히고 드러난 것은 자그마한 이등신짜리 인형이었다. 높이는 무릎만큼 되고 동그랗고 커다란 가분수의 머리에다, 짤뚱한 몸통이 보호본능과 애착을 끌어내는 작고 귀여운 인형. 작동을 시작한 인형은 졸린 듯 눈을 깜빡이더니, 예쁜 물색 눈으로 인형장인과 손님을 쳐다봤다. 

“파?”

곱슬거리는 금발머리를 갸우뚱 기울이며 첫 마디를 내뱉는 작은 천사는 분명 ‘그’였다. 

“가르친 적 없는데 벌써 말을 하다니, 역시 역작이다!”

옆에서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휴를 밀레시안은 한 대 후려치고 싶었다. 사고를 쳐도 대단한 사고를 쳤다. 그는 다시 한 번 용기를 내어 갓 태어난 쪼끄만 인형—누구를 똑 닮은 인형을 내려다봤다. 

아무리 봐도 걔다. 울고 싶어졌다.

사람 속도 모르는 휴가 옆에서 쓸데없는 말로 거들었다.  

“어때?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안성맞춤, 그야말로 너를 위해 태어난 인형가방이다. 펫과는 비교도 안 되지. 자식처럼 생각하고 기르도록 해.” 

어떤 미친놈이 애인을 인형으로 만들어서 가지고 다니는데? 들키는 날엔 변태로 개명 확정이다.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밀레시안은 전심전력을 다해 고개를 붕붕 저었다. 

“안 돼요. 못 데려가요. 얠 (기사단에) 어떻게 데려가요!”

새파랗게 질려서 손을 내젓는 그를 본 휴의 눈썹이 일그러졌다. 장인은 갓 태어난 뜨끈뜨끈한 인형을 소중히 받쳐 안으며 되물었다. 

“뭐? 그럼 이 작은 애를 버리고 가겠다는 소리야?”

“그러니까 누가 먼저 제멋대로 만들래요?”

“무슨 소리야? 만든 건 너랑 네 애인 머리카락”

“으아아아아아” 

괴성을 발사하며 입을 틀어막는 밀레시안 때문에 휴는 말을 잇지 못했다. 심기불편해진 장인이 째려보든 말든, 밀레시안은 처참한 심경일 뿐이었다.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오만상을 다 짓고 있는 그를 보고, 휴가 참았던 한숨을 내쉬었다. 장인은 자기 손으로 눈을 띄운 작은 인형의 뒤통수를 안쓰럽게 쓰다듬었다. ‘파?’ 인형이 걱정하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소리를 냈다. 

“안타깝군. 맞춤 제작한 인형가방은 술식 자체에 소환자의 이름이 새겨지기 때문에 파양할 수도 없는데. 일단은 창고에 보관해둬야 하나. 후…… 폐기 날짜는……”

“잠깐만요!”

예상치 못한 음산한 단어가 등장하자 밀레시안은 화들짝 놀랐다. 아무것도 모른 채 휴의 품 안에 고이 안겨 있던 인형이 큰 소리에 놀라서 버둥거렸다. ‘제발 그렇게 똑 닮은 얼굴로 귀여운 짓 하지 말아줘.’ 밀레시안은 보이지 않는 눈물을 흘리며 휴를 다그쳤다. 

“폐기라니 어떻게 그런 짓을? 역작이라면서요. 장인이라면서요?”

“하지만 주인한테 버림받은 인형은 아무 보람도 없는 걸. 성장하지도 못하고 세상의 보람을 알지도 못하고, 의미 없이 진열장에 앉아서 영원을 보내야 한다니. 잔인하잖아.” 

휴는 창조주라고는 믿기지 않을 덤덤한 어조로 말했다. 듣고 있던 밀레시안도 덩달아 무거운 책임감에 숨이 짓눌리는 듯했다. 

“그런……” 

“……”

“……”

“휴 씨……”

“……”

‘방법이 없는 건가요?’ 쓰라린 목소리가 물었다. 동요하는 밀레시안에게 장인은 조용히 손가락 네 개를 내밀었다. 

“?”

“사백 만.”

“??”

“사백 만 골드. 시제품 할인 들어갔어.”

“!!!”

공방에 소리 없는 고함이 아우성친다. 경악한 밀레시안은 문제의 본질을 짚어야 한단 것도 까먹고서 잔인한 강매 요구에 항의했다. 

“지금 통장 잔고가 이백 만인데!”

“무이자 육 개월 할부 해줄게.” 

선심 쓰듯 제안하는 휴의 눈빛은 이미 승리자의 눈빛이었다. 더 이상 돈이 문제가 아니란 건 두 사람 모두 느끼고 있었다. 자기를 위해 태어난 작은 인형이 기다리고 있다는데, 차갑게 외면할 밀레시안은 없다. 하물며 그 모델이 소중한 사람이라면. 

패색이 짙어진 밀레시안은 결국 눈물을 머금으며 계좌를 입력하고 말았다. 곧 어스킨 은행의 직불 수표로 거래가 완료되었고, 휴는 품에 안고 있던 작은 인형을 밀레시안에게 넘겨주었다.

“헉, 너무 가벼워요!” 

“조심해. 아직 태어난지 얼마 안 돼서 말랑하니까. 엉덩이를 받쳐 안아야 된다고.” 

아직 인형을 안는 법에 익숙하지 않은 밀레시안에게 휴가 조언했다. 그는 제 팔뚝 반쪽만한 인형을 안고서 쩔쩔매고 있는 밀레시안을 내버려둔 채, 선반의 진열장을 뒤져 설탕 과자 꾸러미 몇 개를 꺼냈다. 

“이건 서비스. 인형가방은 기본적으로 마법으로 동력을 충전하기 때문에 음식을 먹을 필요는 없어. 그렇지만 단 걸 좋아하니까 착한 일을 할 때마다 간식으로 주도록.”

밀레시안은 한 팔로는 인형을 안고 한 팔로 꾸러미를 받느라 잠시 휘청거렸다. 휴가 그런 그를 가게 밖으로 안내하며 덧붙였다. 

“그리고 인형의 이름은 모델이 된 사람을 따른다. 따로 별명을 붙일 수는 있겠지만 이왕이면 가지고 태어난 이름으로 불러주는 건 어떨까?”

“얘 이름이 톨비쉬라고요?”

“그게 네 애인 이름이야?”

망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비밀을 흘리고 만 밀레시안은 일 초 전의 자신을 패고 싶었다. 불행 중 다행은 알반기사단이 특급기밀을 유지하고 있는 덕에 외부인인 휴는 그게 누군지 모를 거라는 사실 정도였다. 눈물을 머금고 혼란해하는 밀레시안을 보고, 휴가 피식 웃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인형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자, 톨비쉬. 널 안고 있는 이 바보가 네 주인이란다. 밀레시안과 행복한 인생을 보내렴.” 

“파?”

커다란 손이 곱슬곱슬한 머리를 쓰다듬는 순간, 톨비쉬 인형이 어리둥절 눈을 깜빡였다. 인형은 방금 전까지 안겨 있던 휴와, 새로 자기를 안고 있는 밀레시안을 번갈아 보았다. 그러더니 밀레시안의 얼굴로 고사리처럼 작은 손을 뻗으며 방긋 웃었다. 

“밀례샨—!”

어설픈 발음으로 건넨 첫 인사에 밀레시안이 괴성을 내지르며 땅을 굴렀음은 말할 필요가 없다. 말 그대로 천사처럼 사랑스러운 꼬마 인형을 찌부러트리지 않기 위해, 돌아가는 내내 일부러 팔을 꼬집어야 했다. 사백 만 골드(육 개월 무이자 할부)가 털려도, 팔뚝 가득 멍이 들어도, 인형의 미소가 모든 쓰라림을 녹였다. 


*

복작거리는 시내를 빠져나와 한적한 교외에 도착하고 나서야 톨비쉬(인형)을 품에서 내려놓을 수 있었다. 주위에 풀밖에 없으니 꼬마도 길을 잃을 염려가 없는 장소였다. 톨비쉬 인형은 땅에 내려주자 조심스레 발을 디디더니 곧장 두 다리로 섰다. 고 짧고 가느다란 작대기도 다리라고 기우뚱거리지도 않고 씩씩하게 서 있는 걸 보니까 벌써부터 심장에 과부하가 걸릴 것 같았다. 밀레시안은 너무 귀여운 나머지 방언이 나올 것만 같은 걸 참고 다시 제대로 첫 인사를 건넸다. 

“안녕, 톨비쉬. 나는 밀레시안이야. 우리 오늘부터 같이 지낼 거야. 자, 악수~”

시커먼 청년이 구깃구깃 쭈그려 앉아서 재롱 떠는 모습이라니. 보기에 과히 좋진 않겠지만, 쪽팔림을 무릅쓸 가치는 있었다. 밀레시안의 커다란 손바닥을 바라보던 꼬마 톨비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관찰하더니, 아주 깜찍한 짓을 한 것이다. 

“쟈, 악슈~”

인형은 잎새처럼 작은 손을 내밀어 밀레시안의 커다란 손바닥에 갖다 댔다. 그리고 주인을 따라하듯이 손바닥을 맞대고 위아래로 깨작깨작 흔들었다! 

“악슈~ 악슈? 악슈!” 

혀가 꼬이는지 몇 번씩 같은 단어를 반복하는데, 귀여워서 깨물어버리고 싶었다. 밀레시안이 주먹을 입에 처넣지 못한 것은 오직 톨비쉬한테 손이 붙잡혀 있어서였다. 처음 배운 악수가 마음에 들었는지, 꼬마 톨비쉬는 멈출 줄 모르고 계속 밀레시안의 맞잡은 손을 휘둘렀다. 꽃봉오리 터지듯 까르륵 울리는 웃음소리가 황홀하게 귀를 울렸다. 

사르르 녹아내린 밀레시안은 점점 하이톤이 되어가는 새된 소리로 재롱을 부렸다. 

“아유 귀여워라, 귀여운 톨비쉬! 우리 톨비쉬는 이름이 뭐지요?”

앞뒤가 맞지 않는 질문인 것 같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소한 딴지를 걸기엔 이어지는 톨비쉬의 첫 자기소개가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으니까!

“톨빗슈! 톨빗시 이름은 톨빗시임미다.”

그리고 어디서 봤는지 허리를 깊이 구부려 절을 하는데, 밀레시안은 이미 심정지 직전이었다. 모델이 된 원본 탓인지 벌써부터 의젓한 태가 나지만, 그래도 꼬마는 꼬마. 작은 톨비쉬는 신장의 반을 차지하는 커다란 머리통 덕에 무게중심을 잃고 살짝 비틀거렸다. 

“어이쿠, 조심해야지.”

밀레시안이 재빨리 붙잡아서 다시 세워주자, 인형은 잠시 상황 파악을 하듯 눈을 깜빡이다가, 곧 밀레의 팔을 꼭 붙들고 방싯거렸다. 꽃잎처럼 조그마한 입술이 오물거리며 와르르 웃음을 쏟아낸다.   

“고마어요, 밀레님!”

‘미친’

밀레시안은 혀를 깨물었다. 3mm 정도는 진짜로 깨문 것 같다.  

미쳤다. 이건 진짜 미쳤다. 어떻게 이렇게 귀여울 수 있지? 숨 쉬는 것 하나, 발을 까딱이는 몸짓 하나까지 너무너무 사랑스러워서 티르 코네일을 뿌수고 싶었다. 사람이 너무 귀여운 걸 보면 몸에서 흥분하지 말라고 일부러 파괴욕구를 조장하는 호르몬을 내보낸다더니, 진짜였다. 이젠 휴가 대체 무슨 생물을 만들어낸 건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흑마술이라고 욕해서 죄송합니다, 사장님. 삔 건 제 눈이었네요. 앞으로 하루 세 번 이멘 마하 쪽으로 절을 올리겠습니다. 

주책스럽게 눈물이 찔끔 고일 것 같았다. 원래 사람이 뛰어난 경이를 만나면 감정이 과잉되는 법이다. 호들갑이 과잉된 밀레시안도 그러므로 마음껏 욕망을 표출했다. 안아주기, 정수리 냄새 맡기, 배방구하기, 모찌처럼 말랑말랑한 볼 찔러보기 등등 여러 가지 욕망이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사려 깊은 사장님께서 품에 찔러주신 간식 꾸러미를 제일 먼저 꺼냈다. 밀레시안은 별 모양의 설탕을 한 조각 꺼내서 톨비쉬한테 주기로 했다. 따로 이유는 없다. 톨비쉬가 너무 귀여우니까. 작고 귀여운 아이는 작고 귀여운 것만으로도 선물을 받을 권리가 있다. 그는 흐물흐물 풀어진 얼굴로 바보처럼 웃으며 설탕을 건넸다.   

“톨비쉬, 설탕 과자 먹을래? 이것 봐, 별 모양이다~ 이야~”

추임새를 넣어가며 간식을 내밀자, 톨비쉬가 말똥거리며 별사탕과 밀레시안을 번갈아 봤다. 뾰족뾰족하고 아기자기한 사탕이 낯선지 한참을 쳐다보다가, 밀레시안의 응원을 받아 조심스레 받아든다. 그리고 꼬물꼬물 입에 가져간 순간, 

“!”

안 그래도 커다란 눈이 번쩍 뜨인다. 처음 단맛을 맛봐서 미묘하게 찌그러졌던 눈이 순식간에 전등만해지고, 톨비쉬는 설탕이 녹아 끈적거리는 손을 붕붕 흔들며 외쳤다. 

“마싯서요!”

“이건 설탕이야. 휴 사장님이 선물로 주셨어.”

“설탕 마싰서요! 엄청 맛있따! 밀레님 감사함미다!”

어쩜 이렇게 예의바를 수가. 키운 적은 없지만, 보람이 넘쳐흐르고 감동이 가슴을 스며서 심장에 홍수가 날 것만 같았다. 

그렇게 밀레시안이 ‘휴 사장님 많이 버십쇼’를 복창하는 사이, 로브 틈으로 느슨해진 돈 주머니에서 금화 한 닢이 스르르 떨어졌다. 톨비쉬의 눈높이에 맞게 쭈그려 앉은 자세로 난리를 떨던 밀레시안은 미처 눈치 채지 못했다. 대신 맛있게 설탕을 먹던 중인 인형의 시선이 따라붙었다. 톨비쉬는 한 닢, 정말 딱 한 닢 떨어졌을 뿐인 노란 동전을 발견하자마자 잠자리처럼 빠르게 움직였다. 작은 몸으로 번개처럼 날아서 동전을 줍더니 조심스레 먼지를 털더니 밀레시안에게 다가왔다. 인형은 길 잃은 골드 한 닢을 다시 주머니에 잘 넣어주며 말했다. 

“이거 밀레님 꺼.”

주머니를 토닥이며 배시시 웃는 모습을 본 순간, 밀레시안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톨비쉬를 번쩍 들어올리고 말았다. 겨우 봇짐만한 크기의 인형을 두 팔로 번쩍 끌어안고서 뽀송한 볼에 마구 뺨을 비볐다. 망개떡처럼 말랑말랑한 볼이 살아있는 어린아이처럼 따뜻했다. 톨비쉬는 뭐가 즐거운지 방싯 방싯 웃으며 소리를 질렀다. 

“간지러워!”

“어떡해, 우리 톨비쉬 진짜 천잰가 봐.” 

“천쟤?”

되묻는 톨비쉬를 밀레시안은 더욱 꽉 끌어안고서 머리를 부비적거렸다. 

“아휴, 아빤 가르친 적도 없는데 아이템을 다 줍고, 그럼 천재만재지! 이러다 던전도 돌겠어!”

“던젼?”

“뼈다귀들이랑 난쟁이들 있는 그런 데가 있어요. 거기 한 바퀴 돌면 아빠가 돈을 벌고 아빠가 돈을 벌면 그걸로 우리 톨비쉬한테도 맛있는 걸 사주고 (이하생략)”

아직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톨비쉬의 작은 지식에는 어려운 이야기들뿐이지만, 단 하나만은 또렷하게 머릿속에 박혀들었다. 두서없는 밀레시안의 흐느낌 속에서도 톨비쉬 인형은 용케 자기의 소명, 태어난 이유를 알아듣고서 두 팔을 번쩍 벌렸다. 꼬마는 씩씩하게 주먹을 쥐며 외쳤다. 

“골드 줍는 거, 내 일이에오! 도와쥴게요 밀레님!”

총명한 머리에 용감하고 씩씩한 패기까지…… 역시 우리 애는 타라 왕립 대학을 보내야 해……! 밀레시안은 뿌듯함에 벅찬 나머지, 지갑(육 개월 할부)으로 낳은 자식을 끌어안고서 둥기둥기 춤을 췄다. 

“그래그래, 우리 같이 소풍도 가고 뼈다귀 멍멍이들도 보고 골드도 줍고 그래요. 우리 톨벼는 던전을 휩쓸고 다닐 거야.”

“웅! 맡겨뎌요!”

실제로 며칠 후 함께 던전에 간 두 사람은, 할부 대금을 갚아야 하는 밀레시안이 열심히 포워르를 때려잡고 골드도 줍는 동안 (작고 소중한) 톨비쉬는 설탕과자를 오도독 씹으며 뒤에서 응원만 하게 되지만, 이건 별로 중요한 사안이 아니다. 상술했듯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있다면, 그건 오직 귀여움 뿐이니까. 파워 오브 카와이.  


*

밀레시안의 인생은 톨비쉬 인형을 만나기 전과 만나기 후로 나뉜다. 오해하지 마시라. 그 전의 삶이 암울했다든가, 혹은 진퉁 톨비쉬와의 만남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는 뜻이 아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엘베드 조 조장과 그는 일단은 서로 마음을 고백한 사이이다.) 위 표현은 좀 더 내리사랑 같은 감정, 그중에서도 어린 자식 또는 가족이나 다름없는 반려동물에게 느끼는 감정과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저 사람이 즐거워하면 그걸로 됐단 마음이 들고, 어스킨 뱅크의 계좌 잔고가 나날이 깎여나가도 생각나고 눈에 띄는 좋은 것은 다 안겨주고 싶은 기분. 짧게 말해서 ‘눈에 넣어도 안 아픈 귀여운 내 새끼’같단 거다. 

꼬마 톨비쉬의 어디가 그렇게 귀엽냐고? 밀레시안은 즉각 대답을 쏟아낸다. 다 귀엽다. 전부 다 귀엽다. 밀레시안과 조금만 떨어질라치면, 골드를 줍던 것도 멈추고 헐레벌떡 뛰어오는 모습도 귀엽고, 이때 가분수라서 팔을 좌우로 기우뚱 기우뚱 파닥이며 달려오는 것도 귀엽다. 가만히 서 있으면 혼자서 신나게 주위를 뛰어다니는 것도 귀엽고, 밀레시안이 풀밭에 앉아서 휴식을 취하면 저도 따라하겠답시고 쬐끄만 하체로 양반다리를 하고서 같이 노닥거리려는 마음 씀씀이도 귀엽다. 골드를 주울 때는 꼭 한 번에 한 뭉치씩만 줍는다. 골드 한 번 줍고, 밀레 한 번 보고, 다시 골드 수집하러 가고, 또 밀레 보러 달려오고…… 한 닢 한 닢 정성스레 골드를 주우며 밀레시안한테 자랑하러 오는 톨비쉬를 볼 때마다 밀레시안은 타라 왕성을 부수고 싶어졌다. (티르 코네일은 진즉에 부수고 촌장님께 배상금을 납부했다.) 

물론 평화로운 밀레시안과 톨비쉬 인형의 관계에 태클을 거는 이들도 있다. 어느 동료 밀레시안은 한 번에 한 뭉치씩만 골드를 주워오는 톨비쉬 인형을 보고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아니, 한 번 움직인 김에 쭉 한 바퀴 돌아서 주우면 되잖아? 왜 주먹도 낟알 같은 게 한 주먹씩만 주워오는 거야? 애 이름이 톨‘벼’야?” 

그러면 밀레시안은 그 동료가 아무리 막역한 사이라 하더라도 성을 내며 반박하곤 했다. 

“아니, 그럼 이렇게 자그맣고 연약한 애가 어떻게 골드를 두 뭉치나 옮긴단 말이에욧?!”

“우리 집 인형가방은 한 번에 세 뭉치씩 척척 잘만 들고 오던데?”

다른 동료가 훈수를 두면 눈을 부릅뜨고 그들의 편협한 잣대를 비판해주었다. 

“아, 사람마다 재주도 다르고 속도도 다르듯이 인형도 다 다른 거지. 젊은 나이(누적 300세)에 벌써 꼰대 마인드가 오면 더 늙어선 어떡하려고들 그래?” 

밀레시안의 호통을 들은 동료들은 일심동체로 생각했다. 

‘인형가방은 마법으로 주인한테 한 번에 물건 보낼 수 있잖아……?’ 

그러나 차마 말로 꺼내진 못했다. 어차피 눈에 콩깍지가 쓰인 주인(부모)한테는 들리지 않을 것이 분명하니까. 동료들은 그저 말다툼 하는 자기들을 말똥말똥 동그란 눈으로 올려다보고 있는 키 작은 인형에게 별명이나 붙여주고 말았다. 주먹이 벼 낟알처럼 작고 아기자기하다고 해서 톨‘벼’. 음성학적으로도 입에 착착 붙는 이름이었다. 다행히 밀레시안은 맘에 들어 했고 밀레시안이 좋아하니 인형도 같이 기뻐했다. 

톨비쉬 인형은 소환 주기에 있어서도 다른 인형가방들과는 조금 다른 생활을 했다. 효율성을 극대화해서 인형가방을 소환하는 여타 주인들과 달리, 밀레시안은 사냥을 시작하기 전엔 꼬박꼬박 톨비쉬를 4차원의 벽 너머로 돌려보냈다. 그러다가 전투가 끝나면 그때 다시 톨비쉬를 데려온다. 그렇게 소환과 해제를 반복하는 이유가 있는지, 너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하진 않는지 묻자 밀레가 경악하며 말하기를,

“사냥 중일 때 풀어놨다가 우리 톨비쉬가 다치기라도 하면 어떡해?!” 

인형가방은 특별한 술식으로 보호되기 때문에 몹들 사이를 돌아다녀도 쉽게 인식되지 않는다고 설명해봤지만, 밀레시안은 막무가내였다. 게다가 밀레시안의 톨비쉬 인형은 특히나 더 조그맣고 아기자기해서 눈에 잘 띄지도 않았다. (가끔은 밀레시안의 과보호가 이해가 갈 만큼 쪼끄맸다. 서 있으면 가끔 존재를 잊어버릴 정도였으니까. 이럴 때는 톨비쉬 인형의 얼굴을 찾을 것이 아니라 정수리 가마를 보고 위치를 찾아야 했다.) 이런 나름의 이유들 때문에, 어떤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설득 앞에서도 밀레시안은 흔들리지 않았다.  

“스치는 것도 안 돼! 절대 안 된다구. 우리 톨벼는 안전이 최고다!”

그렇다면 사냥 중에 주인을 대신해서 골드를 줍지 않고, 각종 축복을 걸어주지도 않는다면 던전에서 톨비쉬 인형은 무엇을 할까? 열심히 응원을 했다. 밀레시안이 몹을 쓸어버리는 동안 밀레시안이 찾아준 안전한 곳에 앉아서 귀엽고 깜찍하게 응원을 했다. 밀레시안의 관심을 받아 빠르게 성장 중인 톨비쉬는 어디서 보고 왔는지 율동까지 곁들이면서 응원가를 불렀다. 

“밀례시안님, 힘내요! 힘 냬라 힘!”

조막만한 주먹으로 파이팅을 그리며 방싯방싯 웃는 톨비쉬를 보면 열심히 쌍검을 휘두르느라 쥐가 난 팔뚝의 고통도 사르르 녹았다. 그렇게 내 새끼의 응원을 받아 힘이 난 밀레시안이 파죽지세로 포워르를 학살하고 나면, 비로소 톨비쉬가 와서 아이템을 주웠다. 혼자 줍는 건 아니고 밀레시안이랑 같이 주웠다. 사실 밀레시안이 거의 다 줍곤 했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거대한 자이언트 밀레시안이 있는데 직접 줍지 않으면 누가 주우리. 자기 체구의 십 분의 일 정도밖에 안 되는 작고 소중한 생물에게 그런 중노동을 시키는 것은 인간의 도리가 아니라는 게 우리 밀레시안의 지론이었다. 

이렇게 해서 밀레시안과 톨비쉬 인형의 생활은 지극히 무난하고 평화롭게 흘러가는 참이었다. 변화가 일어난 건 아브네아 언덕에서 열심히 사냥을 마치고 돌아가던 어느 오후였다. 밀레시안은 멜로디쇼크를 수련하기 위해 그날 하루 종일 열심히 늑대와 고원 멧돼지를 때려잡았다. (악기로 상대를 후려패는 기술이라니, 이런 발상을 떠올리려면 인성이 몇 바퀴나 돌아야 하는 걸까?) 원하던 목표를 달성한 밀레시안은 발걸음도 가벼웁게 돌아갈 채비를 꾸렸다. 늑대와 고원멧돼지는 들고 다니는 금화가 거의 없기 때문에 톨비쉬 인형이 따로 동전을 주우러 다닐 필요는 없었다. 

“오늘 수련 끝! 톨벼! 집에 가자!”

“웅! 집에 가쟈!”

“오늘 저녁은 뭘 먹을까?”

“난 설탕과쟈!”

만약 누군가가 ‘원래 인형가방은 식사를 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 ‘인형가방의 섬세한 위장이 소화할 수 있는 음식은 어차피 설탕과자 뿐이다’라며 딴지를 건다면 밀레시안은 발을 뻥 차주었을 것이다. 식사의 목적에는 칼로리를 섭취하는 것 말고도 얼마나 풍부하고 다양한 기쁨이 숨어있기 마련이다. 함께 메뉴를 고르고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밥을 먹고 있단 느낌만으로도 우리는 활력을 얻는다. 요컨대 기분이라는 거다. 식사의 목적이 단순한 에너지 섭취에만 있다면, 애초에 음식물을 섭취하지 않아도 생명에 지장이 없는 밀레시안들은 요리도, 캠프파이어도 할 필요가 없다. 그러니 인형가방이라고 해서 함께 식사하는 기쁨에서 제외될 이유가 없다. 

이런 상념들에 취해서 의식 없이 발을 옮긴 탓일까? 밀레시안은 자기의 다리가 너무 긴 반면 톨비쉬 인형의 다리는 너무 짧다는 사실을 순간적으로 망각하고 말았다. 황새처럼 긴 다리가 가위처럼 쩍쩍 벌어지며 거침없이 걷는 동안, 인형의 참새처럼 아기자기한 다리가 그 보폭을 따라가지 못하고 뒤처졌다. 톨비쉬는 톨비쉬 나름대로 밀레시안을 놓치지 않기 위해 열심히 걸어봤지만, 역부족이었다. 경보 선수처럼 헐레벌떡 다리를 놀려봐도 밀레시안의 그림자는 점점 멀어져만 갔다. 한 번 생각에 빠지면 거기에 빠져서 주변을 잊어버리는 성향이 있는 밀레시안은 헥헥대는 인형의 숨소리를 듣지 못했고, 그렇게 톨비쉬는 밀레시안을 놓치고 말았다. 해가 뉘엿뉘엿한 아브네아 언덕에 작은 인형가방이 혼자 남게 되었다. 

미아가 된 채로 할딱거리고 있는 톨비쉬 인형을 발견한 사람은 지나가던 알반 기사였다. 금발 고수머리가 특징적인 그 기사는 길을 잃고 혼자 같은 자리를 뱅뱅 돌고 있는 인형가방을 발견하고서 발걸음을 멈췄다. 장신인 기사는 몸소 허리를 굽혀 발을 동동거리고 있는 인형을 두 손으로 번쩍 들어올렸다. 

“길을 잃었어?”

갑옷을 입고 있어서 더욱 건장한 체격 안에 폭 안기자, 안 그래도 작은 톨벼는 더욱 작고 안쓰러워 보였다. 갑자기 허공에 들린 인형은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지만,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눈 깜짝할 새에 보호자를 잃어버리고서 어리둥절 방황하는 모습이 솔직히 조금 어수룩해 보였다. 

“이름이 뭐지?”

“난 톨빗쉬야!”

인형을 안고 있던 (인간) 톨비쉬는 순간 손에 힘이 풀릴 뻔했다. 

“앗, 놓치면 안 대! 톨벼 떨어트리면 안 대!”

바닥에 추락할까봐 겁을 먹은 인형이 (진퉁) 톨비쉬의 가슴팍에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새끼 코알라처럼 보호자의 어깨를 꽁꽁 얽어매는데, 저 작은 팔 어디에서 장사 같은 힘이 나오는지 좀 신기할 경지였다. 덕분에 허리를 삐끗할 뻔한 (진퉁) 톨비쉬는 하체에 힘을 주어 버틴 다음, 제게 매달린 인형가방을 다시 한 번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강아지털처럼 복슬복슬한 곱슬머리, 잘 익은 벼처럼 황금으로 빛나는 색, 누군가가 한 땀 한 땀 손수 지어 입힌 듯한 알반 기사단의 제복. 그리고 마찬가지로 수제품인 엘베드 조의 해골문양까지. 인형의 이름을 들었을 때부터 의심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역시 누군가를 닮았다. 현재 이 미아를 발견해 임시보호하고 있는 누군가를. 

생각을 정리한 톨비쉬는 들리지 않도록 한숨을 삼킨 뒤, 다시 인형에게 물었다. 

“네 보호자는 어디 있지?”

“보호쟈?”

익숙하지 않은 단어를 들은 인형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주인을 말하는 거야. 길을 잃기 전에 누구를 따라가고 있었어?”

“아! 밀례 님! 밀례시안 님이랑 같이 가고 있었는데, 밀례 님이 갑자기 사라져버렸어. 너무 빨리 걸어가 버려서 못 쪼차 갔어……”

인형은 원본을 닮아 도톰한 눈썹을 팔(八)자로 늘어트리며 호소했다. 다리가 짧아서 못 쫓아갔다는 고백을 듣자, 톨비쉬는 어쩐지 탐탁찮은 기분이 되었다. 아무리 불완전한 반(半)생물이라지만 그래도 몇 달은 동고동락했을 주인을 놓쳐버리고 혼자 낑낑대다니. 하물며 가족처럼 아끼는 주인이라면 더욱 더 그렇다. 보통 다른 인형가방들은 위치측정 기능이 탑재되어 있다는 사실까지 기억하고 나니까 더욱 이 인형이 모자라 보였다. 

측은한 한편 답답한 마음이 된 기사는 한 번 더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어 설명해주었다. 

“에린에 밀레시안은 수백 만이야. 그중에서 정확히 어떤 밀레시안을 말하는 거지? 주인 이름을 알려주면 데려다주도록 하마.” 

“으응? 밀례시안 님은 밀례시안 님인데…… 난 맨날 밀례샨 님이라구 불렀는데에……”

인형이 몹시 당황스러워하며 대답했다. 배배 꼬이는 몸과 기어들어가는 말소리를 보아하니 굳이 뒷사정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하고 많은 밀레시안 중에서 단 한 명만을 콕 집어 밀레시안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인간 톨비쉬의 버릇이기도 했다. 어떤 경위로 이 인형가방이 모델의 외양뿐만 아니라 습관까지 모방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주인이 누구인지는 대강 짐작이 갔다. 톨비쉬는 전보다 약간 기가 죽은 인형을 다시 한 번 품에 고쳐 안으며 말했다. 

“가자. 네 주인이 누구인지는 대충 짐작이 가는구나. 데려다 줄 테니 죽을상은 그만 하렴.”

“웅. 고마어요, 기샤님.”

인형이 꾸벅 배꼽인사를 하며 대답했다. 적어도 예의범절은 제대로 익힌 모양이었다. 톨비쉬는 한 마디 더하려던 것을 멈추고 그만 출발하기로 했다. 어차피 아이는 어른을 보고 배우는 법이다. 충고할 것이 있다면 보호자에게 직접 하는 편이 낫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비록 그 보호자가 자신과 몹시 사적으로 연관된 관계라고 하더라도. 아무튼 애인이기 때문에 좀 더 편한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쓴 소리도 있다. 

이 미터에 육박하는 기사와, 기사의 십 분의 일 정도 되는 꼬마 인형은 어색한 침묵 속에서 나란히 언덕을 내려갔다. 아브네아를 지나 던바튼 서쪽 평원으로 접어들 때 즈음이었다. 한 모험가와 인형가방이 곰을 사냥하면서 한 편에선 흰거미를 모아 거미줄을 채집하고 있었다. 주인이 좌우를 바삐 뛰어다니며 사냥과 생산에 전념하는 동안, 그 아래서는 분홍머리의 인형가방이 능숙하게 돌아다니며 흰거미들이 떨어트리는 거미줄을 수집하고, 또 가끔씩 곰이 금화를 떨어트리면 그 금화도 수집했다. 제 몸보다 몇 배는 커다란 생물들 사이를 오가며 근면성실하게 일하는 인형은 몹시 노련해 보였다. 크리스텔 사제를 닮은 그 인형가방은 아이템으로 가득 찬 주머니를 주인에게 보여주더니 몹시 자랑스럽게 웃었다. 

“와, 정말 많이 모아왔네! 고마워, 크리스텔. 네 덕분에 오늘도 마감을 맞출 수 있겠어.” 

방직 도구를 든 주인은 환한 미소로 칭찬했다. 그의 감사인사를 받은 크리스텔 인형도 너무나 행복해 보였다. 

두 명의 톨비쉬 모두 그 장면을 목격했다. 인간 톨비쉬는 사이좋은 주인과 인형을 볼 때 누구나 느낄 법한 단순한 (그리고 약간은 무관심한) 흐뭇함을 느꼈고, 인형 톨비쉬는 조금 눈이 커졌다. 톨벼는 자길 안고 있는 인간의 옷자락을 콕콕 잡아당겼다. 

“다른 인형가방은 거미쥴도 쥬울 수 이써?”

“그건 인형마다 다르겠지. 보통 금화는 다들 수집할 수 있고, 특기로 주울 수 있는 아이템들이 저마다 있다고 하더구나.” 

톨벼는 자기가 골드 말고 뭘 더 주울 수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별로 떠오르는 게 없었다. 화살이나 나뭇가지 정도? 그렇지만 톨벼의 밀레 님은 검과 체인을 쓰기 때문에 화살도, 나뭇가지도 필요하지 않았다. 톨벼는 다시 크리스텔 인형가방이 들고 있던 가득 채운 주머니를 떠올려보았다. 조금 불안해진 톨벼는 다시 한 번 기사에게 물었다. 

“저기…… 저기이…… 금화는 몇 닢씩 주워야 햬?”

“금화? 글쎄, 보통 천 단위로 집는 것 같은데. 보통은 손이나 주머니에 쥐어보아서 묵직할 만큼, 뭉치로 계산하지.” 

대답을 듣자 톨벼의 동공이 몹시 심하게 흔들렸다. 톨비쉬는 의례적으로 물어보았다. 

“넌 평소에 얼마씩 줍는데?”

“……한 니잎……”

개미만한 목소리가 대답했다. 톨비쉬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다가, 겨우 대답했다. 

“음, 조금…… 특별하구나.”

인형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기사의 품에 안겨 주인님에게 데려다 줄 때까지 침묵을 고수했다. 마침 밀레시안이 자리를 비웠기 때문에 톨비쉬는 밀레시안의 동료에게 대신 인형을 부탁했다. 기사단에서 급히 자신을 찾는단 편지가 날아와서 어쩔 수 없었다. 던바튼 광장에 낯선 어른 곁에 고개를 숙이고 서 있는 인형이 조금 신경 쓰였지만, 더 이상 말을 걸 틈이 없었다. 그는 고개 숙인 인형의 머리를 한 번 다독여주며 짧게 말했다. 

“너도 연습하면 되지.” 

인형은 새 부리처럼 작은 입술을 꼬물거리다가, 새로운 임시 보호자의 그림자 속으로 숨어버렸다. 옆으로 돌리는 시선이 부쩍 어두웠다. 톨비쉬로서도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그만 발걸음을 돌렸다. 

이상이 톨비쉬 인형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부끄러움이란 감정을 느끼게 된 경위다. 남과 비교하는 법을 알게 된 톨비쉬 인형은 그렇게 자기의 행동을 되돌아보는 것을 배웠고, 그 버릇은 어쩌면 양날의 검이 되어 언젠가 열등감이라는 씨앗으로 자라날지도 모른다. 그 독초를 가려내고 꽃을 길러내는 일은 이제 오롯이 그 아이의 몫이다. 걸음마를 뗀 어린 인형이 자기만의 길을 찾게 될 때까지, 우리도 곁에서 좀 더 지켜보도록 하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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