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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줄기 바람이 몰아치고 Agitata Da Due Venti

나는 어쩌다 성악곡을 듣게 됐나+몰아치는 파도의 노래

*저는 음악 전공자가 아닙니다. 이 글에 나오는 이야기들에는 오류가 있을 수 있으며, 전문성을 겸비하지도 않습니다. 개인적인 감상일 뿐입니다. 



고전 음악-그중에서도 특히 성악곡을 듣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2018년을 살아가는 평범한 대중 시민 1 로서 평소 즐겨 듣는 장르는 단연 가요, 팝송이다. 조금 더 범위를 넓혀본다고 해도 유명한 뮤지컬 넘버 정도가 전부였다. 그러던 내가 어쩌다 문화도 시대도 너무나 달라서 이질적인 성악곡을 찾아 듣게 됐느냐면, 바로 개인적인 욕심과 부러움 때문이다. 이야기는 n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 시절 5년 내내 합창 동아리에서 활동을 했다. 특별히 클래식 음악에 대한 애호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대다수의 신입생들처럼 각종 밴드 동아리의 보컬에 지원하고 싶었지만, 한눈에 봐도 난 실력이 안 됐다. 다른 지원자들의 오디션을 엿듣는 것만으로도 기가 팍 죽었다. 하는 수 없이 대안으로 찾아본 것이 합창단이었다. 내가 입학했을 적만 해도 아직 남자의 자격 합창단이  유명해지기 전이어서 각 대학의 합창 동아리는 늘 단원 부족에 시달리는 상황이었다. 음치 박치가 아니고 연습만 참가할 수 있다면 다 받아준다는 데 혹해서 첫 학기에 무작정 신청서를 냈다. 노래는 하고 싶은데 밴드부나 아카펠라부를 들어갈 실력은 안 되고, 또 합창이면 다른 사람들한테 묻혀갈 수 있으니 그럭저럭 괜찮은 대안처럼 보였다. 그렇게 합창단은 대학 생활 중에 내가 처음이자 유일하게 활동했던 동아리가 되었다. 

이렇게 별 생각 없이 들어갔는데 일단 들어가서 연습을 하고 공연을 하다 보니까 점점 솔로 욕심이 났다. 매 학기 솔리스트 오디션이 있을 때마다 참가했는데, 참 안타깝게도 나의 동기들은 모두 노래가 수준급이었다. (개중에는 소년소녀 합창단 출신이나 고등학생 때까지도 성악을 배우다가 막판에 인문계로 전향한 친구도 적지 않았다.) 일 년에 두 번씩 5년, 총 열 번을 솔로 오디션에 지원해 봤으나 나는 항상 탈락이었다. (떨어져본 장르도 정통 합창부터 가스펠, 뮤지컬 넘버, 가요까지 다양했다.)  

그때의 아쉬운 마음이 두고두고 남아서 결국은 졸업 후에 취미로 성악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처음 의도는 '발성이 부족하고 고음을 편하게 못 내니까 일단 성악 발성을 배운 다음, 그 후에 부르고 싶은 다른 장르를 부르자'였다. 다행히 레슨 선생님과의 합이 잘 맞아서 연습할 때는 주로 평소 부르고 싶었던 뮤지컬 넘버나 디즈니 노래들로 연습을 한다. (디즈니 노래 어렵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소위 '믹스 보이스'를 사용하는 뮤지컬 넘버나 디즈니 노래를 부르려니, 성악에서 말하는 발성을 병행해서 배울 필요가 있다는 거다. 호흡과 마스께라, 두성, 성대 붙이는 연습을 해야 진성을 내든 믹스 보이스를 내든 편하게 노래하는 것이 가능해지니까. 결국 취향은 안 맞지만 (아직도 들을 때마다 존다) 초보 입시생들이 부른다는 이탈리아 가곡을 하나씩 연습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닥쳤다. 

선율도 낯설고 귀에 잘 익지도 않으며 느리기 짝이 없는 수백 개의 이탈리아 가곡, 독일 가곡을 가지고 연습에 흥미를 붙이려면 한 가지 방법밖에 없었다. 내가 직접 유투브를 뒤져서 그나마 귀에 선율이 꽂히는 노래를 찾아 가는 것. 일단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정도는 귀에서 구분이 되는 노래라야 어설프게라도 따라 부르든 말든 할 테니까. 그렇게 해서 약 일 이 년 전부터 필요에 의해 성악곡들을 찾아듣기 시작했다. 

사람은 아는 것에 흥미가 붙는다고 했던가? 놀랍게도 그 졸리기만 하던 노래들 중에서도 자꾸 찾아 듣다보니 드디어 멜로디를 기억할 수 있는 몇 곡이 생겼다. (가사는 여전히 못 외운다. 과장되고 뭉개지는 성악 딕션이 어디 알아듣기 쉬워야지.)  그리고 그 중에는 삼 사백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한 귀에 반해버리는 놀라운 곡들도 있었다. 내게는 주로 단순한 주선율의 반복과 변형이 주를 이루는 바로크 음악이 그랬다. 서양 음악에서 가수들의 기교 자랑이 최고조에 달했다는 시기의 노래이기에 직접 부르기란 아직도 요원한 일이지만, 그래도 듣고 있으면 기분이 좋았다. 악보를 따라 읽으면서 들으면 더욱 좋았다. 좋아하는 음색의 가수를 찾아 비교하며 듣는 재미도 있었다.  

불러보겠다고 찾아가는 곡마다 바로크 가곡이나 마드리갈인 것을 보고 레슨 선생님은 취향 한 번 참 확고하다고 하셨다. 나도 신기했다. 일부러 작곡 연대를 골라서 찾아간 것도 아닌데, 가져가 보면 7할이 전형적인 바로크 노래란다. 이왕 나도 몰랐던 취향이 발굴된 참에, 그리고 연이어 우울한 날이 계속되던 차에, 마침 C석 1만원(용아맥보다 싸다)에 한 러시아 소프라노의 바로크 노래를 들을 수 있는 공연을 찾아서 관람하고 왔다. 



이름은 율리아 레즈네바. 주로 로시니 노래를 부르며 엠마 커크비(Emma Kirkby)나 누리아 리알(Nuria Rial)처럼 고음악/바로크 전문 가수인 사람은 아니다. 그래도 프로니까 잘 부르겠지란 믿음을 갖고서 가뿐한 마음으로 만 원을 결제했다. 

울게 하소서(Lascia ch'io pianga), 여러분은 사랑을 아시니(Voi che sapete)처럼 90년대에 엄마 손에 이끌려 피아노 학원 다녀본 사람이라면 음악 비디오 시청을 통해 강제적으로 학습하게 되는(?) 익숙한 곡이 당연히 먼저 귀에 들어왔다. 그러던 중에 우연히 굉장한 노래를 만나게 되었다. 바로 바로크의 전형, 비발디가 작곡한 아리아 <두 줄기 바람이 몰아치고 Agitata Da Due Venti>. 해당 아리아가 등장하는 오페라 <그리젤다>는 내 식견이 짧아서 무슨 내용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일단 아리아 한 곡의 노래 가사만 두고 보자면 항해 중 폭풍우를 만나 난파 당한 선원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 선원이 사랑과 운명 사이에서 갈등하는 노래다. 그런데 선율은 장조인데다 힘차기까지 하다. 이런 아이러니가. 


Agitata da due venti
Freme l’onda in mar turbato
E ‘l nocchiero spaventato
Già s’aspatta a naufragar.
두 줄기 바람이 몰아쳐
소용돌이치는 바다에서 파도는 출렁이고
겁에 질린 선원은 이미 난파를 예감하네.

Dal dovere da l’amore
Combattuto
E ‘l nocchiero spaventato
Già s’aspatta a naufragar.
의무와 사랑이 가슴 속에서 서로 싸우네.
저항하지 못하고 굴복할 수밖에 없으니
네 절망이 시작되는구나.


그러나 가사와 선율의 이질성보다도 더욱 귀를 놀라게 한 것은 발랄하고 명쾌한 도입부 다음에 이어지는 미친 듯한 트릴과 마르카토였다. 쉼표 하나 없는 16분음표의 향연이 열 마디 이상 이어지고, 피아노로 쳐도 손이 꼬일 법한 트릴이 전체 연주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악보만 놓고 보자면 건반악기나 현악기로 연주해야 할 법한 정교한 기악곡을 놓고서 성악곡이라고 사기를 치는 것만 같은 노래였다. 바로크 성악곡은 가수들이 인간 목소리의 한계를 시험하던 '기교의 절정'이라던 말이 비로소 체감이 됐다. (마치 나가수 방영 초기에 누가 더 화려한 고음을 오래 끄느냐로 순위가 결정되던 분위기 같다.) 대학 시절 지도해주시던 지휘자 선생님의 말이 떠올랐다. '원래 기악곡 주로 쓰던 작곡가들이 성악곡에 미친 짓을 많이 해놔요. 사람 성대가 피아노 같은 줄 알거든.' 

글로 길게 설명해봤자 직접 한 번 듣느니만 못하다. 해당 공연의 가수인 율리아 레즈네바가 불렀던 버전을 먼저 삽입해본다. 



 

젊은 소프라노 답게 가늘고 맑은 목소리가 듣기에도 예쁘다. 스튜디오 녹음 버젼인 만큼 트릴 부분의 아티큘레이션(articulation: 음과 음의 구분)이 비교적 잘 들린다. 고음부에서의 가늘고 맑은 목소리가 바로 다음 순간 한 옥 타브 아래의 저음부를 낼 때는 난파 당한 사내의 목소리로 변한다. 



그러나 율리아 레즈네바의 공연을 본 다음, 궁금해서 찾아본 다른 버전들 중엔 '이게 가능해?' 싶을 정도로 충격적인  버젼이 둘 있었으니 조수미와 체칠리아 바르톨리(Cecilia Bartoli)의 버전이었다. 조수미의 기계 같은 아티큘레이션이야 이미 <밤의 여왕의 아리아>로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녀가 부른 Agitata를 듣고 있자니 모차르트는 그나마 가수를 배려한 양반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성악이든 가요든 판소리든 장르를 불문하고 노래할 때 최고의 발성법은 당연히 '말하듯이 실제 목소리로 자연스럽게 부르는 것'이라고들 한다. 흔히 성악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우어어~'하는 무겁고 둔탁한 소리는 성악이 아니다(얼핏 듣기로는 인골라ingola라고 해서 성악에서도 굉장히 안 좋은 소리로 친다더라.) 중,고,저에 상관 없이 어느 음역부를 지나가든 한 가지 색깔로, 말할 때의 목소리 그대로 부르는 조수미의 실력은 부러움을 넘어 신기할 정도다. (사실 부러워 할 깜냥도 못 낸다. 선천적으로 후두 없이 태어났다는 말도 있는 분이니.) 한 가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맑고 가는, '전형적인'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의 음색으로 기악 같은 트릴과 남성의 저음부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그녀의 목소리에 푹 빠져버렸다는 사실이다. 개인적으로는 고음보다도 저음부 A3를 단번에 치고 나올 때의 그녀의 카리스마 있는 목소리에 완전히 반해버렸다.


 


조수미의 Agitata가 한 음 한 음을 찍어내는 AI 같은 아티큘레이션과 '말하듯이 부르기'의 모범을 보여준다면, 체칠리아 바르톨리의 Agitata는 신들린 듯한 연기와 극적인 다이나믹을 보여준다. 풍성한 메조 소프라노 음색으로는 도입부 선율의 파도를 흉내내고, 고음 트릴 부분에서는 얼굴까지 다양하게 써가면서(!) 변덕스럽게 몰아치는 파도의 울렁임을 인간의 성대로 표현한다. 나는 클래식 성악에도 '기깔'이 존재한다는 걸 바르톨리의 Agitata를 듣고 처음 배웠다. 그동안 내 좁은 식견 안에서 가수의 기깔이라고 하면 모 드래곤 씨와 흠뻑쇼의 그분 같은 것만 기깔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 옆집 아주머니처럼 친근하게 생긴 메조 소프라노가 부르는 Agitata의 표정 연기는 또 다른 의미에서 '기깔'의 의미를 알려준다.

반주를 담당하는 현악이 신나게 치고 올라갈 때마다 가수 본인도 흥을 못 이겨 힘차게 주먹을 흔든다. 트릴 한 소절을 끝난 후에는 흘러내린 머리를 시원하게 뒤로 쳐내고, 마르카토에 맞춰서 몸을 덜덜덜 흔들며 다음 트릴부를 준비하는 시동을 건다. 간주가 흐르는 동안 그 선율을 타고 흐르듯이 소리 없이 따라부르고, 가장 어려운 부분을 성공시키고 난 뒤에는 자신만만하게 함빡 웃는다. 이 굵은 눈썹의 아주머니를 보고 있자면 그녀의무대를 지배하는 장악력에 혼이 나갈 것만 같다. 

바르톨리는 '아가씨처럼 예쁘고 발랄하게' 부르지도, '자애로운 어머니처럼 고고하고 정숙하게' 부르지도 않는다. 그녀는 사람들이 여성 성악가에게 부과하는 이미지는 힘차게 던져버리고서, 다만 악보가 처음 씌어지던 때의 거친 파도 소리를 목소리로 재현하는 데 충실한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은, 그 옛날 삼백 년 전 남성 카스트라토들이 인위적인 고음과 남성의 체구에서 나오는 파워를 통해 소환하려 했던 폭풍우의 부활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과거의 남성 카스트라토들이 거세와 호르몬 조절을 통해 인공적으로 파도의 노래를 만들어냈다면, 바르톨리는 여성의 타고난 높은 음역대(=여성의 자연적 신체 조건)와 끝없는 연습으로 쌓은 파워(=후천적 노력)로 그 폭풍우를 소환해낸다는 점이다. 감히 평하건대, 나는 아직까지 어떤 카운터 테너(aka남성 소프라노) 중에서도 바르톨리 만큼 자연스러우면서도 거칠게 '몰아치는(agitata)' 파도를 형상화해낸 사람을 듣지 못했다. 여기에서 같은 여성으로서 자부심을 느낀다면 나의 지나친 과대 감상일까?

그러나 (율리아 레즈네바, 조수미, 바르톨리가 보여주듯) 여성이 부르는 바로크 노래의 매력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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