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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은 처음이라서

사진의 위대한 점은 어떤 평범하고 칙칙한 기억이라도 꽤 그럴듯하게 채색해 준다는 점이다. 스모그로 칙칙한 하늘, 동행과의 갈등, 별 것 없어 보이는 흔한 여정도 사진 너머로 돌이켜보면 꽤 그럴듯해진다. 처음이어서 발 가는 대로 디뎠던 부산 여행의 기록들. 2n년 만에 처음 가본 경상도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낯선 억양조차 이질적이었다. 


스모그 가득한 하늘이어도 사진으로 찍으면 이토록 화사해 보인다.
스모그 가득한 하늘이어도 사진으로 찍으면 이토록 화사해 보인다.



벚꽃 핀 달맞이길
벚꽃 핀 달맞이길

부산은 서울보다 빠르게 꽃이 피었다. 일본인이 많이 살아서인지 아니면 단순히 조경 때문인지, 유독 벚꽃이 많다. 꽃이 아니었다면 이번 부산 여행은 스모그 투성이 뿌연 기억으로밖에 남았을지도 모른다. 

또 한 가지. 서울에선 보기 드문 동백이 부산에선 어딜 가나 지천이었다. 사진으로 남기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이다. 역시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  



달맞이길 옆의 산책로.
달맞이길 옆의 산책로.

서로 엇비슷한 대도시 사이에서 부산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역시 바다다. 관광지만 골라 다닌 탓이겠지만, 이 도시에선 어딜 가나 자꾸 바다가 나타났다. 파도도 치지 않는 봄의 바다는 넓고 고요해서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우물 같은 우울에 빠질 것만 같은 기분.



달맞이길 옆 산길에서 바라본 바다
달맞이길 옆 산길에서 바라본 바다

태평양의 옥색도, 지중해의 그린 듯한 딥 블루도 아니지만, 한국 바다의 특이한 점이 있다면 바다가 산을 끼고 있다는 점이다. 분명 산길을 걷고 있는데 옆으로 고개를 돌리면 바다가 보인다. 이것도 비경이라면 비경이다. 



달맞이길 문탠로드 옆으로 오래된 철길이 하나 있다. 미포 철길이라고도 불리고, 구 부산철로라고도 부른다. 달맞이 고개를 내려오면 바로 바다를 끼고 있는 철길이 이어지는데, 적막하고 조용해서 걷기 좋다. 산 옆에 소나무, 철길, 그리고 바다: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한국적인 경치라고 생각한다. 



광안리
광안리

그리고 횟집과 호텔 간판으로 빛나는 해변 야경도... 조국 아니면 어디서 이런 조합을 보리. 



낮의 광안대교
낮의 광안대교




UN기념공원의 늘어선 묘지들
UN기념공원의 늘어선 묘지들
터키 무명용사의 비
터키 무명용사의 비
19세 영국 병사의 비
19세 영국 병사의 비


부산에 가면 한국전쟁 중에 전사한 UN군 병사들의 묘지가 있다. 전쟁 중에 사망한 UN군 4만 명 중 2천 여 명의 시신이 이곳에 묻혀 있다. 유엔기념공원을 여정에 넣은 이유는 특별히 숭고한 의식 때문이라기보단 이곳에 가면 화려한 겹벚꽃이 무궁으로 핀다는 얘기 때문이었다. 정작 방문했을 당시엔 아직 때가 일러 겹벚꽃은 보지 못했지만, 늘어진 묘비 사이를 걷고 있으면 조금 상념에 잠기기는 했다. 너무 진부해진 표현이긴 하지만, 그때 그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무슨 심경으로 자기 고향도 아닌 멀고 먼 땅에 와서 싸운 걸까? 



총 전몰자 4만 명. 참 많이 죽었다.
총 전몰자 4만 명. 참 많이 죽었다.




영도 흰여울길 골목에 핀 조화.
영도 흰여울길 골목에 핀 조화.
전선 위를 살구 빛 장미로 장식했다.
전선 위를 살구 빛 장미로 장식했다.
영도 절영 해안산책로
영도 절영 해안산책로

부산에 가거든 감천문화마을보다도 영도의 절영해안산책로, 그리고 그 위의 흰여울길을 가보라더니 사실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찍은 사진을 통해 이미 수백 번도 더 본 흰여울길의 조화도 실제로 보니 다시 셔터를 누르게 될만큼 예뻤다. 높은 언덕과 바다는 조화도 해당화로 바꿔 놓는다.



국제시장 인형가게에서 팔던 (짜가) 포켓몬들.
국제시장 인형가게에서 팔던 (짜가) 포켓몬들.

남포동으로 내려와 씨앗호떡 하나 손에 쥐고 국제시장을 오르다보면 인형가게를 만난다. 가판대에 널린 피카츄와 푸린이 거의 완벽에 가까운 대칭을 자랑한다. 가격은 서울과 똑같은 7,000원이건만 진품 재현도는 그 값을 훨씬 웃돈다. 당연히 포케센터의 진퉁일리는 없고 복제품이다. 그래도 이렇게 진품 같은 가품이라니. 결국 푸린 한 마리 데려왔다.



보수동 헌책골목의 북카페 겸 헌책방, <우리글방>
보수동 헌책골목의 북카페 겸 헌책방, <우리글방>


국제시장을 지나 언덕을 쭉 올라가다보면 보수동 헌책골목이 나온다. 번잡한 아래쪽에 비해 조용하고 한적해서 구경하기 좋다. 근처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헌책과 잡지를 주워다가 팔기 시작한 것이 기원이라고 하는데, 일본과 가까운 탓인지 일본 원서도 많다. 일본문화개방이 되기 전인 90년대에는 일본과 가까운 부산에 각종 대중문화 원서들이 모였다고 하는데, 해외배송이 활발해진 지금도 보수동 책방골목에는 직수입한 원서들이 수북이 진열돼 있다. 



마지막은 육전 올린 부산 밀면으로. 사실 정통 부산 밀면이라기엔 진주식으로 육전을 올렸고, 면도 밀에 메밀 가루를 어느 정도 섞었다. 메밀냉면만 먹어본 서울 사람 입맛에는 아무래도 탱탱하고 느끼한 순수 밀면보다 이쪽이 더 낫다. 그렇다고 해도 버석버석하고 까슬까슬한 순수 메밀 막국수 맛에 미치진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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