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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독서의 역사 1장

알베르토 망구엘 (발췌 요약)

*개인 정리


1장. 마지막 페이지

"독서 행위의 역사"를 다루는 책의 서장이다. 저자는 독서 및 독서가에 관한 단편적 상념과 일화로 글머리를 시작한다. 

- (pp.14-15.) 독서는 악보 읽기, 기상 예측 등과 마찬가지로 "기호를 판독하고 해석하는 기교"의 일종이다. 즉, 문자라는 무의미한 기호 모음에서 해독 가능한 것들을 인지해 내는 행위다. 

이러한 해석 기교를 한 번 깨우치고 나면, 독서가는 무의식적으로 접하는 텍스트를 해석하려는 무의식적 시도를 하게 된다. 그는 의도하지 않은 사이에 읽기 행위에 집착한다. 저자가 어린 날 일단 글자 읽는 법을 깨치고 나자 "경고문, 광고문, 시내 전차표 뒷면의 깨알만한 글자, (...) 바랜 신문, 벽의 낙서, 잡지 뒷표지까지" 읽게 되었다는 회고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아마 성인이 되어 외국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해당 외국어로 쓰인 글자라면 광고나 표지판까지 모두 읽으려드는 경험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 (p.21) 이러한 기호 해독 기술(=독서)를 배우고 나면, 독서가에게는 언제 어느 곳에서든 친숙함을 느끼게 해주는 담요가 생긴 것과도 같다. "그런 떠돌이의 분위기에서 책은 나에게 영원한 안식처였으며, 잠을 자는 방이 아무리 낯설고 창밖의 소리가 상스럽게 들릴지라도 책은 어느 때든 내가 깃들 수 있는 보금자리"가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남의 집(먼 타국의 호스텔이나 민박집까지)에서 읽는 모국어 서적, 혹은 외국어라도 낯익은 책은은 큰 위안이 된다. 또 얼마나 쓸쓸한 마음을 데워주는지. 외로운 곳에서 눈에 익고 손에 익은 책은 나의 안전한 성벽, 담벼락이 된다. 

그런데 이렇게 책 속에서 편안함을 찾는 행동은 종종 경멸이나 비난, 기피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비단 전제 정권의 검열관으로부터 뿐만 아니라 교실의 급우, 가족, 책을 읽고 있지 않은 다른 동행으로부터 껄끄러운 눈초리를 받는 것인데, 당장 나만 해도 수없이 겪어본 경험이다. 사람들은 타인이 있는 곳에서 책을 읽는 것을 지루하다거나 심심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오히려 타인과 동석한 자리에서 책을 읽는 것은 긴장을 풀어서 좀 더 자연스럽게 대화에 몰입할 수 있는 기능을 할지도 모르는데. 물론, 책 속에서 진행되는 이야기가 더 재밌는 것도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p.39) "책 읽기를 두려워하는 건 전제주의 정권만은 아니다. 책을 읽는 사람들은 정부 관공서나 교도소 못지 않게 학교 운동장이나 탈의실에서도 구박을 당한다. (...) 그 이유는 세상의 소란함에는 무관심한 듯 구석에 쪼그리고 앉은 한 인간의 이미지가 침범할 수 없는 프라이버시와 이기적인 눈길, 그리고 은밀한 행동을 풍기기 때문이다. (...) 책을 읽는 사람이 책에 파묻혀 무슨 꿍꿍이수작이라도 부리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은 (하략)" 

하지만 나는 책을 읽음으로써 세상을 만나고 있다. 

- 이처럼 독서가인 저자의 개인적 역사를 서두로 하여, 이후 장에서부터는 '독서 행위의 역사'를 서술해 나간다. 이때 "독서 행위의 역사"는 문학사 연대기와도 다르고, 문학 비평사의 연대기와도 다르다. 서장의 부제를<책의 마지막 페이지: 연대기적 순서를 뒤엎는 독서의 역사>라고 이름 붙인 이유다. 


2장. 암시 읽기 

- 2장에서는 인간의 읽기 능력(기호 해독 능력)이 선천적인 것임을 증명하고, 문자(letter)를 배우지 않은 상태에서도 이미 기호를 지각, 해독하는 능력이 있음을 설명한다. 일회독 당시에는 다소 생경한 주제였으나, 재독을 하고 나니 부쩍 그 의미와 중요성이 크게 와 닿는 장이다. 

- 이야기는 '인간의 독서 과정은 어떻게 전개되는가?'라는 화두로 시작한다. 안구가 문자를 지각하는 것을 넘어서서, 우리의 감정이며 뇌는 대체 어떤 메커니즘을 거쳐서 그 내용을 해독, 인지하게 되는 것일까? 

저자의 설명에 따르자면, 이는 고대 그리스와 중세에서부터 이어지는 유구한 논쟁적 질문이다. 대표적인 가설은 다음과 같다. 에피쿠로스나 아리스토텔레스는 관찰 대상(문자)의 특질이 직접적으로, 혹은 공기 등의 매질을 타고서 우리의 안구로 내용을 실어나른다고 생각했다. 반대로 유클리드는 우리의 안구에서 특수한 빛이 나와서(!) 보고 있는 대상의 내용과 특징(이 경우는 텍스트의 의미)을 포착한다고 보았다(pp.48~49.) 어느 쪽이든 재밌는 상상이다. 눈에서 광선이 나와서 텍스트의 의미와 감정을 읽어들인다니. 


아리스토텔레스 식. 대상의 특질이 직접 우리에게 다가온다.
아리스토텔레스 식. 대상의 특질이 직접 우리에게 다가온다.


유클리드 식. 눈에서 광선이 나와 물체의 특성을 포착한다. 즉, 우리가 대상에게 다가간다.
유클리드 식. 눈에서 광선이 나와 물체의 특성을 포착한다. 즉, 우리가 대상에게 다가간다.

이후 갈레노스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받아들인 중세 유럽의 학자들은 인간이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쳐서 독서를 하게 된다고 믿었다. 유클리드처럼 우리가 직접 관찰대상에게 다가가든,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처럼 대상이 우리에게 다가오든, 그렇게 시력이라는 기관을 통해 포착된 대상의 특질은 뇌에 자리한 '감각 저장소'로 흘러 들어간다. 그리고 뇌에 있는 놀라운 거름망(marvelous net)을 거치면서 가치 있는 감정이나 지식들만이 걸러지고, '상식'의 영역에 저장, 보관된다. 이렇게 해서 문자를 보는 시력 행위는 지식의 황금으로 탈바꿈한다. 

'대상(텍스트의 본질)이 우리에게 다가오는가, 아니면 우리가 대상에 직접 다가가는가?' 고대인들이 제기한 이 질문은 언뜻 상반돼 보이지만, 둘 다 보는 것(=지각)과 그 의미를 파악하는 것(=인식, 해독)이 동시에 일어나는 하나의 현상이라고 전제한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이처럼 감각과 지각의 차이를 최초로 구분해낸 사람은 10세기 경에 활동한 무슬림 학자 알 하이삼이었다. 알 하이삼의 이론에 따르면 '순수 감각'은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행동으로서, 창밖의 햇살과 그림자를 보는 것등이 이에 해당한다. 반면, '지각'은 인식이라는 자발성이 개입되는 행위로서, 텍스트를 읽는 것은 지각 행위에 해당된다. (알 하이삼의 개념 구분은 그의 시력 연구를 탐독한 영국 학자 로저 베이컨에 의해 15세기 경에 유럽으로도 전파된다) 

- 1865년, 두 명의 프랑스 출신 신경과학자가 실시한 실험은 "대부분의 사람이 수태와 동시에 시작되는 유전학적 작용의 결과로 왼쪽(경우에 따라서는 오른쪽) 뇌반구가 언어를 기호화, 해독하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p.56) 즉, 인간의 기호 해독 능력은 선천적으로 뇌 안에 잠재되어 있다. 태어날 때부터 유전자 안에 잠들어 있다가 훗날 적절한 배움과 연습을 통해서 깨어나는 것이다. 이 같은 선천적 기호 해독 능력에 대해서 저자는 다음과 같은 찬사로 경이로움을 표한다. 

(p.56) "최초의 필사자가 최초의 문자를 긁어 쓰고 그것을 소리로 말하기 전에도 인간 신체는 그때까지 미래에 속했던 읽고 쓰는 행위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말하자면 인간 신체는 아직 창조되기를 기다리고 있던 글자의 독단적인 기호를 해독해낼 수 있었다는 뜻이다. 이런 의견, 즉 인간이 실제로 읽을 수 있게 되기 전에 이미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는 견해는 (하략)" 

그러면서 저자는 이러한 사실이 플라톤의 이데아 철학과 연결된다고 설명한다. 플라톤이 어떤 대상을 인지하기 전에 이미 우리 안에 그에 관한 지식이 선행, 존재한다고 말했듯, 우리가 어떤 단어의 의미를 이해하고 느끼는 것: 즉 '발견하는' 것은 이미 그 단어가 나타내는 관념이나 감정을 우리 마음 속에서 느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추후에 그 관념이나 감정을 단어라는 기호와 연결지을 뿐이다. 

- 저자가 추론하기를, 독서가는 책을 읽어가는 동안 배경지식으로 알고 있는 텍스트의 취지, 사회적 합의, 축적된 독서량, 개인의 경험 및 취향을 뒤얽어 가면서 텍스트에 개별의 의미를 부여한다. 읽기 행위는 단순한 '순수 감각'이 아니라 의식적인 '지각' 과정을 수반하는 적극적인 과정인 것이다. 다음 문장은 독서 행위와 사고력의 관계를 함축적으로 묘사한다. 

(p.61) "독서가들은 텍스트를 읽어 내려가면서 자신들의 지식, 경험에 얽힌 기억과 글로 쓰여진 문장, 절과 단락 사이의 관계를 구축해 나감으로써 의미를 만들어낸다." 

독서는 단순히 안구로 텍스트를 포착하는 자동 과정만이 아니라, 개인적 차원에서 "사고를 재구축 하는" 과정인 셈이다. 

"독서는 언어의 규칙 안에서 하나 이상의 의미를 구축하려는 (...) 생산적인 과정."

그렇다면 내용을 정리하며 책을 읽을 때 어쩐지 '뇌가 굴러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것도 설명이 된다. 책을 읽고 가볍게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뇌의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다니, 소일거리가 필요한 심심한 사람에게는 큰 위안이 되는 사실이다. 게다가 독서에는 기본적으로 문자 기호를 해독하는 과정이 선행하는 탓에, 그 기호를 해독하는 것(단순히 눈으로 글자를 읽는 것)만으로도 수학 문제 풀이나 외국어 학습과 비슷한 뇌 운동 효과를 볼 수 있다. 

- 이상 또한 내 경험과 텍스트의 내용을 결합한 나의 '사고 재구축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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